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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온 Feb 05. 2024

나를 아시나요?

진정한 나 말이에요

 지금부터  편의상 나의 엄마를 미숙 씨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미숙 씨와는 자주 통화를 한다. 한국과 미국이라는 어마어마한 거리와 시차를 극복하고 우리는 항상 서로의 안부가 궁금하다. 기술의 발전 덕분에 버튼 몇 번만 누르면 무료로 몇 시간이고 통화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할 뿐이다. 얼마 전의 미숙 씨와의 통화 중에 우리는 한 주제에 대해 깊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은  거슬러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에 도착한 후 ‘멋지고 화려한 외국 생활’과는 동떨어진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런던에서 차로 3시간 반이나 떨어져 있는 시골에서 생활하게 된 나는 삶의 무료함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한국에서는 그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 취직을 해서 일도 하고, 주말이면 친구들도 만나고, 이직을 위한 스터디도 하고, 언어 공부를 위해 학원도 다녔다.  하루 24시간이 알차고 일주일이 ‘해야 할 일’들로 빽빽했다. 그런데 영국으로 오게 되면서 갑자기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지자  너무 여유로워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부럽다’고 말을 해주었지만 그럴 때마다 민망하다는 듯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팔자 좋게 영국에서 쉬고 있으면서 심심하다고 불평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한국에서처럼  사회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24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할 일 리스트에 아무런 것도  적을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 기분에 죄책감이 들었다. 한국에 있는 주변 사람들은 이미 모두 저만큼  성큼성큼 가고 있는데 나만 뒤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지금껏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자고, 좋아하는 것들에 몰두해 보자고. 그런데 좋아하는 것이 뭔지, 취미가 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맛집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믿었다. 분위기가 좋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믿었다.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집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했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분위기가 좋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걷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었지 ‘내가’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더라. 얼마 전의  통화에서 미숙 씨에게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을 털어놨더니 그녀가 그런 말을 했다.


 “엄마도 그래. 엄마의 인생을 이렇게 돌이켜 보면, 내 행복은 전부 ‘자식들’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어. 온전히 ‘나 자신’으로써의 행복을 느꼈던 적을 찾기가 힘들더라. 엄마도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엄마도 그래?”

 “그럼, 엄마도 그렇지. 엄마도 이제부터 차근차근 그 해답을 찾아보려고 노력 중이야.”


 나보다  나이도 많고 연륜이 있는 미숙 씨도 그랬다. 미숙 씨는 평생을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오면서 ‘나’보다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자아를 선택해 왔을 것이다. 뭐든지 다 알고 있을 것 같던 미숙 씨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반갑기도  하면서 나보다 훨씬 현명한 미숙 씨도 하는 고민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 평생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될까 봐 조금  무섭기도 했다. 우리는 그 주제로 거의 3시간을 통화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겪은 것들을 ‘자신의 취향’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런지 한 번쯤은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살면서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해 왔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문제는 지금까지 인생에서 ‘타인’을 모두 배제하고 오롯이 ‘나  자신’만을 두고 본 적은 없었다. 6년이 지났지만 그럼에도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해답은 찾기 힘들 것 같다.  열심히 노력은 해보겠지만 나를 찾는 여행의 마침표를 찍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먼 훗날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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