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새내기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도합 12년의 공부 끝에 드디어, 마침내,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때가 2020년이었다.
그렇다. 나는 비운의 20, 코로나 학번이었던 것. 어른들이 대학만 가면 원하는 거 다 하라고 해서, 정말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으며 살아왔는데, 아아, 세상이 나를 집에 가두네…
예정되어 있던 OT, 새내기 배움터가 모두 취소되었다. 처음 겪어보는 범국가적 재난 상황에 모두가 우왕좌왕했다. 따라서 다음 학번은 온라인 OT, Zoom으로 하는 새내기 배움터 같은 것들을 누렸지만, 우리 20학번은 그러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학기가 시작되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엄청난 집순이였다. 그래서 집에서 수업을 듣는다는 게 그리 나쁘진 않았다.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네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문제는 내 전공이 독일어라는 것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는 내 꿈의 대학이었다. 학교 이름에도 외국어가 들어가니, 언어를 사랑하는 내게 딱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학교라면 어느 과라도 좋다는 마음으로 사범대학 독일어교육과에 진학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나는 독일어를 아예 못한다는 것! 그러니까 온라인으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언어를 배워야 했던 것이다. 그럼 이게 300만 원짜리 시원스쿨이지 대학 수업인가 싶기도 했다.
결론은 300만 원짜리 시원스쿨은 아니었다. 첫째, 코로나바이러스로 학교 시설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니, 장학금 형태로 등록금의 일부를 돌려줬다. 따라서 '300만 원짜리'는 아니었다. 둘째, 수업의 퀄리티가 생각보다 좋았다. 물론 인터넷 연결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경우도 많았지만, 교수님들께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최대한 온라인 환경이 강의실인 것처럼 수업을 운영하셨다.
오히려 플랫폼 내 다양한 기능이 익숙해지던 시기엔 '어쩌면 강의실보다 온라인 수업이 더 나을 수도 있겠는데' 싶기도 했다. 수업을 녹화해 복습할 수도 있었고, 소그룹 토론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거나, 솔직히 말하면 오픈북 시험을 많이 쳤기 때문에 성적을 잘 받아 놓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들이 속속히 드러났다.
지금은 전생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많은 수업에서 Zoom 회의를 열면, 출석 확인을 위해 카메라를 켜 두어야 했다. 어느 때부터 타 학생들의 얼굴을 몰래 촬영하는 문제나 원치 않는 때에 카메라가 켜져 사생활이 노출되는 문제, PC에 뜬 여러 애플리케이션에서 수치심을 유발하는 콘텐츠가 강의 도중에 노출되어 곤욕을 치른 교수도 있었다. 시험 도중 부정행위를 하다 걸렸다는 뉴스도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녹화 강의라는 대안이 등장하면서 수업이 질이 떨어지기도 했다. 상호 피드백이 이루어지기 어려워 궁금증을 빠르게 해결하기도 어려웠다. 매번 검색으로 강의를 보충하다 보니 구글이 내 교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GPT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검색해 정보를 찾는 과정에서 학습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도 했다.
또, 강의가 정상 운영되던 2022년 경까지 온라인 도구에 익숙지 않은 교수도 많았다. 갑작스레 수업이 종료되거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미스 커뮤니케이션이 나거나 하는 문제들이 빈번히 발생했다. 각종 기기에 밝은 우리는 가끔 기술상의 문제와 그 해결법을 알고 있더라도 과제를 받기 싫어서 혹은 몇십 명이 지켜보는 온라인 회의실에서 마이크를 켜 말할 용기가 없어서 침묵하고 있기도 했다.
3시간짜리 수업을 연속으로 두 번, 식사를 마치고 두 시간짜리 수업을 듣고 나면 8시간 동안 PC 화면을 본 사람이 된다. 시력이 나빠지고, 눈이 뻑뻑하고, 허리, 엉덩이, 다리… 온몸이 쑤셨다. 교수도 학생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한 해였다.
1년간 전공 7과목, 각종 교양과 교육학 과목을 8과목 들었다. 발표, 리포트, 쪽지시험을 수도 없이 수행하고 팀플도 몇 개 하다 보니 1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독일어를 어찌어찌 배워냈다. 성적도 좋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COVID-19 동안 절대평가로 운영했던 것 같다. 일정 기준을 넘기면 학생 수에 상관없이 A+를 받을 수 있었다.
독일어의 알파벳은 영어 알파벳 + ä, ö, ü, ß라는 새로운 알파벳 네 종의 합이다. 한글을 배우고 읽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듯, 독일어 발음은 생긴 그대로 읽기 때문에 '읽는 행위'는 꽤 금방 해낼 수 있었다. 다만 의미를 알지 못할 뿐이었다. 예를 들어 영어의 모음 a는 어, 애, 에이 등 다양한 소리를 내는 반면, 독일어의 a는 '아'라는 소리만 갖고 있다. 심지어 이 알파벳의 이름이 '아'다. 그러니까 알파벳을 외우면, 독일어를 읽을 줄 알게 된다. 그래선지 초급 수준의 독일어를 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었다. 교수님들께서도 우려와 달리 지난 1학년 수업보다 전반적인 학업 성취도가 높아졌다며 신기해하셨다.
독일어 공부에 재미를 붙여서 유튜브가 독일 관련 콘텐츠로 도배되었었다. 특히 Emily mit ypsilon이라고 하는 독일에 거주하는 유튜버께서 독일어 학습 영상을 많이 올려주셨는데, 이 영상들을 보며 발음도 공부하고 문법도 배우고, 독일어권 문화도 배웠다. 독일어가 정말 재미있었다.
처음으로 스스로 돈을 벌게 되었다. 영어 과외를 하면서부터였다. 이때는 내가 학원 선생님까지 할 줄은 전혀 몰랐지만. 동네에서 과외 자리를 구해 두 탕을 뛰었던 기억이 있다. 영어는 좋아하니까 즐겁게 일했다. 시험 때는 물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사범대에 속해있기도 하고, 교육학에도 재미를 붙일 때라 난 역시 선생님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재밌었고,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그들을 보는 일이 보람찼다. 수업 자료를 만들고 교수 방식을 고민하는 일이 흥미로웠다. 아마 첫 과외 학생이 명랑하고 총명한 친구여서 그랬을지도! 그 친구가 벌써 대학을 갔다고 한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이 브런치 북에서도 다루겠지만, 나는 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일했다. 나중에는 대형 학원의 유명 강사가 되거나 학교에서 독일어 교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 꿈을 이루기를 실패했다. 목표를 가지고 20대 초반을 과외, 학원, 교육봉사, 번역 같은 활동으로 가득 채웠지만, 나는 더 이상 이것들에 흥미가 없고, 그래서 현재 이뤄낸 것이 아무것도 없는 기분이다.
과외는 그 나이대에 돈을 벌기 가장 좋은 수단이지만,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입시, 내신에서 벗어나지 못한 20살짜리 고등학생. 불과 작년까지 난 그렇게 살아왔고, 교사가 되기를 포기하니 하루아침에 여섯 살을 얻은 느낌이다.
하여튼, 내 스무 살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