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하나, 2학년
코로나로 인해 대학 2년을 집에서 노트북과 오붓하게 보냈다. 정말 신기한 건 집에서 온라인 강의만 듣는 대학교 2학년에게도 대 2병이 온다는 사실이다. 대 2병은 대학교 2학년생들이 빈번히 겪는 진로나 미래에 관한 불안감을 말하며, 나에게도 이 병이 아주 심하게 찾아왔다. K-장녀로서 번듯한 직장을 하루빨리 가져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더해져 나는 결국 조기 졸업 루트를 타기로 한다.
당시 과외와 더불어 토스트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두 탕에 조기 졸업을 위해 성적도 열심히 챙기고, 학점도 꽉꽉 채워 듣고 나니 나는 꽤 지쳐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주는 두려움도 있었다. 우린 언제까지 집에 갇혀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걸까? 나의 20대는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나는 건 아닐까.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코로나 블루였는지, 너무 지쳐있던 것인지 알 순 없지만 냅다 울어버리는 나를 한참 그대로 두시던 엄마가 이유를 물었다.
"빨리 졸업해서 직장도 구하고 해야 되는데... 너무 다 불안해서, 조기 졸업 신청하려고."
극 T이신 엄마가 갑자기 열불을 내셨다.
"네가 대학에서 뭐 한 게 있다고 벌써 졸업을 해? 뽕을 뽑아야지! 조기 졸업은 무슨, 차라리 교환학생을 가라니까?"
"… 교환학생? 그래도 돼?"
"당연히 되지, 뭔 소리야."
그렇게 위로 같기도 한 쿨한 허락을 받고 갑작스레 독일 교환학생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자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어찌 보면 도피 같기도, 겁쟁이가 된 것 같기도 했지만. 돌아보니 왜 그렇게 생각했는진 모르겠다. 인간은 우울의 소용돌이에 빠지면 정상적인 사고가 되지 않는 듯하다.
우울할 땐 글을 쓰자. 열일곱의 내가 정한 수칙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오랜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소년 자살률 1위. 그건 뉴스에서 수치로만 접하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는데. 나는 우울했고 힘들었다. 우울할 땐 글을 쓰자. 그렇게 생각했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까맣고 끈적한 생각을 없애려면 그 방법뿐이었다. 말로 전해지는 우울은 그 힘이 강해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힐 게 뻔했으니까. 나는 내가 힘든 만큼 내 가족과 친구들을 힘들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내 메모장은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다.
내 코로나 블루는 따라서 글을 쓰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혼잣말 같은 글을 쓸 뿐 아니라, 학교에서 희곡과 시나리오를 쓰는 방법을 배웠다. 서사가 있는 인물을 만들어 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나를 독자로 하는 글만을 써왔는데, 타인이 사랑할 법한 이야기를 구상하는 일은 너무도 어색했다. 지금도 여전히 어렵지만!
알 수 없는 물질로 인해 괴물이 된 동생과 그녀를 죽이는 임무를 맡은 언니의 이야기를 썼던 기억이 있다. 쌍둥이 자매라 외형이 똑같아 군에 의해 언니가 사살되고… 그런 설정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뮤지컬 위키드의 영향을 받았나 보다. 표절 작가였군.
대학 동아리에도 들었다. 외대문학회. 코로나라 줌으로만 만날 수 있었지만, 언젠가 한 번 모임 인원 규정에 맞춰 모인 적도 있었다. 거기서 다양한 책을 읽고, 서로의 글을 읽고 합평했다.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2021년엔 MBTI가 유행이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할 말이 없어지게 되면, MBTI가 무엇이냐고 반드시 물어야 했던 시기. 사람의 성격을 16가지로 나누는 말도 안 되는 검사지만, 내게는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 세상에 나같이 이상하고 변덕스러운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같은 MBTI를 가진 사람들이 똑같은 혼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기분 좋았다.
술맛을 알게 된 것도 이때쯤이다. 스무 살이 되던 1월 1일, 아침에 눈을 뜰 때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었다. 미성년자 탈출 기념으로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놉. 나는 연말에도 일찍 자는 착한 어른이었다. 이석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귀에 있는 돌이 마음대로 돌아다녀서 세상이 돌고 있다고 착각하는 상태. 이석증에는 술이 좋지 않다고 해서 별로 즐기지 않았지만, 이석증이 재발하지 않게 되자 엄마랑 집에서 맥주를 홀짝이는 일이 잦아졌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던 때였다. 요리도 하나의 위로 방법이었다. 요리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엔 별 것 아닌 것들이었지만, 아무 생각 안 하고 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이었다. 자기 전 '내일은 뭘 만들어 볼까' 고민하는 일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이때 요리를 조금이라도 해 둔 것이 독일에서 혼자 살 때 큰 도움이 되었다.
하여튼, 내 스물한 살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