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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섬마을 사람들 (1편)

by 오로지오롯이


*

아침이 아침 같이 오지 않는 곳이 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지는 않았다. 그저 밥을 짓는 사람은 밥만 짓고, 전화를 받는 사람은 전화만 받으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노래만 불렀다. 하지만 그곳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일종의 임무 같은 것인데, 그것은 ‘경계’였다. 그 일은 그곳에 사람들이 살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였고, 직업 같은 임무였다. 섬과 섬이 아닌 곳의 경계에서 ‘경계’하는 일은 하루 3교대로 이루어졌다. 주간에 경계하는 사람들은 야간에 잘 수 있었고, 야간에 경계하는 사람은 주간에 잘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자는 것 또한 경계의 연장이었다. 언제든지 외지 사람들이 닥치면 뛰쳐나갈 수 있도록 모든 것들이 설계되어 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잠자리 옆에는 옷장이 있었다. 추운 날 바로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또한 총을 담당하는 사람이 방마다 한 명씩 있었다. 그들은 비상 시 바로 열쇠를 받고, 사람들이 준비하는 동안 총을 꺼내놓았다. 총알도 주거지 바로 옆에 있었다. 탄을 사용할 일이 생기면 미리 한 사람이 뛰쳐나와 탄약고를 개방했다. 물론 그 사람들은 장난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옷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일종의 곤충들의 보호색 같은 얼룩무늬 옷을 즐겨 입었고, 총은 사거리가 3KM는 훌쩍 넘어가는 소총이었으며, 탄도 아이들이 장난치는 BB탄이 아니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섬을 지켰다.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아침이고 자기 시간만 되면 경계를 섰다. 그 사람들은 한 번도 아침이 아침처럼 온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가 경계하는 시간이 낮이었고, 자는 시간이 밤이었다. 일어나서 처음 먹는 밥이 아침밥이었고, 자기 전에 먹는 밥이 저녁이었다. 그들은 갓밝이 때 먹는 저녁밥이 왠지 모르게 서글프기도 했지만, 담배 하나에 위로 삼으며 자신들의 임무를 할 뿐이었다.


그들이 경계를 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관문이 있었다. 군장검사라고 불리는 이 과정을 통과해야만 숭고한 경계의 임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섬을 지키는 이유, 그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오늘의 날씨, 암호 숙지, 해가 뜨는 시간, 해가 지는 시간 등을 교육 받아야 했다. 그래야만 실탄과 수류탄을 받고 경계의 장소로 출발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 과정이 너무나 불필요하다고 느끼곤 했고, 사실 불필요하기도 했다. 허나 실제로 경계를 할 때는 필요한 정보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교육을 듣곤 했는데, 물통에 물이 다 채워지지 않는 것을 지적 받을 때엔 조금씩 성질을 내기도 했다.


“이 추운 날, 물 떠 봤자 다 얼어버립니다, 소초장 님.”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원칙을 지키는 일, 그것이 경계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곧 최 병장은 조용히 막사로 들어가 뜨거운 물을 떠오고 만다. 최 병장이 씩씩대며 대열에 합류하게 되면 사람들은 발을 맞추어 등반을 했다. 하나 두울, 하나 두울. 흙계단을 오르고, 풀숲을 가로질러 언덕을 올랐다. 사실 언덕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높은 지대였다. 그들은 다른 곳이 최대한 잘 보이는 곳까지 올라갔다. 물통의 물을 다 얼었지만, 사람들은 땀이 나고, 목이 탔다. 그렇게 헉헉대며 다들 자신의 경계 초소로 들어갔다. 초소의 수은 온도계에는 영하 29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끔씩 소변이 마려웠지만, 오줌이 고추에서 얼어버릴까 바지를 내리지 못했다. 그저 앞만 보고 마냥 경계를 했다. 누가 오는지 안 오는지,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아무도 안 오면 안 온다고, 아무 소리가 안 들리면 안 들린다는 것까지 보고해야 했다. 모두가 숨죽였고, 고라니만 “꺄악” 하는 비명소리를 간간이 지를 뿐이었다.



*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 지역을 섬이라 불렀다. 허가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특별한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무장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또 내부의 정보는 밖으로 유출되어서는 안 되었다. 국가가 지정한 민간인 통제 구역이었다. 또한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함부로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이런 섬들이 조성되는 유래를 찾아보자면 약 60여년 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지역에서 남쪽과 북쪽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그 후 휴전 협정을 계기로 흔히 3.8선이라 불리는 휴전선이 남과 북 중간에 그어졌다. 그것이 군사분계선이었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의 각기 2km 거리에 또 다른 선이 그어졌다. 남쪽에 있는 선은 남방한계선, 북쪽에 있는 선은 북방한계선이라 칭했다. 또한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에는 비무장지대로 협정하여 그 안에서는 전투를 금지하며, 무장 활동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북쪽 마을에서는 간간히 남쪽을 향해 침투를 했다. 그러기에 남쪽 마을에서도 마냥 비무장을 유지할 수 없었고, 똑같이 무장을 해서 경계를 시작했다. 나라에서는 그 지역에 사람들을 보내 경계를 하도록 했다. 그곳에 갇힌 사람들은 섬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섬이 무너지면, 국민들이 있는 본토가 위험했다.


어느 언덕이라도 오르면 산등성으로 죽 이어진 거미줄 같은 줄기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남방한계선 철책이었다. 아침이면 철조망에 이슬이 맺히곤 했는데, 벌레들은 그 이슬을 핥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저 철조망 바로 앞에 있는 초소에서 경계를 할 뿐이었다. 철책 사이를 지나면 북녘 땅이었다. 신도 버린 땅. 적어도 그곳에서는 북녘을 그렇게 불렀다. 북쪽 마을의 산은 땔감용으로 나무를 베어갔는지 민둥산이었으며, 새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채석장에서 들려오는 포탄 폭음만이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로 여겨졌다. 그곳에 살다 보면 북쪽에서 불어오는 된바람을 정통으로 맞아야만 했다.


그 바람에는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그 냄새는 그곳에서만 맡을 수 있는 것 같은 냄새였는데, 더럽혀지지 않는 공기의 상쾌함이라고 하기에는 약간의 쇳가루 향이 났다. 그것은 폭탄이 터질 때 맡을 수 있는 후폭풍의 화약 냄새와도 비슷했다. 최 병장은 자고 일어날 때마다 맡는 이 냄새 때문에 고향 꿈을 꾸고 나서도 금방 현실로 되돌아왔다. 그 현실이란 경계의 임무를 하는 이 곳에서 그 일을 하러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냄새는 그들이 갇혀 있음을 상기시켜 주곤 했다.


그들이 있던 곳은 경계를 해야 한다는 것만 빼면 평범한 섬마을이었다. 약 30여명의 소수 인원들만 모여 살았기 때문에 아기자기하고, 서로를 대하는 것도 틀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원칙은 지켜야 했다. 먼저 온 사람이 계급이 높았다. 그렇기에 지킬 것은 지켜야 했다. 질서에 순응하면서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했다. 예외는 있었다. 그곳은 사람이 적어 소문이 금방 퍼지곤 했는데, 그 무렵 철책 경계 근무 중인 사람들 사이에 그곳에 새로운 사람이 왔다는 소식이 퍼졌다. 새롭게 온 사람을 반기는 일. 그 부분에서는 질서도 원칙도 없었다. 자기 방식대로 반길 수 있었다. 박 상병은 물었다.


“이름?”

“일병 김민구.”

“살던 곳?”

“전라남도 여수시 거문도입니다”

“섬에 살다가 섬으로 왔구나.”

“예?”


김 일병은 어딘지 모르게 힘이 빠진 얼굴이었다.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목이 길었으며, 몸이 삐쩍 말라 있었다. 어쩌면 로봇이나 허수아비 같은 형세랄까. 얼굴도 길쭉했는데, 안경까지 써서 더욱 어수룩해 보였다. 목에 드러난 울대뼈는 살짝 건드리면 곧 무너질 것 같았고, 떡니는 불규칙하게 나서 교정이 필요했다. 손목과 발목의 회목은 어찌나 가는지 서서 총을 들고 있는 것조차 신기하게 보일 정도였다.


김 일병을 담당할 선임은 최 병장으로 낙점되었다. 그곳에서 가장 오래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사람이 드레진 면이 있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경계 근무도 최 병장과 김 일병이 함께 하기로 하였다. 김 일병은 곧장 막사로 들어가 최 병장을 찾았다.



*

“최 병장아, 라면 좀 끊여와라.”


중대장은 최 병장을 불렀다. 최 병장은 일종의 라면병이었다. 중대장의 세탁과 청소, 식사까지 여러 일을 도맡아 했다. 그건 사실 중대장과 최 병장이 동향인 계기로 중대장이 선정한 것이었다. 최 병장은 중대장의 고민을 다 들어줘야 했고, 그렇다고 남들보다 경계 근무를 적게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섬의 절대 권력자에게 신임을 받고 있는 최 병장을 부러워했다.


“시발새끼, 내가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씩씩대며 최 병장은 라면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중대장은 항상 밖에서 라면을 먹었다. 찬 바람은 사방으로 불며 온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중대장은 자신이 생도 때 혹한기 훈련이 끝나고 반합에다가 눈으로 끓여먹었던 라면 맛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했다. 최 병장은 추위를 잊기 위해 으스스 떨며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중대장님, 아침 경계 간에 확인해보니까, 철조망이 찢긴 부분이 있던데 알고 계십니까?”

“보고 받았지, 근데 뭐 신경 쓸 거 있나. 들개나 고라니가 한 짓이겠지.”

“그래도 혹시 몰라서 말입니다.”

“괜히 상부에 보고했다가 일만 커져. 걱정시켜서 뭐 좋다고, 우리끼리 해결하면 되지, 안 그러나?”


중대장이 라면 냄비를 후후 불어댈 때마다 모락모락 피어나오는 면발의 안개구름이 퍼졌다가 사라졌다. 산신령처럼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김 일병은 사람들과 함께 운동장에 있는 눈을 쓸었다. 숫눈을 밟아가며 한 발자국씩 내딛던 김 일병은 군화 사이로 스미는 눈덩이 때문에 발이 아려왔다. 사람들은 쓰지도 않는 운동장의 눈을 왜 쓸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탄을 했다. 취사장 쪽에서는 개가 짖었다. 그쪽에서 최 병장의 소리가 들려왔다. 김 일병 어디 있냐! 김 일병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최 병장은 김 일병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아가며 다가갔다.


“너 오늘 경계 근무 있지?”

“그렇습니다.”

“저번처럼 준비 제대로 안 하면, 철책 밖으로 던져버릴 줄 알아.”

“아닙니다.”

“아니야? 뭐가 아니야? 군화 끈이나 제대로 매.”


김 일병은 장갑을 벗고, 눈 속에 손을 넣어 신발 끈을 풀어냈다. 최 병장과 다른 사람들은 유유히 막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찬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와 김 일병의 뺨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날 저녁, 최 병장은 김 일병과 경계 근무에 투입되었다. 중대장은 사람들이 경계를 잘 서고 있는지 야간 순찰을 돌고 있었다. 중대장이 초소 내부 정리 상태를 점검한다는 것과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말을 소식이 전해졌다. 최 병장은 안심하고 능숙하게 중대장을 맞을 준비를 했다. 무전기 작동 상태, 탄알 개수 확인 등 모든 것이 완벽했다. 경계 초소 안도 말끔히 정리가 되었다.


“경계 근무 간 이상 없는가?”

“402초소 경계 이상 무!”

“북쪽에서 계속 소리가 들리던데, 상황실에 보고했나?”

“무슨 소리 말입니까?”


중대장은 얼굴을 한 번 찌푸렸다.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진 않지만, 그날따라 중대장의 벽장코가 두드러졌다.


“무슨 소리냐고? 야, 최 병장아.”

“병장 최민호!”

“철조망 찢긴 흔적은 잘도 걱정하더니, 경계 근무 간에 전방에서 난 소리를 못 들어?”

“아닙니다!”

“떠들고 놀았다는 소리밖에 안 되잖아? 집에 안 가고 싶어? 여기 더 있게 해줄까?”


중대장의 걸걸한 목소리가 찬 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날카롭게 들렸다. 중대장은 한숨을 쉬며 초소 아래로 내려갔다. 중대장의 별명은 ‘두 판망’이었다. 철조망의 기둥과 기둥 사이를 ‘판망’이라 불렀는데, 중대장의 성격은 ‘두 판망’을 지나갈 때마다 계속 달라질 정도로 제멋대로였기 때문이었다. 중대장은 날이 추웠는지 급하게 막사로 돌아갔다. 최 병장은 고개를 숙인 채 담배를 물었다. 그때 경계 초소 전방에서 반짝하고 섬광이 일었다.


“뭐야! 고개 숙여!”


최 병장은 김 일병의 머리를 짓눌렀다. 너도 봤지? 앞에서 반짝인 거? 최 병장은 총을 꼭 쥐었다. 얼음장 같은 총이 최 병장의 얼굴에 붙었다. 최 병장은 얼굴이 시리지 않았다. 총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순간 한 번의 빛이 더 가깝게 반짝였다. 김 일병은 바닥에서 무엇을 줍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최 병장님! 손전등을 떨어뜨렸습니다.”

“그게 중요해? 전투 준비하라고!”

“제 손전등이 켜져서 끄려다가 떨어뜨렸습니다.”


최 병장은 고개를 들었다. 북쪽 전방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했다. 최 병장은 손을 더듬어 손전등을 주워 들었다.


“미쳤어? 경계 근무 간에 손전등을 켜? 그리고 왜 이리 밝아!”


경계 근무지에서 발광 행위는 적에게 위치를 노출시킬 수 있기에 엄금되는 사항이었다. 최 병장은 김 일병의 머리를 내리치며, 손전등을 입에 물렸다.


“중대장부터 너까지 나를 아주 그냥…….”


김 일병은 울먹이며, 하늘의 여우별을 바라보았다. 무언의 시간이 흘렀다. 김 일병은 차라리 앞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길 원했다. 하지만 이상할 만큼 북쪽은 조용했다. 입에 문 손전등 사이로 입김이 두 갈래로 퍼져나왔다. 그 입김은 김 일병의 양쪽 눈에 머물며 물방울을 만들어냈다. 최 병장은 김 일병의 입에서 손전등을 꺼냈다. 그리고는 북쪽으로 던지려 했다. 김 일병은 최 병장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할머니!”

“뭐? 할머니?”

“할머니가 사준 겁니다. 5일장에서. 3천원. 건전지까지 4천원.”


최 병장은 다시 물었다.


“근데?”

“할머니 아픈데, 거문도 집에 혼자 있는데, 박스 모아서 하루 2천원 법니다.”


최 병장은 으스름달을 보았다. 흐릿한 달처럼 으슬으슬했고, 왠지 모르게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는 듯했다.



*

자고 일어난 최 병장은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며 김 일병을 취사장으로 데려갔다. 그러곤 담배 하나를 물고 출구 쪽 바라보았다. 그때 취사장 음식물 쓰레기장으로 트럭 한 대가 들어왔다. 차에서 한 여자가 내렸다. 몸체는 뚱뚱하고, 머리는 헝클어진 채 둥둥 말려 있으며, 눈썹은 안개처럼 뿌연 여자였다. 이마주름은 오랜 세월 지났는지 연필로 그은 것처럼 진했고, 팔뚝과 목은 살에 접혀 온몸이 경계선 투성이였다. 그 아줌마는 이 섬을 왕래하는 유일한 외지인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섬에서 실어 본토로 배송하는 일을 했는데, 트럭에는 항상 음식물쓰레기가 가득해서 똥파리가 엉겨 있었다. 트럭 소리를 듣고 나온 박 상병은 정 일병을 이끌고 아줌마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당차게 물었다.


“이곳은 민간인 통제 구역입니다. 여기에 무슨 일로 오신 것입니까? 정 일병 차 번호 적고, 상부 보고해. 주민등록증과 출입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섬 사람들은 항상 헌병 마크를 어깨에 달고 있었으므로 호기스러운 마음으로 어른들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야 박인환! 아줌마가 여기 왜 왔겠냐? 짬 치우러 왔을 거 아냐, 저 음식쓰레기 니가 다 처먹을 거야? 알아서 보고해, 알면서 뭘 그딴 걸 맨날 물어보고 그래?”


최 병장 한 마디에 박 상병은 기분이 언짢은 듯 정 일병에게 괜히 심술을 부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줌마는 신경도 쓰지 않고 어쩌다 길을 잘못 든 것처럼 북녘땅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여기만 오믄 가심이 씰씰허고, 씰개도 절리여.”


아줌마는 혼잣말을 자주 했다. 유일하게 대화하는 상대는 최 병장이었다. 최 병장이 그곳에서 가장 오래 있기도 했거니와, 항상 밥을 느긋하게 먹고 음식물쓰레기장에서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었다. 최 병장이 아줌마를 불렀다.


“그 지지배 가튼 소나는 누요? 첨 보는디?”

“새로온 제 후임입니다.”

“예끼, 이른 모진 데는 왜 왓시까?”


여수 사투리였다. 아줌마는 최북단의 섬 지역에서 최남단의 사투리를 썼다.


“인사해라, 너랑 동향이신 분이다!”

“아, 안녕하십니까?”


김 일병은 고개를 숙였다. 아줌마는 김 일병을 반쯤 감은 눈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허공을 응시하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도새 죽울 목심이라도 이른 섬 구섹은 오면 안되제!”

“아줌마, 그래도 여기 사람들 살만 해요.”


최 병장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럴수록 여자는 더욱 빠른 목소리로 알지 못할 말을 꺼내놨다.


“아부지……. 자기 죽어불먼 섬 구섹이 댐방 망허꺼이 번연허다더니 아직도 잘만 도라가삐네.”


여자의 아버지는 이 섬에서 근무한 장교였다. 경계 근무를 하다가 적군의 총에 전사했지만, 다른 병사의 욕심으로 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국가유공자도 되지 못했다고 했다. 아줌마는 아버지가 죽은 이 섬에 들어오기 위해 1종 트럭 운전면허증을 땄다. 씨부렁거리는 아줌마의 눈에서는 눈물이 맺혔다. 삽으로 음식물쓰레기를 퍼 나르는 여자의 팔 주름 사이로 그날 아침에 먹은 육개장 국물이 흘러내렸다.


최 병장은 아줌마를 피해 담배를 물었다. 김 일병도 최 병장의 허락도 없이 담배를 물었다. 최 병장은 보고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는 쭈그리고 앉아 음식물찌꺼기를 나르는 개미 한 마리를 보았다. 김 일병은 넋을 잃고 아줌마를 계속 쳐다볼 뿐이었다.


“김 일병! 이 개미 좀 봐.”

“아, 아닙니다.”


김 일병은 한 걸음 물러섰다. 그는 벌레를 무서워했다. 바퀴벌레는 물론 개미 한 마리조차 두려워했다.


“뭐가 무섭냐? 저 개미가 보기에는 니가 더 무서울걸?”

“그,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햇살이 가득했다. 최 병장은 웃으며 개미 위에 흙 한 줌을 뿌렸다. 개미가 빠져나오면 흙 두 줌을 뿌렸다. 개미는 가지고 가던 찌꺼기조차 던져놓고 자신이 살기 위해 발버둥쳤다. 최 병장은 그런 개미 위로 담뱃불을 껐다. 그러곤 중대장도 이 개미처럼 쉽게 죽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럼 이 섬도 살만 할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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