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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근무를 하다 보면 보이는 것은 오직 북쪽 마을뿐이었다. 그곳에서도 경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늦은 오후라 저녁밥을 준비하는지 밥을 짓는 연기가 났다. 초소 안에는 국가에서 지원한 최신식 니콘 쌍안경이 있었다. 본토의 남산 타워나 63빌딩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용 망원경이었다. 모든 초소에 비치된 것은 아니었으나,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421초소는 관찰할 대상들이 많아 망원경을 이용할 수 있었다.
“김 일병, 북한 경계병 좀 봐라. 쟤네 또 맞는다.”
북한 경계병들은 나란히 줄지어 한 사람에게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빈번한 일이었다. 북쪽 장교로 보이는 한 사람은 남쪽 지역의 이곳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북쪽 경계병들의 옷은 영화에 나오는 흑갈색 제복과 똑같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실제로 북한 사람들이 입고 잇는 옷은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그것처럼 뭔가 전쟁 중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사실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니 그게 더 어울리기는 했다. 최 병장은 근무 전 텔레비전으로 본 남북의 정상이 손을 맞잡고, 함께 만세를 부르는 장면을 떠올렸다. 왠지 모르게 그 장면이 꿈처럼 느껴졌다.
경계병 뒤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 막사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농지에는 여러 군데에 불이 피워졌다. 마치 전쟁을 알리는 봉화처럼 보였다. 그 연기를 따라 올라가면 100미터는 족히 넘는 탑에 인공기가 걸려 있었다. 최 병장은 그 빨간 깃발을 보며 이 섬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를 생각했다. 아마도 이곳은 저 인공기 탑이 세워질 무렵 생겨났을 것이다. 그 무렵 사람들은 인공기 탑에서 빨간 화염과 함께 미사일이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겠지. 그래서 이 섬을 만들고 저 탑만 바라보게 만든 것이 아닐까. 북쪽에서 남쪽으로 무엇이 날아오는지. 그때, 섬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처음으로 이 섬을 지키던 사람들은 저 인공기 탑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최 병장은 상념에 잠겼다가 나직이 말을 꺼냈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상, 이곳을 지켜야 할 이유는 잊지 말아야 한다.”
“예에, 알겠습니다.”
“누군가들이 몇 십 년 동안 섬을 지켜줘서 우리가 잘 살았잖아. 그럼 우리도 지켜줘야겠지…….”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언제 침투할지 아무도 몰라. 내 섬은 내가 지켜야지.”
경계하는 최 병장과 김 일병 아래로 여러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각기 삽을 들거나 빗자루를 들고 눈을 쓸고 있었다. 최 병장은 철책에 낀 눈꽃을 바라보았다. 철책 안에는 거미가 사는 것 같았다. 어느 죽은 자의 올가미가 난도질되어 무쇠의 거미줄로 서 있는 철조망. 그것은 숨어 있는 거미가 뽑아낸 쇠줄처럼 느껴졌다. 어젯밤 내린 눈꽃은 거미에게 잡힌 벌레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저녁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날은 검기울었고, 달물결이 요동쳤다. 최 병장은 근무 교대 준비를 했다. 섬과 북쪽의 경계선에서는 일제히 경계등이 켜졌다. 이제 야간에 경계를 하는 사람들은 그 경계등의 빛과 월광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최 병장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를 생각했다. 비무장지대 상공으로 보이던 노을 진 서북쪽 하늘과 물방울처럼 떨어지던 별똥별. 그때부터 최 병장은 항상 하늘을 보았다. 어릴 적 아버지께 물어보았던 별자리를 보며, 나중에도 이 별을 보겠구나 했다. 모르는 별자리의 이름을 찾고 싶어서 별자리 책도 사왔지만, 경계 초소에 가지고 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하늘에는 이곳에 처음 왔을 때보다 인공위성이 많아진 것 같았다. 인공위성 때문인지 언제나 그렇듯 오리온 자리를 찾지 못했다. 하늘의 경계병인 오리온을 찾을 수 있다면 최 병장은 어떤 식으로든 위안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안 와, 추워 죽겠는데. 최 병장은 애써 웃어 보였다. 김 일병의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야 애들도 안 오는데,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최 병장은 경계 초소 오른쪽 창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암흑에 가려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저기 저쪽에 폐쇄된 초소가 하나 있거든? 거기엔 아무도 못 들어가게 막아놨어.”
“왜 그렇습니까?”
“거기서 한 사람이 자살을 했거든, 수류탄 물고. 한 사람이 오줌 싸러 나간 새에.”
“그, 그렇습니까?”
“근데 저기서 귀신을 무지 많이 봤대, 애들이.
“무, 무섭습니다.”
“자정이 되면 죽은 귀신이 그 초소에 와서, 자기 피를 닦고, 초소 정리를 한대.”
실제로 그 초소 안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폐쇄되는 순간에도 한바탕 뒤집어졌는데, 그 초소 안에 있는 낙서 때문이었다. 열 명의 사람들이 한 사람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그림이었다. 섬의 경계선에서는 그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 때문에 이런 기이한 이야기가 많았다. 초소 안에는 집음기라는 것이 있는데, 주변의 소음을 확성시켜 듣고, 녹음할 수 있는 기기였다. 그 집음기에 유언을 남기는 일도 있었다. 그것을 재생하면 확성되어 들리기 때문에 정말 귀신의 음성처럼 오싹했다. 할머니가 무당인 오 일병은 초소에서 귀신을 봤다고 하루 종일 울어대서 취사 업무로 보직을 변경했다.
“최 병장 님, 교대하러 왔습니다.”
최 병장은 김 일병을 두고 잽싸게 뛰어나갔다. 한참이나 뛰다가 뒤돌아보니 김 일병은 땅만 보고, 비틀거리며 뛰어오고 있었다. 최 병장은 아주 큰 소리로 웃어댔다.
*
“일어나! 경계 보강할 일이 생겼다. 낼 아침 근무 없는 사람들 경계지로 올라가.”
북쪽에서 어떤 신호 같은 섬광이 일었다는 보고 때문이었다. 최 병장은 눈을 반쯤 뜨고 느긋하게 옷을 입었다. 옷을 다 입고 보니 김 일병은 옷도 입지 않은 채 침낭을 개고 있었다. 최 병장은 김 일병의 목덜미를 잡고, 다른 사람들과 경계 구역으로 올라갔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김 일병은 떨고 있었다.
“호, 혹시 적이 침투한 것입니까?”
“참나, 우리가 밤낮 고생해서 이렇게 지키고 있는데 누가 오겠어. 겁 먹지 마 새끼야.”
최 병장은 눈곱을 떼며 웃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누군가 봤겠지. 게다가 CCTV는 폼으로 있냐? 뭐 북쪽 사람이 배고프면 여기로 넘어와서 문 두드리고 밥 좀 얻어먹읍세다 그러겠네?”
“저 말씀 드릴 게 있는데, 이러면 휴, 휴가는 못 가지 않습니까?”
“곧 끝날 거야. 근데 이런 상황에 휴가 얘기는 좀 아니지, 어쨌든 비상인데. 낼 아침에나 얘기해.”
김 일병은 앞을 보았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비상 사태처럼 언제 그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날이 밝으면 제설 작업을 해야 했기에 사람들은 간간이 기괴한 목소리를 냈다. 차라리 천둥이 치면 위험해서라도 철수를 할 텐데. 최 병장은 어째서 눈이 내릴 때는 천둥이 잘 치지 않는가를 생각했다. 김 일병은 바닥을 응시했다. 떨고 있었고, 흐느끼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의 모자 위로 눈이 쌓였다.
“저, 최 병장 님.”
“왜에.”
“뒤에 가서 담배 한 대만 피우면 안 되겠습니까?”
“너 미쳤냐? 비상이야 지금.”
최 병장의 큰 목소리가 눈을 맞으며 낮고 무겁게 퍼졌다.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은 최 병장을 바라보았다.
“시발 다들 고개 안 돌려? 전방 경계 안 해! 야, 경계 구역에 담배를 가져와? 네가 뭐라도 돼?”
“저, 저도 모르게…….”
“처음이라고 살살 대해주니까 시발, 앞뒤 구분도 못 하겠지?”
김 일병은 최 병장의 신발만 바라보았다. 급하게 뛰쳐나왔는데도, 꽤 정갈하게 끈이 묶여 있었다. 반면에 김 일병의 신발끈은 구멍을 잘못 찾아 들어가 있고, 매듭은 곧 풀릴 듯 헐렁했다. 신발 위로 쌓이는 눈발이 그것을 가려주고 있었다. 김 일병은 눈 속을 파고 들어 자신의 신발끈을 조여 매고 싶었다. 그는 자신이 처음부터 잘못된 구멍에 들어간 신발끈처럼 느껴졌다.
“내가 농담하고, 같이 놀아주고 하니까 여기는 뭐 좆만한 놈들만 있는 것 같지? 이따가 보자.”
퍼엉! 후방에서 소리가 났다. 순간 모든 사람들은 눈밭에 엎드렸다. 폭음이 일었다. 그 후로도 몇 차례의 총성음이 더 울렸다.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야간에도 폭음이 나는 경우는 있었으나, 그것은 북쪽에서 나야 맞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엎드린 채 후방을 향해 조금씩 걸어나갔다. 한 번의 폭음만 더 울리면 모두들 뛰어갈 행세였다.
“내가 확인한다. 너희들은 어떤 명령이 있기까지 전방만 경계해!”
중대장의 무전이었다. 최 병장은 최대한 몸을 낮추고, 사람들이 북쪽을 바라보도록 손짓을 했다. 최 병장도 섬에 오고 나서 가장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무언가 터질 듯한 분위기. 폭음보다 더 파괴적이고, 잔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함이었다. 그렇게 아무 숨소리도 없이, 눈이 무릎까지 쌓여 갔다. 김 일병의 안경에는 눈을 뜬 것인지 감은 건지도 모를 정도로 눈 조각들이 박히고 있었다. 최 병장은 안경을 닦으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중대장은 무전을 다시 날렸다. 후방에서 미확인 지뢰를 동물이 밟은 것이라 했다. 사람들은 안도하며 자세를 편히 했다. 중대장은 곧 철수할 것이니 준비를 하라고 했다.
“김민구 일병 있나, 김민구.”
중대장은 김 일병을 찾았다. 상담 계획이 잡혀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모두 마무리되는 시점이라 김 일병만 철수 복귀하는 것에 사람들은 짜증을 냈다. 김 일병은 허겁지겁 눈에 빠지며 막사로 내려갔다. 이상하게도 눈은 멈추지 않았고, 긴장도 멈추지 않았다. 최 병장은 눈이 오니 오히려 체온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퍼엉! 타다당!”
사람들은 다시 후방을 바라보았다. 아까와 같은 굉음이었다. 최 병장은 순간 눈을 헤집고 뛰었다. 뛰어야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발보다 가슴이 먼저 뛰는 듯했다. 리듬이 엉킨 채 오른발을 내딛고 또 다시 오른발을 내딛다가 넘어졌고, 일어나 다시 내달렸다. 그의 총구가 철책에 부딪히는 소리가 ‘탕탕’ 하며 들렸다. 철조망에서 떨어지는 철가루가 그의 눈에 박혔다. 중대장과 소초장은 이상하게도 막사 밖에 서 있었다.
“뭡니까!”
중대장은 놀란 듯 최 병장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
다음 날 중대장은 섬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모았다. 사람들은 이곳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경계 근무에 들어가지 않았다. 임시 막사가 들어왔고, 사람들은 그 안에 갇혔다. 눈이 쌓였지만, 제설 작업을 하지 않았다. 중대장은 이리저리 전화하기에 바빴고, 소초장의 얼굴에서는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이 보였다. 최 병장은 사람들 가장 앞에 섰다. 중대장은 사람들을 주목시켰다.
“김 일병이 자신을 괴롭히는 선임들에 앙심을 품고 자살 폭탄 테러를 자행했다.”
사람들은 사건의 실체를 해소한 듯이 탄성을 지르다가 바로 숙연해졌다. 흐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중대장과 간부들은 사람들을 정숙 시켰다. 그러자 오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중대장은 멍하니 있다가 밖으로 나갔다. 간부들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도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최 병장은 간부들을 헤치고 밖으로 나갔다. 간부들은 그를 막지 못하고, 문 단속을 강화시킬 뿐이었다. 최 병장은 중대장에게 다가갔다.
“중대장 님. 김민구는 그럴 애가 아닙니다!”
“살인할 애가 살인할 애처럼 굴고, 자살할 애가 자살할 애처럼 구는 건 아니다.”
“증거가 있습니까?”
“입 조심해라. 넌 본 것도 말하지 않아야 할 거야. 곧 합동수사헬기가 들어올 거다.”
“적이 왔던 것입니까?”
“최 병장아, 대통령은 지금 북쪽에 있지 않냐.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다.”
“적이 왔으면 왔다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중대장은 간부들을 불렀다. 그들은 최 병장을 붙들었다. 최 병장은 중대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민구 얼굴이라도 보겠습니다. 중대장은 말했다. 자살테러범은 얼굴이 없는 거다. 최 병장은 중대장에게 다가갔다.
“왜 하필 김민구야…….”
“모든 일에는 명분이 필요한 거다. 김 일병은 유일한 관심병사였다.”
“당신은 그냥 섬을 못 지킨 사람이잖아!”
“나 혼자의 선택이 아니야!”
최 병장은 중대장의 소총을 뺏어 들었다. 간부들은 일제히 최 병장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최 병장은 총구를 하늘로 세운 채 뒷걸음치며 채 막사 쪽으로 다가갔다. 간부들의 총구는 최 병장을 향해 있었으나, 그 누구도 최 병장을 조준하지 않았다. 최 병장은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화염 냄새가 진동했다. 난생 처음 맡는 냄새였다. 마치 또 다른 섬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시체들이 있는 방은 이중, 삼중으로 폐쇄되었다. 최 병장은 김 일병이 테러를 했을 상황을 상상했다.
김 일병은 훈련소에서 배운 그대로 수류탄을 던졌을 것이다. 수류탄 준비, 안전클립 제거, 안전핀 제거 전방을 보고 힘껏 투척! 훈련소에서 배운 대로 입으로 읊조리며 천천히 실행했겠지. 김 일병은 하향 투척했을까, 상향 투척했을까? 어디로 떨어졌을까? 아마도 수류탄은 데굴데굴 구르다 바닥의 먼지와 뒤엉켰을 것이다. 병사들은 2층 침대에서 누군가 무엇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했겠지. 그리곤 사거리 3KM 총을 3M 거리에서 난사하다가 결국 자신도 뒤로 넘어졌을 것이다…….
“말도 안 돼. 수류탄 작동법도 잘 모르던 새끼야.”
최 병장은 읊조렸다. 그는 다른 방으로 걸었다. 걷다가 총을 바닥에 놓아 내렸다. 김 일병의 자리로 갔다. 그곳에는 한 장의 편지가 놓여져 있었다. 발신자는 여수시 거문도 복지회관이었다. 편지에는 차분한 글자로 적혀 있었다. 귀하의 할머니께서는 현재 당신이 보내는 편지들에 답장을 하실 수 없다고. 위독하니 휴가를 신청해서 내려와 달라고. 최 병장은 옆에 놓인 손전등을 들었다. 옷장에 걸린 김 일병의 사진을 향해 손전등을 켰다. 켜지지 않았다. 김 일병은 밤마다 침낭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할머니에게 편지를 썼을 것이다. 손전등의 건전지는 다 닳아 있었다. 밖에서 간부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헬기는 금방 도착했다. 사람들은 임시 막사 안에서 조사를 받았다. 사람들은 모두들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중대장과 간부들에게 교육 받은 내용이었다. 본토에서는 생존한 섬 사람들을 거의 일시에 조기 전역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국가유공자로 지정했다. 평생 동안 받을 혜택에, 집에 일찍 갈 생각에 그들은 서둘러 짐을 쌌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섬에서 나가고 싶었던 사람들이었다. 최 병장은 유일하게 조사를 받지 않았다. 김 일병의 담당 선임은 박 상병으로 되어 있었고, 최 병장은 취사병이 되어 있었다. 중대장은 최 병장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이게 섬을 지키는 일이야.”
최 병장은 중대장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마지막으로 경계 근무를 서는 일이었다.
*
오후가 되자 제설 차량의 작업으로 차도가 뚫렸다. 간부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다른 섬에 있다가 온 사람들도 있고, 섬에 처음 온 사람들도 있었다. 새롭게 추가된 간부들은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곳의 경계는 유지되었다. 최 병장은 멍하니 앉아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귀순자 대피 절차를 되뇌어보았다.
“손 들엇! 손 들엇! 누구냐? 북에서 넘어온 귀순자인가? 추격자는 없는가? 무기가 있다면 그 자리에 높고 뒤로 다섯 보 물러서라. 두 손을 허리에 감싸고 그대로 엎드려라. 내 말만 잘 들으면 당신은 안전하게 당신은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보호 아래서 평생 동안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당신의 귀순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순간 밖에서 큰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밖을 쳐다보았다. 한 여자가 소주병을 들고 비틀대고 있었다. 간부들은 달려들었고, 최 병장도 밖으로 나갔다. 트럭이 막사에 부딪혀 음식물찌꺼기가 이리저리 튀어 있었다. 최 병장은 아줌마를 향해 갔다. 간부들은 아줌마를 잡아끌었다. 여자의 살집이 여기저기로 튀며 동시에 비틀거림도 심해졌다.
“치매두린 년이 날고 기 봐야 뭔 일이 되겄소! 도새 죽을 목심이라도 아부지 보러 여까장 왔는디!”
최 병장은 다시 돌아섰다. 북녘에서는 나팔소리와 노래가 퍼졌다. 북쪽의 국가적인 행사가 있는 날에만 퍼지던 노래였는데, 그날은 북쪽의 어느 명절도 아니었다. 왜 그런 노래가 퍼졌을지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섬에는 많은 차들이 들어왔다. 언론사와 신문사, 그리고 국방부장관과 미 국방부차관도 방문했다. 미디어들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촬영이 가능했고, 한발 늦었다는 인상을 풍겼다. 국방부장관과 미 국방대변인은 섬의 가장 높은 경계 초소로 올라갔다. 사단장는 기다렸다는 듯이 배우처럼 대사를 읊었다.
“메우리 소초를 방문해주신 국방부장관님과 미 국방 차관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현재 아군 작전 현황으로는 DMZ 수색 14에서 18, 수-3-4, 통문 매복 17시에서 05시, 9와 1과 0, 531GP입니다. 현재 위치하고 계신 421초소는 서북전선의 요충지로 과거 교전이 계속되던 지역입니다. 북한군이 침투하게 된다면 전방 우장산을 우회하여 저수지 물골을 따라 침투할 것으로 예상되며, 또한 532GP 보급로를 따라 적의 대전차 침투도 가능합니다. 이곳이 뚫리게 되면 서울까지 1번국도로 바로 진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경계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습…….”
펑! 펑! 북쪽의 채석장에서는 연이어 폭음이 들렸다. 미 국방 차관은 이러다 전쟁이 나는 건 아니냐며 농담을 하곤 멋쩍어 했다. 국방부장관은 웃으며 이야기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곳은 정예 인원으로 철통 경계를 하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북은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입니다.”
사복을 입은 한 여군은 미 국방 차관에게 통역을 해 주었는데, 그는 초소 안 니콘 망원경에 온통 관심이 가 있는 듯했다. 망원경 렌즈 사이로 북쪽의 연기가 타 올랐다.
“이곳은 이 안에서 전쟁이 일어났지 않았습니까? 아주 큰일입니다. 내부 사람들부터 잘 경계해야겠군요.”
사단장과 국방부장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뒤로 최 병장은 마지막 경계 근무에 투입 중이었다. 그가 배정된 곳은 언론과 VIP들이 접근하지 않는 가장자리 쪽의 초소였다. 그곳 창문에는 선임하사가 낙서를 해놓고 있었다. 전 근무 때까지도 없었던 낙서였다. 그곳에는 선임이 괴롭혀서 죽이고 싶다는 유서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한 사람에게 총을 겨누는 그림도 있었다. 최 병장은 이 초소를 김 일병의 자살테러 사건과 엮은 뒤 귀신 초소가 되어 폐쇄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김 일병이 이곳에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말이다. 선임하사는 최 병장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조용히 내려갔다.
최 병장은 북쪽을 보며 담배를 물었다. 모든 것이 연극 같았다. 고개를 돌렸다. 섬을 바라보았다. 섬은 섬일 뿐이어야 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어딘가 맞은 것처럼 피를 토해내는 노을이 그의 뒤로 점점 퍼져나갔다. 최 병장은 옆 사람에게 소변을 보겠다고 하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뒤따르는 이는 없었다. 언젠가는 막힐 그 순간까지 혼자 걸어 내려갔다.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역시나 섬의 밤은 빨리 왔다. 밤이 밤 같이 오지 않은 곳. 최 병장은 걷고 또 걸었다. 막사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고, 논밭을 걸었다. 멀리서 빨간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섬의 출구였다. 주변에서는 어렴풋이 노래가 들려왔다. 다른 섬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조국을 지키는 보람찬 길에서!”
“우리는 젊음을 함께 사르며!”
“깨끗이 피고 질!”
“무궁화 꽃이다아!”
최 병장은 가사를 따라 부르다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순간 뒤에서 무언가가 최 병장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그는 조심스레 뒤를 돌아봤다. 찬 공기의 북풍이 화약 냄새를 안고 그의 얼굴에 부딪쳤다. 최 병장은 바람을 맞으며 한참이나 북녘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상할 정도로 별이 보이지 않는 밤이었다. 인공위성 하나가 유난히 반짝이다 사라졌고, 사라진 인공위성이 화약 냄새를 품은 채 섬으로 날아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