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레터] 잠시 놓아주어야 아름다운 것들

어느 겨울날의 안부 - Ep.06

by 오로지오롯이



내가 찾아간 이 풍경은 사실

내가 선택한 내 감정의 모양이다




이제 곧 다른 계절의 감각에 취해 살아갈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은 풍경이 있었다. 겨울이 끝나기 직전의 눈 풍경은 늘 급하다. 조금만 늦어도 바닥은 젖고, 하얀 것은 금세 투명해진다. 그래서 그날은 새벽부터 마음이 서둘렀다. 눈을 뜨자마자 창밖을 먼저 확인했고, 아직 남아 있는 흰빛을 보자마자 옷을 챙겨 입었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닌데, 약속 시간을 놓칠까 봐 뛰어나가는 사람처럼.


고백하자면 이번 겨울의 눈꽃은 내게 결정된 감정, 감정의 결정체와 같았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마음이 눈처럼 형태를 갖춘 것. 눈으로 꼭 확인해보고 싶은 그 무언가였다. 다시 녹아 흘러내리기 전, 꼭 봐야만 했던 내 모습이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왔다. 바쁘다는 이유로, 다음에 보면 된다는 말로, 마음을 유예해왔다. 그런데 겨울의 끝에서는 그 변명이 잘 통하지 않는다. 녹기 시작한 눈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그 풍경을 보러 가는 길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사람들은 이미 봄 쪽으로 몸을 돌린 듯했고, 나는 반대로 겨울의 잔여를 찾아 걸었다. 눈이 남아 있는 곳은 늘 정해져 있다. 햇빛이 덜 드는 담장 아래, 건물 그림자가 길게 눕는 길모퉁이, 바람이 쌓아두고 간 모서리. 거기에는 아직 하얀 것이 남아 있고, 발끝을 대면 바삭한 소리가 난다. 손으로 살짝 건드리면 가장자리가 먼저 부서지고, 그 부서짐이 오히려 더 반짝인다. 나는 그 반짝임이 필요했다. 사라지기 직전의 것들이 가진 유일한 솔직함 같은 것.


그제야 인정하게 된다. 내가 찾아간 이 풍경은 사실 내가 선택한 내 감정의 모양이다. 눈꽃을 보러 왔다고 말했지만, 실은 내 안에서 이미 굳어버린 마음을 확인하러 온 것이다. 뭉개면 물이 되고, 놔두면 스스로 흐르는 것. 붙잡을 수도 없고, 붙잡으려 할수록 손만 더 차가워지는 것. 눈꽃이 얄밉다고, 매정하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따뜻한 계절이 되면 자연스레 녹아 어디론가 흘러가버리고 마는 것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놓아줘야 한다. 잠시 놓아주어야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나는 그 풍경을 오래 보지 않았다. 오래 보면 더 많은 걸 붙잡고 싶어질 테니까. 대신 짧게, 정확하게 기억하려 했다. 하얀 결의 방향, 가지 끝에 얹힌 무게, 그 아래로 드리운 그림자의 푸른 기운. 그리고 마음속으로만 한 통의 엽서를 보냈다. 이 계절이 보낸 한 통의 엽서가 당신의 어느 곳엔가 스며들어, 따뜻한 계절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녹아내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눈꽃이 사라진 뒤에도, 사라진 방식까지 포함해서 오래 남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이번 겨울의 눈꽃은 결국 모두 녹아내렸을 것이다. 길은 젖었고, 하얀 것은 흔적만 남기고 빠져나갔다. 그런데도 나는 믿는다. 그 찬란함의 기억은 네 안에서 두고두고 설렘의 감정으로 쌓여, 오늘을 행복하게 보내야 할 이유 중 하나로 오래 남을 수 있다고. 또다시 눈이 내리는 훗날에는, 당신 안에서 결정된 내 감정의 형상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우리는 웃으며 말할지도 모른다. 흘러간 것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더 선명하다고.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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