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의 안부 - Ep.07
겨울 바다는 해 질 무렵에만 잠깐 온도가 올라간다. 정확히는 바다가 따뜻해진다기보다, 빛이 물 위에 얇게 퍼져 있는 순간. 바람은 여전히 차갑고, 모래는 단단하게 굳어 있는데도, 수평선 근처만은 한 겹 덜 차가워 보인다. 나는 그 시간을 종종 붙잡는다. 하루가 끝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전에, 끝나기 직전의 빛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다.
노을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느려진다. 파도는 금빛을 끊었다가 이어 붙이고, 바람은 그 조각들을 흩트렸다가 다시 모아 놓는다. 눈앞에서 계속 부서지는데도 멀리서는 하나의 길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 한참을 그 길만 따라가다 보면, 문득 고개를 돌리게 된다. 그때 알게 된다. 어느새 저녁이 깊어 있다는 걸. 천천히 저물어가는 빛을 따라가느라, 등 뒤의 어둠이 찾아온 줄도 몰랐다는 걸. 바다는 늘 앞에서 반짝이는데, 밤은 늘 등 뒤에서 자란다.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마음에 남는 날이 있다. 빛은 눈이 닿는 곳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빛이 멀어지는 동안에도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 해는 저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곳을 비추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빠져나간 빛은 다른 창에 닿고, 다른 골목을 스치고, 다른 바다 위로 옮겨갈 것이다.
내가 끝이라고 부르는 순간에도, 빛은 누군가의 시간을 계속 밝히고 있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동하는 것. 그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조금 놓인다. 오늘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늘이 다음으로 넘어간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런데 겨울 석양은 또 하나의 사실을 같이 보여준다. 빛을 붙잡는 데에만 집중하면, 어둠이 깔리는 속도를 놓친다는 것. 누군가의 따뜻함만 좇다 보면 함께 있던 사람의 그늘을 지나치기도 한다. 반짝이는 것만 바라보다가, 옆에 있던 표정이 바뀌는 순간을 모른 척해버리는 일. 돌아보면 마음 한구석에 이미 밤이 내려앉아 있는 일. 겨울 바다는 그런 실수를 꾸짖지 않는다. 다만 그대로 보여준다. 빛이 길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빛이 오래 머물러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노을을 보는 동안, 한 번쯤은 고개를 돌린다. 지금 내 뒤에 어떤 색이 깔리고 있는지 확인한다. 어둠을 두려워하려고가 아니라, 어둠이 온다는 사실을 미리 받아들이려고. 그제야 노을이 더 정확해진다. 빛이 아름다운 이유는 빛이 계속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빛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 붉음이 사라지면 푸름이 오고, 푸름이 깊어지면 가로등이 켜지고, 불빛은 사람들의 창문에서 다시 태어난다. 밝음의 방식이 달라질 뿐, 세상은 완전히 꺼지지 않는다.
겨울 바다 앞에서 나는 오늘의 끝을 조금 다르게 부른다. 지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 노을이 멀어지는 동안에도 빛은 다른 곳으로 건너가고, 내 등 뒤의 밤도 조용히 제 차례를 시작한다. 빛과 어둠이 서로를 밀어내며 교대하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오늘을 넘긴다. 너무 늦지 않게 고개를 한 번 돌려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