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作

by 오로지오롯이


[저작의 의의]


이 소설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 시절을 담담하게 풀고 있다. 그 담담함 속에는 분노도 있고, 회한도 있으며, 희망도 얼핏 있다. 이 소설이 갖는 의의는 다른 전후 소설과는 다르게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남과 북의 이념의 대립, 그리고 그 시절에 살아가던 국민들의 처절한 세태보다는 자신이 바라본 우리네 인간 본성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부드럽고 찰진 문체로 담백하게 서술하며,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실타래 풀듯 늘어놓고 있다. 남과 북의 치열한 이념 대결 속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로 양측의 눈치를 다 보면서, 양쪽의 구박을 다 받으면서 그냥 어정쩡하게 살아가야만 했던 힘들고 지난한 민초들의 삶이 책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또한 이 소설에는 작가가 경험했던 것에 관한 미세한 감정까지도 기억하고 묘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의 광기 앞에서 공포로 인하여 남들은 자신의 시선을 힐끗 던지고는 지나치는 일들에서도 전율하거나 아니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휘감기며 서술되어 있다. 작가의 공포체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사소한 것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소설에 녹아내려 있다.



[작가 소개]


1931년 경기 개풍에서 태어나, 1950년 서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하였다.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완서에게 한국전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온 `똑똑했던` 오빠가 `이제는 배부른 돼지로 살겠다.`던 다짐을 뒤로 하고 여덟 달 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 후 그의 가족은 남의 물건에까지 손을 대게 되는 등 심각한 가난을 겪는다.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한국전쟁 발발 후 곧 대학을 중퇴한다.


1) 일반 역사(저자와 당대 독자들의 시대와 문화)

역사는 늘 반복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전쟁의 이념 대립은 저자가 이 소설을 집필한 80~90년대 민주화 운동과 많이 닮아 있다. 그 시절 수많은 학생들과 문인들은 독재에 대항하여 국가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이 과정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념의 잣대로 ‘빨갱이’, ‘빨치산’ 등 민주화 운동에 목숨을 내놓던 사람들의 인격을 폄하하고 무시하는 세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저 살기 위해,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에 대한 희생 강요는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주었던 상처와 닮아 있었던 것이다.


2) 특수 역사(저자의 상황과 관련되어 그 책이 쓰인 배경과 목적)

이 소설은 2011년 암으로 세상을 등진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이다. 박완서는 자신의 경험을 소설에 녹여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란 소설에서는 박완서의 행복하면서도 여유 있던 유년시절에 대한 아름다운 회상이라면, 이 소설은 6.25라는 미증유의 재난을 몸으로 부딪치며, 험난하고 신산스런 삶을 살아온 우리 윗세대들의 눈물 나는 현장 기록인 셈이다. 박완서 소설가가 특유의 문체로 담담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은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의 울부짖음 같기도 하다. 전쟁 기간 동안 작가는 20살의 처녀였고, 서울대에 막 합격했지만 새내기의 환희를 채 느끼지도 못한 채 죽음이 매일 어깨위로 넘나드는 세월을 숨죽이며 보내야 했다. 역사가 자신에게 부여한 상황은 너무나 참혹했고, 작가는 그 현실의 기록을 남겨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여운을 주려 했을 것이다.




[각 장의 논점]


꿈꿨네. 다시는 꿈꾸지 않기를

1951년, 1.4후퇴 직후의 서울 살이를 그린다. 오빠는 인민의용권에 참전했다가 사선을 뚫고 되돌아온다. 오빠의 부상으로 인해 남쪽으로 피난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게 된다. 사상의 진공 상태인 서울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느 쪽의 사상도 들어내놓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안에서 주인공은 올케와 빈집털이를 하며 연명한다.


임진강만은 넘지 마

1951년 초 겨울, 주인공은 살기 위해 인민위원회에서 일을 봐주게 되고 갑자기 세상이 또 바뀌어 인민군이 후퇴하게 되자 그들은 작가와 올케를 이북으로 강제 피난을 가게 한다.


미친 백목련

1951년 초 봄, 북쪽으로 가면서 겪는 일을 그린다. 교하에서의 피난 생활, 국군의 서울 재수복 등을 그리며 주인공은 돈암동 집으로 돌아온다.


때로는 쭉정이도 분노한다

서울 돈암동 집에서의 생활을 그린다. 숙부는 지겟벌이를 하고, 주인공은 향토 방위대원이 된다. 하지만 주인공이 향토 방위대원과 피난을 가고, 나머지 가족은 천안으로 피난을 가면서 다시 가족과 헤어진다.


한 여름의 죽음

1951년 가족들은 다시 서울로 집결한다. 가족들은 오빠의 죽음으로 또 한번 비극을 맞게 된다. 오빠를 급하게 매장하고 어머니의 오열과 남은 가족들의 무의미한 나날들이 그려지면서


겨울나무

곧 전쟁이 끝나고 작가가 피엑스에 취직하면서 희망이라는 싹을 틔우고, 올케의 보따리 장사로 인해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은 정신적인 공허가 점점 커진다.


문밖의 남자들

초상화부의 일을 하며 박수근 화백과 만나고, 남편이 될 사람을 만나게 된다.


에필로그

1953년 초, 동대문 시장에 가게 터를 마련하며 성공한 올케와 결혼하는 주인공을 그린다.



[주요 개념]


이데올로기

좌우 이데올로기싸움에서 작가의 오빠가 겪었던 상황은 작가가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자신도 깊게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오빠를 통해 그저 담담하게 관찰되는 이데올로기 대립은 더욱 강한 충격을 준다.


전쟁

이 소설은 정신적 파탄의 공간 속에서 참혹한 전쟁이라는 야만의 시간을 견디면서 한 인간이 어떻게 고귀한 생명을 유지하고, 또 인간적 존엄을 최소한이라도 지키려고 몸부림쳤는가에 대한 눈물겨운 증언이다.


성장

미성년의 박완서는 미미하게 남아 있는 과거의 질서 속에서 보호받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새로운 가능성인 오빠의 질서 속에서 보호 받으면서 성장한다. 이처럼 부권으로 상징되는 삶의 질서가 지극히 약한 시대 속에서 박완서는 성장한다. 이 성장기는 그 시절 누구에게 적용될 수 있었던 보편적 과정이었다.




[저작의 현대적 의의]


한국전쟁 발발 당시, 우리의 정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수도 서울을 사수 할 테니 믿어 달라"는 거짓방송의 허망한 목소리로 국민들을 기망했다. 거기에 속은 국민들은 인민군이 서울에 진주하고 나서야 사태를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 소설은 그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한 나라의 정부와 우두머리가 어떤 판단을 내려야 국민들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이 소설 안의 역사로서 우리는 느끼고 증명할 수 있다. 최근 세월호 침몰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많은 현안들에 대해 국민들은 정부에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 누구 한 명의 판단이 아닌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을 이끄는 것은 민주사회의 기본이며, 수장의 덕목일 것이다. 전쟁 당시 피란살이를 마치고 돌아온 정부는 마치 무슨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양 인공치하를 힘들게 살아온 시민들을 부역자인양 몰아붙이며 학대하고 괴롭히고 조금만 맘에 안 들어도 빨갱이라는 죄목으로 처벌했었다. 이는 현재의 종북 몰이의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현 시대가 한국전쟁 당시로 회귀되는 상황이 아닌지 두렵기까지 하다.


또한 가족의 입장에서 돌아와 생각해도 이 소설은 현대적 의의를 띄고 있다. 그 시절 어머니들의 모습대로 작가의 어머니도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런 세월을 이 악물고 버텨내며 오직 작가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악착같이 세상을 살아내는 모습을 통해 우리네 부모님의 자식 사랑. 희생을 느낄 수 있다.


9788901248196.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평론]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