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는 아들이지만, 때로는 저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 같은 아이가 있습니다.
세심하고 감성적인 기질은 저와 꼭 닮아, 제가 책을 읽고 기록하는 것에 몰두할 때면 아이는 늘 그 옆에서 자신만의 작은 역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사진으로, 연력으로, 때로는 감사 일기로.
길게 이어진 건 많지 않았지만, 그렇게 기록의 언어에 익숙해진 아이는 스스로의 의지로 방학중 오픈한 학교토론 수업에 발을 디뎠습니다.
첫날, 아이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했습니다.
기대감과 함께 찾아온 작은 좌절감. 자신보다 훌쩍 큰 6학년들이 주도한 '별이 광합성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는 아이에게도, 그리고 5학년 친구들에게도 낯설고 어려웠다고 합니다.
아는 것과 말하는 것의 간극을 처음으로 마주한 것이죠.
저는 아이에게 묵묵히 방향만 알려주었습니다.
"다음 토론 전에는 이 주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찾아보고 메모해 가면 어떨까."
며칠 후, 아이는 제게 작은 수첩을 내밀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메모한 내용을 발표하며 처음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말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저는 미처 몰랐던 자부심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어려운 주제는 아이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죠.
아이가 사용 중인 구글 계정을 통해 들어가 본 토론 슬라이드에는 '적색거성', '청색왜성'과 같은 생소한 단어들이 가득했습니다. 저마저도 낯선 그 단어들을 뤼튼과 GPT에 검색하며, 저는 아이에게 구글 독스에 내용을 정리하는 법과 단축키를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학습을 넘어, 아이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저의 작은 바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토론 수업이 끝난 후, 아이는 적지 않은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친구의 계정으로 접속하는 바람에 구글 독스의 자료를 활용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맡은 내용을 제대로 정리하고 말하지 못했다는 자책, 아쉬움이 깊었습니다.
"엄마, 제 생각을 조리 있게 잘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아이의 솔직한 고백은 저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저는 망설이지 않고 아이에게 독서 토론 수업을 제안했고,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전부터 시키고 싶었지만, 이제야말로 아이가 스스로 필요로 하는 때가 온 것이죠.
하지만 아이들 과정은 생각보다 찾기 힘들었습니다.
집 근처의 교실들은 줌 수업 자체를 진행하지 않았고, 어떤 유명한 업체와의 상담에서는 저의 진심과 다른 '성적'과 '내신' 이야기만 오갔습니다. 아이가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생각의 힘을 키워주고 싶은 저의 바람은 과연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요.
그렇게 헤매던 중, 마침내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시작되었다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즐겁게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온라인 줌 수업을 찾았습니다. 아이는 이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법을 배우고 발표할 수 있는 상황들을 꾸준히 갖게 될 것입니다.
아이의 작은 실패가 저와 아이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 길의 끝에서, 아이가 자신만의 목소리를 자연스럽고 조리있게 말할 수 있는 그 날이 기대됩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저는 아이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가장 친한 친구로 곁에서 최대한의 서포트를 하려합니다.
아이가 조잘조잘 거침없이 이야기 할 그날이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