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독서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취미랄 것이 없었습니다. 일회용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학생에게 필름값과 인화비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죠. 사진관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취미'라기보다 '가끔 하는 놀이'에 가까웠습니다.
20대가 되어서는 오직 '생활비를 벌기 위한 일'에 몰두했습니다.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저라는 사람 자체를 버리고, 오직 회사와 연봉에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흥미와 취미는 생각할 틈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19년 가까이 지속하니, 문득 일이 지겨워졌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니, 저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40대들이 참 많았습니다.
15년, 혹은 20여 년간 해오던 일이 너무나 지겨워 결국 사표를 던진 중년들 말이죠. '하던 일 계속하면 돈을 좀 더 편하게 벌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이냐'는 주변의 시선이 있었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돈 때문에 지속했던 일,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을요.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저와 같은 케이스를 여럿 보니 한 가지 바람이 생겼습니다. 아이에게는 저와 같은 길을 걷지 않게 하고 싶다는 바람.
TV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초등 때부터 의대 목표' 같은 거창한 꿈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이가 좋아하고 흥미 있는 것을, 흥미가 떨어질 때까지, 혹은 또 다른 흥미를 찾을 때까지 마음껏 펼쳐 보이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의외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흥미있어하는지 모르고, 찾기 힘들어하는 어른들이 많더라구요.)
만들기와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아이는 1학년 때부터 꾸준히 미술학원을 다녔고, 뜨개질에 흥미를 보여 아카데미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소품은 물론이고 가방, 심지어 옷까지 곧잘 뜨는 아이를 보며, 자신의 취미 생활을 오롯이 즐길 줄 아는 아이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아이가 이토록 자신의 흥미를 굳건히 지키기까지는 저의 숨은 노력도 꽤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 만들기 분야라도 다양한 경험을 해보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유튜브 채널 '사나고'를 보며 3D 펜을 사서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열을 가하면 플라스틱으로 변하는 '슈링클스' 키트도 사봤습니다. 뜨개도 손가락만 있으면 뜰 수 있는 신기한 실들을 준비했고, 그림을 그리더라도 연필, 찰필, 수채화, 아크릴, 마카, 오일 파스텔, 나이프 페인팅 등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미술 재료들을 준비했어요. 아이의 흥미가 닿는 곳이라면 무엇이든 준비해서 함께 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고 흥미 있는 것에 집중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굳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아니, 요즘 크리에이터들처럼 자신이 좋아하고 흥미있어하는걸로 돈을 벌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요.
그리고 이것은 삶의 힘든 순간을 버텨낼 수 있는 나만의 안식처, 나를 온전히 채울 수 있는 작은 행복의 조각들이 될 겁니다. 그저 아이의 삶이 제가 그랬던 것처럼 '해야만 하는 일'로만 채워지지 않기를 원하고, 아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야말로, 100세까지 살아야하는 우리들이 잃지 말아야 할 삶의 원동력이 될 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