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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Oct 26. 2023

칼국수 반죽은 홍두깨로 미는 겁니다

AB슬라이더의 쓰임

SBS 박소현의 러브게임 디오방송 관계자로부터 당시 고가의 치즈케이크를 선물 받았다. 케익이라면 느끼한 버터크림에서 이제 막 갈아타, 생크림 케이크의 신세계 겨우 맛만 봤던 시절.

치즈케익이란 내게 워낙 생경해서 맛은 물론, 모양새도 머리로는 감히 추측불가였다. 갸우뚱.




맛과 모양을 함께 상상하기 어렵기론 치즈케이크 못지 않았던 (잠시 웃고) 문제의  '멜론생채'를 소재로 사연을 보냈던 거다.


서울 부자들은 동네슈퍼나 재래시장, 마트가 아닌 백화점이란 곳에서도 식품을 사간다?는 게 마냥 신기해 덩달아 소비를 해 봤다. 베블런 효과에 이끌리듯 알바비를 탈탈 털어 당시 보기 드문 노란 멜론을 호기롭게 사간 덕분이었나. 나왔슈~


할머니를 뵈러 가는 길, 세련된 노란 멜론이란 걸 사서 가기는 했으나.. "이거 아주 구하기 힘든거다. 너무 맛있다. 꼭 맛보라."는 생색만 급히 던지고 아빠의 병실 간병이모님과 바톤터치를  하기 바빴던 .


서너 시간이 지났을까?

매번 병원 밥 맛도 없을 텐데 입맛 돋우려 노각생채 좀 만들어 왔다며 나의 할미가  놓은 반찬.

다름 아닌

멜. 론. 생. 채.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망고씨의 정체에 대한 경험이 전무해... 대학시절 남자 친구 부모님 앞에서  과일은 제가 잘 깎는다~ 호호대며 기어이 망고를 요절내 으로 대접해야 했던 것처럼.

인간의 무지란.. 종종 계획에도 없던  창의적 결과물을 도출해 낸다.


 덕에 세상 모든 만물은

어떻게든 쓰임 받나 보다.


내게 ab슬라이더가 그렇다.

지금은 아이들의 기억과 함께 버려진 슬라이더

시아버님께서는 분명, 다니시는 건강원에서  받으셨다며 내게 "칼국수 할 때"  쓰라셨다.

칼국수라..  기구의 소재가 살짝궁 의심을 불러 왔어도..

신뢰란 상호관계의 기본이라는 마인드로 밀가루 반죽을 미친 듯이 밀었다. 나름 밀긴... 민 거다.

바닥을 밀든, 반죽을 밀든 쓰임은 정확히 받은 아이가 바로 저것.


저놈에 슬라이더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북클럽 멤버들과의 톡방에서도  차례 회자되었고, 그때도 차마 부끄러워 칼국수 반죽을 미는 사람은 없겠죠? 라며 너스레를 떨 수 없었다.

그저 도도하게 "어깨, 코어운동을 위해" 쓰임 받도록 상세설명까지 덧붙인 나. 



징한 인연, 그 녀석을 다시 마주한 건 다름아닌 PT 센터에서 였다.

오늘따라 피부가좋아보여 선호해오던  이 조명, 으스스하다.


슬라이더 손잡이 보다 더 무서운 건 아마도 저..

무릎매트가 아닌가 싶다.


닭모가지가 잘리기 전 놓인 도마 같달까?

주리를 틀고자 자리한 죄인의 나무의자.. 뭐 그런.



두둥~

AB슬라이더 앞에 무릎을 꿇는다.

AC... 슬쩍 간지를 잃고 만다. !

보나 마나 "턱부터 찍고 만세"부르겠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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