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나를 돕는 방법, 그 BGM
할머니는 절에 계셨다.
절 사람들은 우리 할머니를 '공양주 보살님'이라 불렀다.
방학이면 그리 가서 지냈고, 줄 곧 바다를 마주한 채 살았는데, 40이 되어서 이제야 바다가 좋다.
사람들이 관광지로 찾는 그런 바다를 괴롭게 여기기를 30여년이 흘렀다.
강산이 여러 번 변할 만해서 나도 변했나. 지금은 바다가 참 좋다.
사람들은 바다를 보면 가슴이 탁 트인다던데(이건 좀 표현이 식상하지 않냐 핀잔을 주곤 했는데 진짜로 그들은 그렇다고 한다) 내 유년 시절 바다는 그저 울기 딱 좋은 장소, 그 이상의 역할을 못 해 냈던 것 같다.
아니지. 각도를 달리해 바라보는 게 창의성이라던가.
달리 보면 나에게 꽤 큰 역할을 해 준 거다. 바다가 나를 돕는 방법, 그 BGM.
법당에 올라 주지스님 몰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다 기어 나올 때면 마주하던 정동진 바다.
그 곳 바다는 멀리라 조용했다.
반대로 31번 버스 종점에서 내려 창피함도 못 챙기고
꺼이꺼이 울던 안목 바다는 나처럼 목청이 컸다. 파도소리가 BGM역할을 톡톡히도 잘 해냈다.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지도 않고 곁에 내려둔다.
3센티만 아래로 박아두면 된다. 모래사장은 겨울바람에도 종이컵을 날릴 줄 몰랐다.
식었다 싶으면 원샷. 10분도 못 채우고 바삐 집으로 간다.
그 당시 나는 조용히 울거나 짧게 울었었다.
10대 소녀가 남몰래 혼자 세운 철칙이 그랬다.
그렇지 않으면 흔적이 남고, 아빠가 알아채는 게 죽도록 싫었다.
안목 가는 버스에 자주 오른 탓에
난 우리 할아버지마냥 일찌감치 커피를 즐기는 여중생으로 자랐고, 묘하게도 우리 식구들은 믹스커피를 좋아들 한다. 피는 못 속이나 보다.
2년 꼬박 외롭고, '손끝도' '가슴도' 촌촌히 찢겼을 아빠에게 다시금 살 이유가 생겼다.
나에게 새로이 엄마가 생기려던 찰나, 나는 많이 아팠다.
그 때 얻은 지랄병이 아이를 둘이나 낳고도 오래 따라다닌 걸 보면 꽤 지독한 놈이었는데.
내가 아픈걸 나도 모르며 살아온 게 가끔 언짢고, 여럿 원망스럽기도 하다.
사춘기 소녀에겐 이유 없이 미워 마땅해도 될 대상, '새 엄마'
새 엄마라는 사람을 난 참 온전히 사랑했다. 한 번도 세 글자로 불러보질 않았던 걸 보면 내 사랑이 순수했던 거 맞다. 언제나 내게 엄마는 단 한 사람이란 걸 알았다. 새겼다.
그리곤 알지 못했다.
내가 '한번 더' 엄마를 잃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pex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