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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xiweol Nov 06. 2024

오후 두 시, 낮잠.

-소중했던 기억은 어떤 형태로든 담고 싶어지니깐.


  거실로 따사로운 햇살이 잔뜩 들어온다. 맨발에 닿는 장판이 적당한 온도로 데워져 있다.

눈을 깜박깜박. 눈꺼풀이 무거워져 온다. 잠에서 깰락 말락. 소파에 옆으로 누워 엄마의 등을 게슴츠레 바라보고 있는 내가 보인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에서 엄마는 가계부를 적고 계시거나 책을 읽고 계셨다. 하원하고 돌아온 어린 나는 햇살을 이불 삼아, 바로 코앞에 있는 엄마의 등에서 나는 포근한 냄새를 맡으며 자주 낮잠을 잤다. 엄마는 할 일을 하시다가도 한 번씩 자고 있는 나를 돌아봤고, 담요나 외투 같은 것들을 덮어주셨다. (이불이 아닌 낮잠과 어울리는 그것들이 몸에 닿는 느낌을 유독 좋아했던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바라봤던 노오란 햇살이 붉은 노을빛으로 물들어 가기 전까지 그렇게.\

그 기억이 얼마나 좋은지, 그때의 엄마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도 종종 ‘포근함’을 생각하면 떠올리는 장면이다. 내가 있었던 소중한 순간들을 기억이라는 여행용 가방에 잘 담아두고, 지난 정거장은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열차는 빠른 속도로 철길을 통과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컷컷이 남겨져 이따금 나를 미소 짓게 만드는 기억들은 그리 어마어마한 순간들이 아니었다. 가족끼리 놀러 가서 밤공기 한가운데에 매캐하게 구워 먹던 조개구이, 길고 길었던 수험 생활 중 낙이었던, 학원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들렀던 교보문고, 마음까지 얼어붙을 만큼 차가웠던 겨울을 보내고 벚꽃이 피어나는 봄을 온 피부로 맞이했을 때의 햇살의 감촉,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


  너무도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라 어딘가에 남겨두지 않고 넘어가버린, 날 숨 쉬게 해 준 순간의 첫 기억들. 살아가고 있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그런 소중하고도 포근한 순간들을 너무 무심히 흘려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굵직굵직한 사건 말고도 지금의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소소하고도 편안했던 첫 기억들 덕분인데 말이다.


  해가 바뀌고 그런 다짐을 했었다. 올 한 해는 더 부지런히 평범한 일상에서 나를 웃게 만드는 순간들을 발견하고 기록하자고. 문신처럼 그때의 모습들을 마음에 새겨 앞으로 살아갈 때 종종 만져보고 좋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포근함의 첫 기억이 엄마의 등을 바라보며 세상모르게 스르륵 눈을 감던 그 꼬마처럼 말이다.     


  사람들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들은 지금 인생이라는 열차에 실은 여행 가방에 잊지 못할 어떤 첫 기억들을 담고 바삐 들 가고 있느냐고.


  혹시 소중했을 첫 기억들을 잠시 깜박한 건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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