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당신을 기쁘게 하나요?
누구에게나 취향은 있다.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지금 당장 무얼 선택하면 기분이 나아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본인의 취향이 확실한 사람들을 동경했다. 음식 메뉴 하나를 정할 때도 망설임이 없는 선택. ‘나는 ~걸 좋아하니깐 이거 먹을래!’, ‘저는 바닐라 향보다는 우디향을 선호해서 이 핸드크림으로 정할래요’ 짜장이냐? 짬뽕이냐?!라는 난제 앞에서도 단 한 번을 고민해 보지 않았을 것 같은 강단 있는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에 반해 나는 늘 선택 앞에서 주저했다. 딸기 아이스크림을 고르고서도 옆에서 맛있게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는 언니를 보면 초코가 더 맛있어 보였고, 고민의 고민을 해서 고른 다이어리를 사용하면서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다이어리를 잘 쓰고 있는 누군가의 인스타 피드를 보면 마음이 흔들렸다. 어린 마음에 도대체 나는 나만의 취향이라는 건 없는 사람인가 싶어서 조금 속상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뚜렷한 취향 없이 욕심부리듯 이것도 기웃, 저것도 기웃거리며 보낸 시간이 쌓여갔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런 줏대 없는 취향 덕에 오히려 더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취향도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연습이고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과거에 그렇게 기웃거리고 나니 이제는 제법 확실하게 내 취향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도 생겼다. '커피와 차 중에 뭘 고를래? 어느 걸 더 좋아해?'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당당하게 둘 다 좋아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오히려 둘 중에 하나만 좋아하는 게 나로서는 더 서글프게 느껴진다. 쌀쌀한 겨울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차 한잔과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서 쭉쭉 들이키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어떻게 차와 커피로 나누어 선택할 수가 있겠는가!
오랜 방황과 고민, 그리고 실패 끝에 생긴 나의 취향들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시원하게 대답할 수는 없다. 다만 장담하는 건 차곡차곡 생겼다가 사라지고 다시 생긴 취향들이 기분이 가라앉는 날에는 나를 수면 위로 건져 올려주었고, 우울한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무얼 해도 일이 풀리지 않는 날이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뱉은 말들은 헛소리가 되어 허공으로 퍼졌다. 완벽하게 일을 해내려고 몸에 힘을 주다 보니 오히려 작은 일들을 놓치고 실수투성이였던 그런 날. 집에라도 빨리 가고 싶은데 신호등은 족족 빨간불에 걸리는 그런 날. 한껏 처진 마음으로 겨우겨우 도착해서 찾은 건 언니와의 밤 산책이었다. 소소한 수다를 떨면서 언니랑 하는 밤 산책을 좋아하는 나는 서둘러 저녁을 먹고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 엉망이었던 나의 하루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마무리하면 그래도 조금은 환기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뭘 하면 자신의 기분이 나아지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그럴 때는 타인의 취향을 따라 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분별하게 물건을 사는 일이 아니라, 경험을 해보는 일이 좋다. 운동을 하고 싶은데 나와 맞는, 내가 더 좋아하는 운동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러닝도 해보고, 요가도 해보고, 헬스장도 가보고 해 볼 수 있는 것들을 해보는 거다. 나는 요가는 좋아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런 취향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우연히 요가를 해보고 요가가 좋다고 하는 미래의 내가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좋아도 나중에는 흥미가 없어지는 게 취향이고, 아무 관심이 없다가도 갑자기 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 싫어하는 취향까지도 나는 좋다. 그리고 그런 잡화점 같은 취향으로 만들어진 나를 보는 일도 꽤 자랑스럽다. 앞으로 더 많은 줏대 없는 취향 앞에서 고민하고 흔들리고 실패하겠거니 한다. 그러다 또 새롭게 발견하는 나를 마주할 언젠가가 기대된다.
나는 오늘 나의 취향인 노란색 점박이가 그려진 법랑 컵에 부드러운 커피 한 잔을 내려서 마셨다. 그리고 동네 뒷산을 오르며 고요하고 아늑한 동네의 모습을 좋아하는 필름 카메라에 담아냈다. 소소하게 나의 취향인 것들로 하루를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