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

by Oroxiweol

도망이 가장 쉬웠다.

어떤 관계로부터 도망을 쳐서 누군가의 눈에서 멀어지는 것.

어떤 장소로부터 도망을 쳐서 나의 마음을 지키는 것.

도망은 나를 지키는 가장 빠르고, 안락한 방법이었다.


이제껏 나의 도망에 대해 셈해보았다.

셈을 하다가 스스로가 별로인 것 같아 관두었다.


도망은 대개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진다.

도망은 부끄러운 것, 떳떳하지 못한 것, 나약한 것.

회피, 불안, 불성실함, 무책임, 단절, 괴열.

수많은 좋지 않은 단어들의 교집합체처럼 보인다.


그런 걸까.

그랬을까.

그래, 나는 그런 인간인 걸까.


나도 도망가지 않고 싶은 관계는 누구보다 꽉 붙잡아 두고 싶어 하는 걸.

나도 도망가지 않고 오래오래 마음을 두고 싶은 곳이 있다는 걸.

나는 수많은 도망으로부터 나 자신을 끌어안아줄 수 있는 방법도 조금은 알고 있다는 걸.


도망은 때때로 또 다른 도망을 낳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수많은 도망을 통해 언젠가 나다움에 이르는 경우도 있으니.

오늘도 도망칠 준비를 한다.

그 준비는 또 다른 나를 만나기 위함일 뿐.

도망 역시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신중함의 신중함을 더한 선택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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