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믿어주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
기다리던 소식이 있었다. 어쩌면도 아니고, 확실하게 어떤 결과일지 예상했다.
이번은 아니라는 것도, 좋은 결과를 바랄 수 없을 만큼의 노력을 했다는 것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도둑놈 심보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혹시 몰라, 운이 좋으면 기다리던 소식이 희소식일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반전은 없었고, 결과는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오히려 조금 더 나은 결과일지도. 이 만큼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를 그런 당연하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결과였다. 우울하지도, 속상하지도 않았다. 내가 그렇게 만든 거니깐. 이런 걸로 낙담하면 안 되는 거였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내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아는 내가. 내 힘으로, 스스로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노력하지도 않았으면서 실망하면 말이 안 되지.
담담하게 받아들였고, 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지금 나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어떤 모양의 붓으로 앞으로 펼쳐질 도로의 모양을 그려 나가야 할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내 발 아 위치를 확인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렇게 담담하게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연습도 많이 필요한 것 같다. 나를 모르고 망아지 마냥 날뛰어서도 안되고, 너무 잘 안다고 혹은 너무 못났다고 풀이 죽어 있는 건 더더욱 안 되겠지.
딱 담백하게, 담담하게 그렇게. 사사롭지 않고 객관적으로.
혹시라도 운이 좋아 오늘 마주했어야 할 결과가 만족스러웠다면 아마 나는 거만해졌을 거다. 그런 기회가 없었음에 감사하다. 오늘부터 다시 정신을 차려보는 거다.
다음에는 원하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내 노력의 결과에 대해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들인 노력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그 시간들에 1g의 후회도 없도록.
담담하게 받아들일 기회가 생겨 다행이다. 이제 다시 필통을 펼쳐본다. 펜으로 그릴지, 연필로 그릴지 신중하게 도구를 고른다. 사실, 어떤 도구를 손에 쥐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손에 쥐어진, 내게 지금 주어진 순간들을 마주하며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