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팀, 60일 간의 그림책 원고작업
책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인쇄할 원고 분량을 고려해야 한다.
국전지 1장에 8절 크기로 16쪽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16의 배수로 인쇄할 원고 분량을 확정한다.
내지 책 표지, 목차, 책정보와 간지 등을 계산해 최종 분량을 확정하며 양장본일 경우, 책 표지와 내지를 연결 할 수 있도록 표지에 부착할 페이지 (앞 뒤 한 페이지씩 2페이지)도 계산해야 한다.
옴니버스 그림책은 한 권당 3편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기 때문에 48장(96페이지)을 최종 원고 분량으로 결정하였다. 면지와 내지의 책 표지, 목차, 책정보 각 이야기별 표지 및 여백지, 표지와 내지를 이어 붙이기 위해 사용할 2페이지의 여분을 계산하였다.
본문 원고를 제외하고 총 18페이지가 필요했다. 이를 계산하여 각 이야기의 원고는 26페이지로 확정하였다.
그림책은 텍스트북과 달리, 책을 펼쳤을 때 왼쪽 페이지와 오른쪽 페이지 양면을 연결된 하나의 그림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2페이지의 양면을 스프레드라 부르는데, 각 이야기마다 확정된 원고 분량이 26p이므로 우리는
13장면의 그림으로 이어진 세계를 구성해야 했다.
60일 동안 26페이지 분량의 그림이야기 6편을 마감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이를 위해 그림작가-글작가를 따로 모집하였고 두 작가의 의견을 조율하고 일정에 맞춰 진행해 나갈 기획자를 선발해 3인으로 팀을 구성하였다.
세부 주제와 그림작가의 화풍을 고려해 흑백 그림책과 컬러 그림책으로 3편씩 나누었다.
흑백 그림책은 주거(수취인불명), 노동(초식동물생존기), 인간관계(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로 구성하고
컬러 그림책은 뒤늦은 사춘기(Once upon a time), 소수자(취존공주), 불안한 심리(자살방지클럽)로 결정하였다.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큰 주제를 공유하며 각기 다른 세부 주제와 아이템으로 6팀이 돌아가고 있었다.
팀작업은 셋이 모여 의견을 모으고 함께 결정하며 진행되지만 주요 작업시기는 각기 다르다. 시작단계는 기획자가 주도한다. 기획자는 총괄기획자와 논의한 작품의 컨셉과 아이템의 방향을 명확히 하며 팀 회의를 진행한다. 글작가는 플롯을 짜고 캐릭터를 구상하며 시놉시스를 만든다. 글작가가 시놉시스를 완성하고 13장면에 들어갈 글콘티의 틀을 만든다. 그림작가의 시간은 글작가와 겹치는데, 글작가가 구상한 플롯과 캐릭터를 바탕으로 주요 등장인물의 캐릭터 가안과 작풍을 선택해야 한다. 글콘티가 나온 단계부터 본격적인 그림작가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림콘티를 진행하며 밑그림을 그리고 이후 그림을 완성한다.
재미있게도 6팀의 그림콘티 작업방식은 모두 달랐다.
기획자와 글작가, 그림작가의 스타일에 따라 6팀의 작업 속도와 방식이 달랐는데, 팀 조합이 바뀌면 세명의 구성원에 따라 전혀 다른 스타일로 작업하였다. 2팀에 속해 작업하는 작가와 기획자가 있다 보니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6팀의 작업 스타일을 그려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팀기획자 3명은 다른 팀의 글작가로 참여했고 그림작가 2명은 컬러 엔솔로지와 흑백 엔솔로지 모두 참여하는 등 2팀에 속해 작업하는 사람만 5명이 되다 보니 각 팀의 작업 스타일을 만들고 적응하느라 바빴다.
회의 진행방식은 각 팀마다 달랐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작가, 기획자들은 주로 온라인에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내가 포함된 2팀 중 <취존공주> 팀은 줌(zoom) 온라인 회의를 주로 활용했고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팀은 다자통화로 진행하였다. 작업 진행 과정에 따라 회의 횟수가 달라졌는데 글콘티와 그림콘티 작업시기에 가장 활발하게 회의가 진행되었다. 그림 진행과정을 공유하는 단계에 이르면 팀별 회의도 줄었다.
신인작가의 출판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걱정과 우려가 심했다. 한 번도 그림책을 만들지 않은 작가와 기획자가 마감을 지킬 수 있겠냐는 걱정이 대부분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아는 사람들은 걱정하고 만류했지만 난 기획단계부터 단단한 3각 체계를 그렸기 때문에 마감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 생각했다. 사라지는 사람이 나오겠지만 작품은 반드시 완성될 것이라 생각했다. 작품 편수가 줄어들지라도.
나는 사람이 아닌 시스템을 믿었다.
글과 그림 모두 한 사람의 작가가 작업한다면 마감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신인 그림책작가와 기획자의 출판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일부러 그림작가와 글작가를 따로 선발하였다. 각자 그림과 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로 글작가와 그림작가로만 팀을 꾸린다면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작가 개인의 개성에 따라 둘 사이의 경력에 따라 이야기 소재에 따라 반드시 추는 한쪽을 기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품 한 걸음 밖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을 추가하였다. 의사 결정의 추를 가운데로 잡아주면서 외부의 시선을 팀 안으로 당겨줄 사람, 그 사람이 기획자다. 글작가-그림작가-기획자의 단단한 삼각 체계는 결국 60일 동안 26페이지 세계를 만들어냈다. 한 명의 작가가 사라졌지만 6개의 삼각형에서 한 꼭짓점을 빌려와 그 자리를 메꾸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총괄기획자로서 나는 청춘을 주제로 6개의 소주제와 아이템을 기획하고 작업 과정을 계획하고 사람을 모아 매칭하고 팀을 구성했다. 각 팀의 기획자와 함께 컬러 그림책에 들어갈 작품, 흑백 그림책에 들어갈 작품을 나누고 어느 것에 <오월> , <얼굴>이라는 이름을 붙일지 결정했다.
총괄기획자는 구성원에 일관된 비전을 보여야 했다. 그 비전은 일종의 믿음이었다. 60일 만에 우리는 원고를 마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게 총괄기획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 두 번째 역할은 기획의도와 컨셉을 지켜내는 것이다. 작가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지지하고 지원하며 동시에 컨셉을 지켜내는 일을 맡았다. 청년의 주거를 이야기하는 작품은 반드시 지옥고-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를 시각화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택배상자를 의인화해 표현하는 컨셉에 대한 거부감을 설득하는 과정도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청춘을 주제로 6개의 소주제와 아이템을 결정하는 과정에 연애 아이템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연애를 일종의 관계로 파악해 인간관계로 개념을 확장시켜 컨셉을 유지하였다. 총괄기획자의 마지막 역할은 구성원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일하는 사이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무사히 관계를 종료시키는 것,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느끼지만 언제나 이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팀 기획자는 아이템의 선정 이유와 의도를 작가들에게 명확히 드러내 보이고 진행 스케줄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회의를 진행하고 그림작가와 글작가의 의견을 조율해 정리한다. 무엇보다 단계별 마감을 엄수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의 팀기획자로도 참여했는데, 덕분에 편집자의 눈을 가져볼 수 있었다. 내가 쓴 글을 퇴고할 때는 보이지 않는 것이 편집자의 시선에서는 보인다. 같은 팀 안에 있지만 작품을 밖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림책이 텍스트북과 얼마나 다른지, 글작가가 아닌 편집자를 경험하며 배울 수 있었다.
그림책은 덜어내는 작업이다.
독자가 상상하고 채워나갈 수 있도록 빈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 전사와 후사뿐 아니라 본문에 전개하는 스토리도 의도적으로 점프하며 넘어갔다. 작가로서 처음에는 이러한 의도적인 뛰어넘기가 익숙지 않아, 비워낸 그 공간들이 아쉬웠다. 작가의 눈에 비워낸 공간이 보인다면, 편집자의 눈에는 가득 찬 공간이 보인다. 글과 그림이 가득 차 있는 공간. 어느 장면에서는 글을 줄이고 어느 부분에서는 그림을 줄였다. 빽빽한 공간에 숨이 트일 수 있도록 외부의 시선이 공간을 만들어냈다. 독자가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질수록 재미있는 작품이 되고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다는 걸 편집자의 눈을 가지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기획자는 글작가가 펼친 세상을 좀 더 줄이고 그림작가가 그려놓은 세상을 잇는 작업을 한다. 6팀의 팀기획자마다 각기 다른 얼굴로 다른 방식으로 이 역할을 했지만 나는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를 작업하며 펼쳐진 세계를 덜어내는 일을 했다.
나는 총괄기획자이자,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의 팀기획자, <취존공주>의 글작가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나는 3가지 역할을 맡았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세 가지 역할을 다 경험하고 싶다는 욕망이 더 큰 이유였다. 황망하고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가슴 뛰는 시간을 보냈다.
팀기획자가 아니었다면 총괄기획자로서 팀기획자들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팀기획자의 고충과 애환은 아무리 거울유전자가 발달되었다고 한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총괄기획자이자 출판사 대표를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사결정 권한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팀기획자 역할을 할 때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다른 팀기획자보다 수월하게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무사히 원고 마감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팀기획자 덕분이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 일지는 온전히 각 팀기획자들에게 바친다. 일부 작가의 반대에도 기획자의 이름을 목차와 작품별 내지 제목에 올리고 홍보할 때마다 기획자의 이름을 꼭 명시한 것은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기 때문이었다.
2020.06.16 청년인문상상 공모전 지원
2020.08.01 포스터 파일 1차 시안
2020.08.02 포스터 제작 완료
2020.08.03 구청에 <오월의 얼굴> 출판사 신고 & 공모전 사이트에 모집 공고 게시
2020.08.14 그림책공작소 지원 마감
2020.08.17 최종선발 공지
2020.08.25 첫번째 총괄기획회의 (장소: 경의선 책거리 쇼룸)
2020.09.07 사랑&연애 아이템 글작가 이탈 & 새작가 찾기
2020.09.08 사랑&인간관계 아이템으로 소재 확장 및 시놉시스 회의 진행 - 담당작가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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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옴니버스 그림책 <오월吾月: 나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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