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게세에서 읽는 시 16
강윤미
책장에서 책을 꺼내다 먼지가 안개처럼 흩날리는 것을 보았다
안개 속으로 바람이 부는 것을 상상하다가 문장 하나를 만났다
문장에 밑줄을 그을까 말까, 나의 독서는 먼지에서 멈춘다
문장이 다치지 않도록 먼지는 포오옥 제법 깊숙이 그들을 안고 있었다
‘노인은 처음 만나는 다섯 살의 저녁을 안주 삼아 늙어 간다’
노인의 머릿속에서 태어났을 문장은 책 속으로 이사 갈 때까지 자음과 모음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으려 부둥켜안고 서로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죽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해버린 글자들이 놓아달라고 소리쳤지만 문장은 먼지를 핑계로 더 꽉 안았을 것이다
자신의 머리카락 위로 희뿌연 먼지 알갱이들이 내려앉기 시작했을 때, 노인은 새들이 공중의 먼지 속으로 날개를 퍼덕이며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사라지며 빛난다고 생각했다
평생 날아야만 하는 새들을 자유롭다 누가 말했을까, 책장 가장 높은 곳에 얌전히 날개를 접고 있던 책은 궁금했다
먼지가 오래되면 뭔지 모를 형체가 되어 가고, 손으로 툭 툭 먼지를 걷어낼 때 손가락은 어디로 갈지 몰라 떨렸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음악이 흐르고 냄새가 풍겨올 때 먼지는 감성이 풍부한 작가가 된 것처럼 서재를 사랑해 버리기로 했다
누구도 온 적 없는 방은 먼지가 떠넘긴 떨림을 기억하며 늙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