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로의 퇴행
꼭 약이 아니더라도 살은 쪄요. 정말 물만 먹어도, 숨만 쉬어도 쪄요. 젊었을 땐 그런 말 하는 사람들 보면 밤에 숨어서 몰래 뭘 먹고 시치미 뗀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내가 쉰이 되어 보니 평생 진리라고 생각했던 라부아지에의 ‘질량 보존의 법칙’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그런 현상이 진짜로 벌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오래 살다보니 별 일을 다본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오래 살수록 초과학적인 현상들을 많이 경험하게 되요. 물먹고 살찌는 것도 그런 거예요. 사실은 우리 몸의 대사량이 점차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에너지를 잘 못쓰니까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거예요. 젊었을 때는 숨만 쉬어도 덥다고 펄쩍펄쩍 뛰잖아요. 쉰이 넘어가면 한여름에도 내복을 입는 사람이 생겨나요. 기초 대사량이 떨어져서 몸에서 열을 못 만드니 36.5도씨의 있는 열이라도 지켜야 하는 거죠. 아니면 체온이 35도 이하로 내려가서 심장을 멈추게 만들 수 있어요. 이런 사람들은 열을 안 만드는 대신 피하 지방은 잘 만들어요. 자연의 섭리에 맞는 일이에요. 항상 내복을 챙겨 입지 못할 수도 있으니 피부 밑에 내복을 껴입는 거죠. 두툼한 지방 내복이요. 그런데 이 천연 내복이 조금 이상한 게, 필요없이 배 부위가 너무 두껍게 만들어져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체형도 변해가죠. 사람이라는 게 늙으면 다시 어린애가 된다고 하잖아요. 쉰은 다시 아기로 돌아가는 시작점이죠. 우선 체형이 아기처럼 변해가요. 배는 나오고 팔다리는 가늘어지죠. 키가 줄어들고, 얼굴에 살이 찌니까 머리는 점점 커지구요. 3살 이후로는 소변을 잘 가렸는데 가끔 지리기도 해요. 얼굴은 노안이 되어가는데 몸은 자꾸 아이가 되어가요. 거꾸로 되면 좋을텐데. 창피한 일이죠. 생각하는 것도 유치해지죠. 이성 관계보다는 조금 더 원초적인 것에 집착하게 되요. 가령, 먹을 것, 놀 것 등에 말이죠. 맛있는 식당만 찾아 다니고, 반찬 투정도 심해지고, 일은 하기 싫고, 놀러만 다니고 싶고, 잠자는 건 엄청 민감하구요. 하긴 이해는 가요. 지금까지 먹어봤던 맛있는 음식들이 있으니 얼마나 역치가 높아져 있겠어요. 거기에 너무 미치지 못하는 음식을 먹으면 짜증도 나겠죠. 또, 그동안 공부하고 일했으니 이제 놀고 싶기도 할 거구요. 걱정없이 놀아봤던 게 어언 40년 전이니까요. 잠이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힘들어 하죠. 아기가 되어가니까. 그래서 잠에 집착하는 거예요.
그렇게 마흔에서 쉰으로 접어들면 변하는 것들이 많아요. 자신도 변하지만 주변도 변하기를 바래요. 좀 더 자기 비위에 잘 맞춰 주길 바라는 거죠. 그러니까 '나 때는 말이야..."란 접속사를 입에 달고 사는 거구요. 난 얼마전 길을 걷다가 큰 것을 깨달았어요. 세상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바꾸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아실 거예요. 그런데 세상이 통째로 내 기준에 맞춰주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러니까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더라구요. 내가 세상에 맞춰 변하는 수 밖에. 그래서 내가 너그러워지기로 했어요. 남의 잘못은 너그러이 봐주고, 내 잘못도 용서해 줬어요. 많이 관대해진 거죠. 그러지 않고 화내 봤자 이제 별로 바뀔 것도 없어요. 아무도 내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아요. 세상은 오십대를 슬슬 따돌리면서 그들의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아요. '꼰대'라고 부르면서 말이지요.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들이 얼마 안 있으면 무대에서 퇴장해야 할 퇴물들로 보인단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