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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Jan 01. 2022

한겨울에도 산책을 포기할 순 없어

오늘은 낮 기온이 영하 1도 정도다.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다. 
 

‘오히려 겨울 날씨인데 이만하면 산책하기 적당한 날이지.’ 가벼운 옷을 여러 겹 겹쳐 입고 장갑을 끼면 산책하기 딱 좋을 날씨다. 진짜다. 


“산책 가자.” 이 말에 옆에 있던 사람이 흠칫 놀란다. 내 옆에 오래 있던 이 사람은 내가 하자고 할 때만 산책을 한다. 특히 겨울날에는 산책은 안 하는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대체로 거절하지는 않는다. 올 것이 왔다는 건가?


동네에서 15분 정도만 걸어가면 산책할 수 있는 공원에 있다는 건 참 훌륭한 일이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가장 좋은 게 그거 였다. 내가 사는 지역이 특히 더 그랬던 거지만, 작은 대학 도시에 걷거나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거리의 공원이 몇 개나 있는지 셀 수도 없었다.


지금 계절에는 나무에 아련한 가지들만 남았지만, 코끝 찡하게 만드는 추위의 청량함은 겨울 산책의 특별한 맛이다. 다른 계절에는 이 청량감은 절대로 느낄 수가 없다.


그리고 무성하고 푸르른 자연은 아니라도 차가운 회색빛 풍경도 멋지다. 제멋대로 뻗고 구부러진 나뭇가지의 뼈대를 바라보는 것도 색다르다. 나무들이 키가 크다. 가지만 앙상해서 더 키가 크게 느껴진다. 고개 한껏 치켜들고 나무와 나무가 얼기설기 얼겨있는 나뭇가지들을 바라본다. 눈으로 가지들의 끄트머리를 곡선으로 연결해본다.


끌려 나온 사람처럼 나보다 두세 발자국 뒤에 걷던 그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자연이나 목가적인 풍경 속에 있을 때 너는 참, 편안해 보여.” 


‘나를 너무 잘 아는데!’라고 속으로 흠칫 놀라면서 안 놀란 척 내가 물었다.

“자연 속에 있을 때 내가 어떤데?”


평소의 나는 그럴 일도 아닌데 매사 약간씩 조급하고, 지나가는 사소한 말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반응할 때가 많은데, 이상하게 자연 한가운데나 목가적인 시골 풍경 속에 갖다 놓으면 그런 반응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감각이 예민하고 그래서 항상 주변을 경계한다. 타인에게 보이는 나를 내려놓지 못한다. 그리고 뭔가에 종속된 것처럼 목적지향적인 사람이다. 작은 것이라도 목표로 잡고, 달성하려고 하고, 그걸 달성하기 전에는 조급해진다. 심리학적으로는 강박증이라고 진단해도 할 말이 없다. 뭔가 이루는 데는 적합한 성격이겠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참 피곤한 성격인 거다.


하지만 자연이나 식물이 많은 시골 동네를 가면
내 모든 경계심이 허물어진다. 

자연 속을 걷다 보면 달성할 목표가 사라지고 식물이 있는 모습 그대로에 집중하게 된다. 특히 관찰하기 좋아하는 나에게 자연의 다양한 모습은 욕구를 강렬하게 채워준다. 식물의 피어 있고 지어 있는 모습에만 집중하다보면,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식물들을 보다 보면, 희한하게 내 모습을 잠시 잊게 된다.


집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도 같은 원리인 것 같다. 집에 퇴근하고 돌아와 베란다 텃밭을 들어다 보고 있으면 하루의 맺힌 독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진 잎을 떼어내고 돋아나는 싹을 어루만지다 보면, 나를 툭 내려놓게 된다.


갑자기 옆에 있는 사람에게 조금 부끄러운 마음에 든다. 아마 이 사람도 그런 나 때문에 피곤한 적 있었겠지. 그래서 정확히 진단한 거지.


하지만 뭐, ‘나도 너 참아준 적 많아.’ 속으로만 생각한다. 말로 했어도 “알지. 고맙게 생각하지.”라고 말했을 사람임을 알지만, 내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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