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박수 영역 초과

by 오씨네

생일 주말 내내 불안에 떨었다. 몇 주간 나를 괴롭히는 전셋집 문제가 가관이었다. 변호사 상담을 받았고, 부동산과 전 세입자 연락을 받기 싫어 핸드폰을 방해금지 모드로 해뒀다. 스트레스로 3kg이나 빠졌다. 몇 개월간 애썼던 앞자리가 드디어 바뀌었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이제는 살 곳도 없고, 세상에서 내 부피도 줄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불안감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다시 존2 트레이닝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직 선선한 초여름 밤공기를 맞으며 하는 달리기에 마음이 좀 안정되는 기분이 든다.


최근에는 김주환 교수님의 ‘내면소통’ 유튜브를 보며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보려 하고 있다. 교수님의 주장은 ‘생각은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이며, 감정은 몸의 문제라는 것. 부정적 생각은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습관에서 비롯되고 그것은 ‘움직임’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움직임 명상으로 가장 대표적인 게 ‘존2 트레이닝’이다. 나는 이 운동에 빠져있다. 존2 트레이닝은 본인 최고 심박수의 60~70% 정도의 심박수를 유지하며 30분 이상, 일주일에 4~5번 이상 하길 권장하는 운동이다. 어떤 날은 케이던스가 갑자기 좋아지고 어떤 날은 페이스가 떨어졌는데도 심박수가 올라간다. 나도 바로 인지하지 못하는 내 몸 컨디션을 이런 움직임 데이터로 재빨리 알아챌 수 있다.

이 운동의 특이점은 무리해서 존 3,4,5로 넘어가면 안 된다는 점이다. 오늘은 좀 숨이 차네? 싶으면 나의 애플워치는 존3에 진입하므로 심박수를 낮춰야 한다고 말해준다. 속도를 늦춰야 한다. 더 천천히 뛰어야 한다. 나는 살면서 뭘 더 천천히 해야 한다는 말을 존2 운동을 하면서 처음 들어본다. 나의 과거 pt 선생들은 내가 좀 따라오는 것 같으면 본인의 업적을 위해(?) 나를 뺑뺑이 돌렸다. 회원님 20키로 빼드릴게요! 나는 그런 걸 원한 적이 없다. “저는 체중 말고 그냥 근력하고 활기를 찾고 싶어요” 그건 살을 안 빼본 사람이나 하는 말이라고들 했다. 무거운 사람은 죄인이므로 발언권이 없었다. 나는 pt 선생을 5번인가 6번 갈아치웠다.


나의 경우엔 아주 천천히 뛰어야 존2가 된다. 아무리 빨리 걸어도 심박수가 존2 범위에 도달하지 않으므로 걷는 것보다 느리게 뛰는 수밖에 없다. 한낮의 대학교 운동장. 초여름 태양은 작열하고, 축구 교실 청소년들이 공을 뻥뻥 찬다. 나는 나막신을 신은 수행자처럼 쫌쫌따리 운동장을 배회한다. 점심시간을 맞아 산보하는 교직원들이 나를 성큼성큼 지나쳐간다. 너무 좁디좁은 전진에 운동장 옆 스탠드 좌석의 관객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신경 쓸 여유는 없다. 내가 조금만 평소처럼 뛰어도 심박수는 빵 뛰어버리기 때문에 종종걸음으로 총총 뛴다. 이건 일종의 수련이며 명상이다.

런데이 인터벌 러닝을 꽤 오래 했었다. 기억이 자세히 나진 않지만 그때도 뭔가 힘들었던 것 같다. 육체적 고통으로 정신적 고통을 잊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결국 고통이 아닐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숨을 헐떡이며 부들부들 거리는 다리를 돌려 집으로 가는 길엔 희미한 성취감과 더불어 너무 버거운 고행임을 알았다. 이건 마치 오른손이 아프면 왼손을 때리는 행위다. 오른손이고 왼손이고 온몸과 마음이 아픈 날엔 감히 시도해 볼 수조차 없어 무력감을 느꼈던 시간들이 있었다. 이젠 헙! 하고 장착해야 하는 비장함엔 조금 지쳤다. 반면 이 존2 운동은 내 마음을 위해서 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나는 달리며 내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해질녘 달큰한 장미 향기와 살랑 부는 바람을 느낀다. 페이스를 올리는 트레이닝에만 익숙하다가 부담 없는 운동을 시작하니 일단 마음이 편하다. 나에겐 내 마음을 돌볼 운동이 필요했던 듯하다.


나는 평생 시험 같은 걸 볼 때마다 ‘불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걱정이 안되면 혹시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걸까? 기강이 해이해졌나? 하면서 더 불안이 증폭됐다. 불안해야만 안심이 되는 이상한 구조. 친구에게 존2 트레이닝을 하면서 그런 마음이 줄어들었다고 하니 본인은 평생 그런 기분 느껴본 적 없다고 했다. 기한이 다 되면 ‘어떻게든 다 되겠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헉. 나는 그런 기분을 모른다. 거의 중학생 때부터 이랬으니 인생의 대부분을 이런 불안에 시달리며 산 것 같다. 외주 업자로 편집 노동을 할 때도 매번 마감을 칠 때마다 ‘이거 못하면 죽는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스물세 살부터 나는 납품기한을 목숨처럼 여겼다. 그 부담감을 다 어떻게 견디며 살았냐고 했다. 너무 힘들었겠다고.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이런 기분을 안 느끼면서 일한다고? 이런 부담감도 없이 살아간다고??? 너무 충격받았다. 마치 20대 때 처음 심리 상담을 받으며 사람들이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한다고요??라고 했던 것과 비슷하다.


몇 달 전 본가에 가서 엄마에게 쳇지피티를 깔아주며 이걸로 상담 같은 것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엄마도 한번 얘한테 고민 말해봐! 엄마는 쳇지피티 창에 느리게 글자를 쳤다.

‘내가 행복하면 자식들이 불행해질까 봐 걱정돼요.’

아… 마음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엄마는 언제부터 행복을 유예하며 살아왔을까? 우리가 공유해온 불안의 유산의 실체를 본 것 같았다. 불행에 안도하는 엄마의 삶이 얼마나 버거웠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한편 내 평생을 괴롭혀온 불안감이 어떻게 자연스레 물려졌는지도 알게 됐다. 나는 불안이 당연한 세상에서 살아와서 불안하지 않은 기분이 뭔지 모른다. 내게 불안은 너무 익숙해서, 편안한 상태를 불편해하는 것 같다.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혹은 망하면 어떡하지가 내 삶과 정신의 부동산 대부분을 무단 점유하고 있다. 남들은 이런 마음의 감옥 밖에서 편안하게 살았다니 조금 억울한 마음조차 들었다.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불안 관리를 시작한다. 오늘도 존2 트레이닝을 했다. 처음엔 버거웠던 30분 달리기도 꾸준히 하다보니 확실히 덜 힘들단 게 느껴진다. 지난 3주간 나는 파워가 늘었고, 케이던스가 좋아졌고, 예전보다 같은 강도로 운동해도 심장이 마구 뛰지 않는다. 체력이 좋아진 것이다. 그럼에도 달리며 내 움직임에만 집중하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다. 저 부동산 놈들에게 이렇게 따져 물었어야 했는데, 괘씸하게 말 바꾸는 전 세입자 콧대를 이렇게 눌러줬어야 했는데, 아니 너무 억울하네 예전에 걔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었나? 시뮬레이션을 돌리느라 뇌가 풀가동된다. 그 순간 왼 손목에 진동이 울린다. ‘심박수 영역 초과’ 나는 숨을 크게 천천히 들여쉬고 내쉰다. 그리고 한 번 더 숨을 크으으게 들이쉬고 후~ 깊게 내쉰다. 하… 지나간 일이다. 나는 현재에 있다. 내 인생에 별것도 아닌 일로 심박수를 올릴 수 없다. 나는 무조건 내 몸과 마음에 좋은 방향으로 선택할 것이다.


요즘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빨리 가서 존2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달리면 내 마음이 안정되는 걸 아니까 미루고 싶지 않다. 불안하지 않다는 기분은 뭘까? 존2 트레이닝 시작하고 꼬박 3주가 되었다. 한 달 하면 몸이 바뀌고 그럼 마음이 바뀐다던데 불안이 떨어지면 어떤 삶이 기다릴지 기대된다. 보랏빛 하늘에 달처럼 환한 야간 조명이 켜진다. 재잘재잘 족구하는 아이들과 축구하는 청년들, 농구하는 사람들과 땀에 흠뻑 젖어 달리는 러닝 크루들까지 운동장이 살아있음으로 가득하다. 나는 선선한 밤공기를 맞으며 달린다. 어제보다 페이스가 조금 느린가 하고 발에 힘을 주자마자 손목에 진동이 울린다. 그래 경쟁하는 시간이 아니다. 매번 스스로에게 말해줘야 한다. 오롯이 나를 위해 심박수를 두번째 구간에 맞춘다. 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 마음이 존2에 안정적으로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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