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서 숨 쉬는

by 오씨네

얼마 전부터 일할 때나 운전할 때 내가 숨을 잘 쉬지 않는 걸 발견했다. 문득 ‘어? 왜 숨을 안 쉬고 있지?’ 화들짝 놀라 뒤늦게 급히 후하후하 쉰다. 딱히 이유는 없는데 종종 무심결에 숨을 참고 있는 것 같다.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뭔가를 ‘해야 한다’라는 생각 때문에 몸이 굳는 경험을 몇 년째 하고 있다. 영상 외주를 그만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이기도 했다. 지난번 디자인 외주를 할 때는 책상에 앉기까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서 비효율적이어도 외주처 사무실 손님 테이블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던 적이 있다. 내가 왜 이럴까. 정말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예를 들면, 인스타그램에 2024년 작업 관련 피드를 올려야지—반년째 생각만 하고 있다. 작업한 뮤직비디오 메이킹도 9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올렸다. 작년에 진행했던 이도주공 프로젝트 인터뷰도 올리지 못했고 연희동을 떠나는 소감도 미뤘다.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이런 작은 일들이 밀리다 보면 ‘내가 이제는 예전만큼은 할 수 없는 건가?’싶은 좌절감이 자주 든다. 이제는 인생에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든 것이라고 인정해야 하나.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왓추(watsu) 수련에 다녀왔다. 왓추는 따뜻한 물속에서 움직임과 지압으로 이완을 유도하는 치유 요법이다.


나는 5년 전 제주에서 스노클링 하다가 물에 빠질 뻔한 경험이 있다. 돌아보면 살면서 그런 순간이 여러 번 있었겠지만 그날의 경험은 너무 큰 충격으로 남았다. 지난 몇 년간, 그날, 태풍이 오기 전날, 자주 가던 포구 어귀에서의 순간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되짚어봤다. 나는 여느 때처럼 헤엄치며 육지에선 못 느끼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새파란 바닷물과 쨍하게 뜬 태양, 은색으로 반짝이는 자리 떼까지 너무도 평화로웠다. 그때 별안간 스노클링 마스크에 바닷물이 차기 시작했다. 고장 났나 싶어 얼굴에 다시 맞추고 밴드를 조여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손 짚을 수 있는 바위는 아무리 헤엄쳐도 나타나지 않았다. ‘정신만 차리면 나갈 수 있어’ 수없이 되뇌었다. 하지만 헐떡이는 호흡은 돌아오지 않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아, 이게 ‘죽을 것 같다’는 거구나. 허우적댈수록 몸은 더 가라앉았고 순간 판단력을 잃고 스노클링 마스크를 벗었다. 바닷물이 눈과 코와 입에 가득 차고… 나의 일부는 그날 침몰했다. 이후에 나는 불안한 상황이 닥칠 때마다 물에 잠기는 것처럼 느낀다. 마감이 밀리거나 뜻밖의 문제가 생기면 금세 숨이 멎은 채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컵 안에 코가 갇히는 걸 견디지 못해 빨대로 물을 마셨고, 세탁기에 물이 차오르는 모습조차 무서워서 빨래를 미뤘다. 그날의 사고는 나를 계속 물속으로 끌어내렸다.


지난 몇 년간 갖은 상담과 치료를 거치며, 머리로는 현재 내 불안한 상황과 과거 물에 빠질 뻔한 경험을 분리시킬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코너로 몰릴 때 나는…



인도에서 오셨다는 왓추 레슨 선생님께 내 트라우마를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천천히 물을 느끼면서 수업하자고 했다. 평소에 몸에 긴장이 많다고는 생각했지만 최근 존2 운동도 하고 즉흥춤 수업도 받으며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기 때문에 좀 나아졌을 줄 알았다. 수업 전 코를 막고 잠수하며 호흡하는 걸 연습했지만 급히 호흡이 거칠어져 허겁지겁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나는 통제당하는 걸 싫어하지만 정작 내가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선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눈을 감은 채 물에 몸을 맡기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선생님은 물의 표면에 떠서 예측 불가능한 파동과 움직임을 느끼면 된다고 했다. ‘해야 하는 것’ 없이 눈을 감고 안내에 따라 긴장을 풀고 그저 이리저리 떠다니면 된단다. 깊게 마시고 길게 뱉었다. 하늘이 뚫린 작은 수영장에서 눈을 감으니 하늘빛이 눈꺼풀에 비쳤다. 나는 그저 숨 쉬며 둥둥 표류했다. 후~ 처음에는 좀 낯설었는데 점점 편안해졌다. 감은 눈에 노란빛이 점점 스며들었다. 오 이건 뭐지? 따뜻한 느낌이네. 선생님은 내 어깨와 다리, 손을 마사지해 주셨다. 나른했다. 물의 찰랑임이 몸에 닿았다. 이윽고 눈 안이 마젠타 색으로 가득했다. 진홍색 환한 빛의 신비로운 곳으로 다가가는 기분이었다.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 같고… 그리고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났다. 평소에도 ‘불편하다’라고 느낀 적은 없는데 이게 편안한 거구나. 이게, 숨 쉬는 기분이구나. 손끝과 발끝이 저리는 것처럼 찌릿찌릿했다. 삶이 나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단시간에 집중해서 뭔가를 마구 생산했던 것도 나고, 요즘처럼 사소한 것에 발 걸려 넘어지는 것도 나다. 그런데 나는 후자의 나를 쳐주지 않는다. 그저 예전만 그리워하면서 산다. 지난주에 만난 나의 (구)사주 선생님은 불안할 때 1. 빨리 일을 집중해서 해치워야 불안이 사라지는 사람이 있고 2. 자신을 안정시켜야 불안이 해소되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본인은 어떤 사람 같아요?”

“저요? 저는 몰아서 일을 하니까 1번 아닐까요?”

“근데 제가 보기엔 몸이 굳고 그런 걸 보니까 2번 같은데, 1번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계신 것 같아요.”


흠… 오… 그런 것 같네… 내 지난 삶을 돌아보면, 불안해서 몸이 경직되고 그게 낮은 수행으로 나타나고 그럼 또다시 불안이 불어났었다. 이 끈적한 구조에서 떨고 있는 자신을 구출하고 싶은데 아직 방법을 잘 모르겠다. 일단 숨부터 잘 쉬고 싶은데 방금도 이 문장을 쓰면서 또 잠깐 호흡하는 걸 깜박했다. 의식적으로 숨을 쉬어보려니 이 ‘숨 쉰다’는 것은 참 기이한 감각이다. 들숨에 산소가 들어와서 내 몸 곳곳에 퍼지고, 묵고 더워진 다 쓴 숨을 뱉어낸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나라는 생명은 무의식 깊은 곳에서 쉼 없이 스스로를 살리고 있다. 새삼스럽다. 너 나를 계속 구하고 있었구나. 그간 스스로 가혹하게 굴었던 내게 좀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이 있을 땐 잠을 잘 자지 못한다. 간밤에도 티셔츠가 흠뻑 젖은 채 깼다. 꿈속에서 위기에 놓인 나는 왓추 수련 때처럼 스읍- 하아- 하고 숨을 쉬었다. 그러다 설핏 잠이 깼는데, 내가 진짜로 그렇게 소리 내며 숨을 쉬고 있었다. 스읍— 하아— 잠결에 몸이 기억 속 편안함을 더듬어 찾는 모습에 약간 짠하기도 하다. 되짚어 보니 숨 쉬는 법을 배운 적이 있던가 싶다. 살면서 중요한 것일수록, 배운 적 없는데도 안다고 착각하며 지나쳤다. 숨, 쉬기. 그 단순한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이제야 다시 배우기 시작한다. 아, 배울 것이 너무 많다. 이 평생 교육이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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