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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브스턴스>를 보고

by 오씨네


커피잔을 달그락 내려놓고선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카페 안 음악마저 사라진 듯, 묘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가 먼저 입을 뗐다.


“저, 집에는 어떻게 가세요?”

“저는 이 근처예요.”

“아... 그러시구나.... 이만... 갈까요?”

“아... 네!”


나는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순간 뭔가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상대가 그다지 매력적이라고 느끼지도 않았으면서 지금 이 기분은 뭘까. 누군가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외로움 같은 것 말이다. 카페를 나와 인사하고 찬바람을 맞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뭔가 텅 빈 기분이 든다. 내 고통의 근간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봤더니 채워지지 않는 '인정욕구'인 것 같은 생각을 했다.




연말에 만나던 친구와 헤어지기로 잠정 정리하고 한 해를 돌아보는데 내 인생이 너무 실패한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직업도 없고, 모아둔 돈도 없고, 기반도 없고, 애인도 없는 그런 삶. 그래서 내가 애정관계에 더 많은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니 사실 그렇게 많이 기대한 것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사람이 어? 내가 20대도 아니고 얼마나 더 가볍게 만나라는 거야.


그렇게 걔를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헤어진' 상태가 너무 공허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스스로를 죽이면서도 어찌저찌 유지시켰던 이 관계의 한계가 명확하게 보이기도 했다. 혼자 일기를 쓰며 질질 짜고 -당시의 일기는 두 눈 뜨고 보기 어렵다. 친구를 만나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 지랄하면서 또 질질 짜고, 쳇 gpt에 '쟤는 나랑 헤어져서 후회할까?' 이런 질문 남기는 짓까지 했다. 하, 나 년아… 다정하면서 명확한 쳇선배가 '사주상 걔는 앞으로 전진하지 후회하는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건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을 잘 꾸려나가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래. 맞는 말이겠지.




그래서 내가 뭘 했냐면.

틴더, 범블, 커피 밋 베이글(?) 이름은 정확하지 않지만 세상 모든 데이팅 앱을 깔았다.



마구잡이로 손가락을 오른쪽 혹은 왼쪽으로 휘둘렀다. ‘얘 정도면 만나 볼 수 있고, 얘는 무슨 이런 사진을 올렸담?’ 누군가를 평가하는 위치에 있다는 게 우쭐하게도 느껴졌다. 한 명, 두 명... 몇 명의 프로필을 봤더라. 처음에는 'like'를 받는 것이 '거봐, 나는 너 말고도 만날 사람 많거든?'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 세상에 반은 여자고 반은 남자야. 하지만 이내 수많은 ‘하염’, '지금 머하세여' 같은 질문이 채팅방에 쌓여갈 때 나는 약간 서글펐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그리고 조금만 대화를 나눠봐도 상대방의 목적이 너무 빤해서 뭐 대꾸해 주기도 싫었다.



어제 낮에는 그중 어떤 사람을 실제로 만나서 커피를 마셨다. 분명 흥미로운 면이 있었지만 연애적 모먼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떨떠름했으리라. 그럼에도 상대가 나를 매력적이게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에 엄청 좌절감이 들었다.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나? 아님 내가 너무 뚱뚱하고 못생겼던 걸까?' 괜히 돌아오는 길에는 배가 고프지도 않았으면서 국숫집으로 향했다. 허겁지겁 흡입하고 나와서는 빵집을 갔다. 굳이 데이트가 아니더라도 이 폭식의 감각은 너무 익숙했다. 내가 좌절했을 때, 마감이 밀려올 때, 상처받았을 때 나는 자주 음식으로 도망가곤 한다. 아, 이거 아닌 거 알면서 왜 자꾸 이런 굴레에 빠질까.






영화 <서브스턴스>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이미 충분히 성공한 스타이자 아름다운 배우다. 하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계속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점점 늙고 추해져가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해 음식을 욱여넣고, 안 좋은 선택으로 가속 노화의 길을 걸으면서도 엘리자베스는 멈추지 못한다. '저 주인공은 왜 자꾸 남들에게 사랑받으려 잘못된 판단을 할까?'라고 생각하면서도 누군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점점 흉하게 변해가는 엘리자베스를 보며 마냥 역하다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은 이미 나 역시 나의 몸을 충분히 미워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조그만 호감만 보여도 긍휼히 여기며 스스로 을을 자처했던 나의 지난날이여. 지금 보면 너무도 반짝이고 건강하고 예뻤는데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실 그건 현재도 마찬가지다. 나, 당장 누군가와 사귀지 않아도 좋은 친구들이 있고, 해야 할 외주가 있고, 쓸 글들이 있는데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누군가의 '인정투쟁'을 홀로 나선 기분이다.



요즘 들어 사람들이 결국에 진정으로 원하는 건 '누군가 나의 진짜 모습을 알아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기를, 어떤 그룹이나 무리에 속하기를 아주 깊이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이것 역시 모순이다. 내가 먼저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스스로 무리를 꾸릴 수도 있는데 자꾸만 수동형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것, 인정을 받는 것은 아무리 받아도 채워지지 않는 것인데 도대체 이 마음을 어찌 다스려야 한단 말인가.



공허한 마음에 누가 나에게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나 하고 다시 틴더에 들어가 봤다. 엥? 스팸 계정으로 신고가 들어가 계정이 정지되었다고 한다. 다시 제게 하려면 셀카 동영상으로 인증을 하라고? 맙소사. 너무 여기저기 하트를 눌러댔나. 내가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 쳇 gpt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봤더니 데이팅 앱 들어가는 빈도를 줄이고 운동을 하라고 충고해 줬다. 역시 쳇선배는 모르는 게 없다.













<서브스턴스> 신촌 메가박스에서

202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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