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마음이 주저된다. 일기를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지금 내 일상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세금계산서 발행해달라고 연락해야 하는데? 주말이네?', '피피티 먼저 만들까?' 결국 나는 릴스를 보는 것으로 결론을 낸다.
요즘에는 요리에 빠져있다. 그래서 요리 릴스를 막 3시간씩 본다. 평생을 요리 혐오론자로 살았는데 올해는 어차피 하고 싶은 일도 못할 바에야 싫어하는 일을 하나씩 해보자 하는 마음을 먹었다. 그중 하나가 요리다.
내가 왜 요리를 싫어했냐면 먹는 시간 대비 준비하는 시간과 치우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고, 내 작은 원룸에서 요리를 하면 온 커튼이며 옷이며 음식 냄새가 배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고, 요리는 너무 '엄마'의 일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가 요리하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평생 비만으로 살아왔는데 엄마는 그게 내가 5살까지 본인이 직장에 다니며 잘 보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갖고 있다. 그 죄책감은 그녀 내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자주 표현되었다. 세상이 얼마나 살찐 사람들에게 서럽고 엄혹한지 에대해 엄마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나에게 말을 한다. 직장에서 승진도 못하고, 사람들의 너의 성과를 낮춰보고, 가장 중요한 '남자들이 싫어한다'는 것. ((아니 남자들은 내가 먼저 그냥 더 싫어한다고!!!))라고 대답해 봤자 신 포도가 될 뿐이다.
그래서 계속 내가 먹을 라면을 끓일 때 몰래 스프를 덜고 양파를 한 움큼 넣은 뒤에 '건강에 좋으라고' 하고 멋쩍게 웃는 모습이 싫었고 70대가 된 늙은 몸을 구부려가며 고기의 비계를 일일이 손질해 떼어내는 뒷모습도 싫었다. 도대체 왜. 먹는 거에 이렇게 시간을 쓰는 거야!! 몇 번이고 말해봤지만 듣는 둥 마는 둥. 엄마가 본인의 삶을 사는데 시간을 쓰지 않고 아직도 누군가를 돌보는데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끔은 화가 나고 가끔은 서글퍼진다. 엄마는 내가 만든 요리는 어쨌든 몸에 안 좋을 거라 생각한다. 내 몸이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꽤 잘 해먹는다고요!! 지난번에 집에 갔을 때도 요리하는데 너무 시간 쓰지 말고 엄마 인생 좀 살라고 했더니 '정성' 이 들어가야 맛있다나... 엄마, 엄마가 자꾸 이러니까 내가 제주도 가는 게 싫어...
그래서 '맛'이란 내 인생에 하등 쓸모없는 감각이었다. '정성' 이야말로 내가 되갚아줄 수 없는 부담스러운 감각이었고 엄마의 기억으로 말미암아 누가 요리를 대접해 준다고 하면 너무 황송한 동시에 어떻게 보답해야 하나 막막하기도 했다. 그래서 돈으로 타인의 노동력을 사는 외식이 좋았다. 깔끔하니까. 어떤 마음도 교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요리를 '베푸는' 것은 무조건 타인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무리 스스로를 대접한다고 해도 혼자 먹는다면 이런 수고까지 할 수는 없다. 오늘도 새로운 친구가 집에 놀러 온다. 가을을 맞아 단호박, 구운 버섯과 고구마를 넣은 리조또를 만들었고 무화과 루꼴라 샐러드와 감자 애호박 새우전 그리고 가지 튀김을 만들었다. 마음이 시끄러울 땐 감자를 썰고 양파와 양배추를 볶고 가지를 절인다. 손을 움직이다 보면 머리가 비워지고 감각이 살아난다. 몸을 써야 비로소 머리가 쉬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너무 미워지던 밤이면 일어나서 아스파라거스 리조또를, 토마토 야채스프를, 여름 카레를 만들었다. 나를 먹이고 내 집에 찾아온 친구들을 먹이면서 나는 고통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도 음식을 나누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서러웠던 일, 기뻤던 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던 일까지도. 음식을 얕잡아봤던 지난날과 다르게 점점 더, 이 모든 과정이 즐겁다. 아, 설거지는 아직도 쫌... 하이튼. 너무 돌봄 노동을 자처하는 것 같아 오랫동안 꺼리던 요리도 막상 해보니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내가 살면서 아직 안 해보고 근데 싫어했던 많은 것들 중에 얼마나 많은 좋은 것들이 숨어 있을까? 그런 것들을 발견할 나날들을 생각하니 벌써 조금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