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로소 숨 쉴 수 있었던 그의 품

나를 나 되게 하는 곳

by 강나루

나는 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신론 자였다기 보단 그 자신, 스스로를 더 믿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교회에 발을 디디게 된 건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정말 나도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다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을까? 신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게 될까?

그런 순전한 호기심.


바로 그것 때문이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저 그 이유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남편 바람 피웠을 때에 차마 이혼할 수 없고 어느 누군가에게 단 한마디도 털어놓지 못한 채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병이 생기고 말았다.심장에 부정맥이 발병게 된 것이. 심지어 부정맥의 원인이 된 갑상선 기능 항진증까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마음속엔 깊은 우울까지 자리를 잡게 되었다.


남편게 용서하겠다 하고 살아왔지만 실상은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하지 못했었다.

미움과 원망을 거둘 수가 없었다.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회피하며 상황만 모면하려 했던 남편의 태도에 망하고 상처를 입어 시간이 갈수록 내 마음의 문은 닫혀 버렸고 쇼윈도 부부로 20년이 넘는 세월을 흘려보내게 됐다.

하지만 남들에겐 티끌만큼의 내색조차 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심지어 가족들이나 가까운 친구들, 어느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단 한마디도 내가 힘든 이유를 말하지 못한 채 속으로만 곪아가고 있었다.

그런 모든 것 들을 참고 안으로만 감추며 세월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지나가 아픔이 잊히길 바랐고 힘든 시간을 지나 빨리 죽음을 맞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가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할 용기가 없었다. 리고 나를 사랑하는 주변의 사람들 어느 누구도 상처받길 원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마음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어둡고 슬픈 마음을 감당할 길이 없어 하나밖에 없는 어린 딸을 두고도 몇 번이나 베란다 난간에 올라섰었는지 모른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가슴을 두드리다 못해 주먹으로 마구 내리쳐 가슴 위쪽에 검게 피멍이 맺히는 날이 태반이었다.

그나마도 아이가 몰랐으면 하는 바람으로 새벽녘이 되도록 잠 못 드는 날이 셀 수도 없었고 가까이 사는 가족들이 혹여 눈치라도 챌까 싶어 낮에는 웃는 얼굴을 하며 죽지 못해 살던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때에 그가 내게 손을 내미셨다.

이민을 가는 친구가 고국을 떠나가기 전 차 안에서의 마지막 통화를 통해서.

내 갑상선병과 자궁에 생긴 12cm의 물혹을 발견해 주신 주치의 선생님을 통해서.

이웃 동생을 안심 등교시켜 준 딸의 봉사를 통해 만난 동네 엄마를 통해서.


교회에선 아무리 울어도 누구든 울고 있는 이유를 묻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울지 말라고 먼저 나서서 말하는 사람도 없다.

모르는 누군가 눈물만 흘리던, 아는 사람이 흐느껴 울던, 오열을 하던, 통곡을 하던 그저 조용히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어 무심한 듯 툭툭 두드려 주도 하고 그냥 잠시 옆에 머물 손이나 머리, 어깨 등에 살며시 손을 대고선 함께 기도해 주고 자리를 떠난다. 그저 슬픔에 공감해 주며 위로해 주고 그것을 떨치고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이 되길 바라며 기도해 주는 것이다.

또 도움을 구하는 사람에겐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도움을 주시려 노력하고 기도하는 목회자 분들의 노력이 함께하는 공간이다.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휴지를 가져다주거나 손수건을 내어주는 분들도 계셨지만 어느 누구도 내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우느냐라고 먼저 묻지 않았다.


새벽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졌던 나는 그저 그 시간엔 온전히 나와 하나님만이 함께 있을 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깊숙한 곳, 내밀한 나의 모든 비밀까지 다 얘기할 수 있었고 마음껏 소리 내 울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도 나를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았고 훈계하지 않았다.


위로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완전한 내 편이 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을 있었다.

격식을 갖추어 기도 할 줄 몰랐지만 난 끊임없이 그게 얘기하고 매달리고 울면서 천천히,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비록 병을 완벽히 떨칠 수는 없었지만 아픈 사람처럼 보이던 얼굴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어졌다.

병이 있다고 먼저 얘기하기 전에는 얘기하는 상대가 더 이상 환자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달라지고 있었다. 얼굴에 금가루를 뿌린 듯 빛이 나고 생기 있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푹 빠져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수많았던 기회가 나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놓았다.

낯가림이 심한 나에게, 그리고 나 자신만을 믿었던 나에게 교회를 다녀봐야겠다고 말할 명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명분은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 세 식구가 교회를 나가기 시작한 첫 해에 크리스마스를 맞게 되었을 때였다.

성탄절 예배 중에 너무나 크게 마음의 울림을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됐고 난생처음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교회에선 매년 성탄절과 부활절에 2부 예배의 성가대와 3부 본 예배의 성가대가 함께 *칸타타를 드리는 순서가 있었다.

교회를 처음 다니게 된 그해의 첫 성탄절에 들었던 교회 연합 찬양단의 '칸타타'가 내 인생을 바꾸는 첫 번째 선택이 되었다.

naver 블러그:나나 블러그 발췌 [주님의 위로]




*칸타타:음악,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바로크 시대에 발전한 성악곡의 한 형식. 독창ㆍ중창ㆍ합창과 기악 반주로 이루어지며, 이야기를 구성하는 가사의 내용에 따라 세속 칸타타와 교회 칸타타로 나눈다.-표준국어대사전 발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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