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친정에서 돌아왔을 때 집은 온통 난장판이었다. 아직 배달되어오지 않은 가구들 때문에 수납할 공간을 찾지 못한 책과 집기류 등이 거실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고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가전제품들에서 선이 뻗어 나와 흡사 전쟁통을 방불케 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돈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나는 제대로 몸을 가눌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이제 막 대학을 다니던 딸은 다른 것은 제쳐두고라도 엄마가 누울 수 있도록 안방의 침대 정리와 화장실 청소를 깨끗하게 해 놓았다.
남편에게 퍼부어 대고 지랄 발광이라도 하고 싶은 말들이 머리끝까지 차올라 있었지만 딸아이의 애처로운 노력과 배려에 오늘은 넘기고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기는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아픈 엄마를 생각하며 하루 종일 동동 거리고 잔금이 부족하다는 말도 안 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은 지친 딸을 쉬게 해줘야만 했다.
이삿짐센터와 계약을 할 때 누누이 얘기를 해뒀건만 이따위로 짐을 부려 놓은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도대체 남편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건지.
어린 여자 아이 혼자 집안을 지키고 있다고 정말 엉망진창으로 짐을 내버리고 간 것 마냥 온갖 잡동사니가 무덤처럼 거실에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 놓인 짐이 내 막막함과 당혹감, 내게 닥쳐올 끔찍한 비극의 서막을 알리는 오프닝 같았다.
이사를 한 다음 날 점심 식사 때에 처음 기절 증세가 발현됐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독한 약과 입원 후의 후유증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흔들거리며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주방의 집기를 다시 정리하고 청소하며 시간을 보낸 난 아침이 되어서야 간신히 두어 시간 누워 있을 수 있었다.
남편하고 얘기를 해야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내게 일어나는 무슨 일이든 상식적인 일이어야 만 바로 대꾸도 가능하고 내가 행동해야 할 바도 결정하기 쉬운 법이다.
그건 내가 부족해서도 모자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난 어쨌든 남편이 그렇게 행동한 것에 대한 이유를 알아야 했고 이번 일이 우리에게 닥친 두 번째의 큰 위기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그렇다 해도 내겐 그 충격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았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곤 딸은 늦은 점심을 준비했다. 세 식구가 아무 말 없이 식탁에 앉아 법을 먹기 시작한 지 5분쯤 지났을까? 입맛이 전혀 없어 물에 밥을 조금 말아 그 마저도 물 만 두 세 숟가락 떠먹고 휘젓다가 딸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느새 딸은 내 옆에 서서 흐트러지며 기울어진 내 머리와 몸을 붙잡고 있었고 콩이가 격렬하게 짖어대고 있었다.
집에는 세 사람의 119 구급대원 분들이 신발을 신고 들것을 든 채로 들어와 있었고 한 사람은 내 팔에 혈압계를 감고 있었다.
이 일을 시작으로 내 몸은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자초지종을 묻는 내게 남편은 대출을 쓰는 바람에 모자랐던 돈은 우리가 이사 준비를 할 때 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다는 말을 했다. 아! 이 미친 또라이 새끼. 그래. 설령 그랬다 치자.
그랬으면 왜 미리 말하지 않았을까.미리 말을 했더라면.... 내가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확인할 때 왜 얘기하지 않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을 용서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친정 부모님은 내가 남편과 작정을 하고 부모님을 속이려고 했다고 생각하셨다.
아니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도 믿지도 않으셨다. 25년이 넘도록 날 기르시고 43년이 다 되도록 옆에 두고 사신 나를 믿지 않으셨다.
오빠와는 진즉에 연락을 하지 않았었고 여동생은 부모님의 말씀만을 듣고 날 비난하기에만 급급했다.
내가 아무리 몸부림치고 큰 소리로 외치며 얘기해도 그들은내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었다.
내게는 멋대로 생각하고 나를 기만한 남편과 엄마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기세인 딸, 그리고 내가 자신의 온 세상인 강아지 콩이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