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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Feb 16. 2022

"여보. 남들도 다들 그러면서 대충 살아!"

"그러니까 당신도 남들처럼 그냥 참고 살아."

안타까운 걸 하자면 남편과 함께 살면서 내가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은 소통의 부재가 아니라 소통의 이해도 때문이었다는 걸 너무 뒤늦게 깨달 것이었다.




남편은 어떤 부탁을 해도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해서 처리하고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자신의 능력은 그게 최선이라고 그러니 대충 만족하라고 너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냐며

"남들도 다들 그렇게 대충 살아. 그러니까 너도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살아"

 말 대수롭지 않게 해댔. 얼마 가지도 않아 그 문장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많은 말 중 게  되었다.

나는 남들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본인을 제외한 가족들 중 누군가가 부당한 일을 당해도 선뜻 나서는 법이 거의 없었다. 아니, 아예 없다고 봐야 했다.

 배려와 긍, 사랑이 넘치는  Listener로 태어난 사람이지만 불의와 핍박까지도 모두 감싸는 사람은 아니었다. 불처럼 싸우는 미친년이었다. 살다 보면 고상하지 못한 일을 맞닥릴 때도 많았는데 남편을 남편이라 부르지 못하고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이름 때문에 지난하고 서러움 많은, 쓸쓸한 세월을 보내야 했었다.


남편이 있었지만 없었다.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며 살아야 했다. 

남편이 함께 했어야 할 모든 순간에 남편은 부재중이었다.

아이가 어릴 땐 딴짓을 했고 아이의 사춘기 땐 접대를 하고 술을 마시며 모른 척을 했으며 입시 기간 동안엔 골프에 목매며 살았다.

돈을 벌어다 주면 가장의 노릇을 다  거라 여겼던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매달리고 읍소하고 화를 내고 달래고  참았다가 다시 분노하고 밀쳐냈다 붙잡아도 본인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내가 자신을 붙잡는 이유가 나와 아이 때문만이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그런다는 것을 아예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부부 사이가 좋지 못했던 시 부모님 사이에서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본을 보이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변명을 했다. 자신은 배우지 못해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 역시 다정하지만 언제 폭발할지 몰라 시한폭탄 같이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자신을 지키느라 자식들을 보듬을새 없던 다정하지 못한 엄마 밑에 자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난 내 자식에게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고 죽을 만큼의 노력으로 다정하고 세심하지만 속박하지 않는, 친구 같지만 권위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모에 가까워졌다 말할 수 있게 됐다.(제가 그렇게 행동했다는 건 아이 스스로가 증명해 줬습니다.)

어느 날엔가 노력하고 산 세월이 너무 쓸쓸하다고 말한 날 딸이 써놓은 메모 입니다.

사람은 노력하면 변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일이고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일이라면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증거가 여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내게 자살 사건이 일어난 이후의 삶 속에는 남편은 거의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아직은 미성년인 딸을 제치고 자신이  주 보호자로 나서서  나를 care 하고 엉망으로 흔들린 우리 집의 근간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이번에도 역시나 외면하고 말았다.

내가 망가져 버린 3년간의 시간 동안 돈 벌어 오는 사람으로서의 역할로만 행동했다.


 그와 결혼한 지 26년이 되는 동안 그에게 수십 번, 수백 번의 기회를 주었지만 그는 달라지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내게 오해를 품었을 때조차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생각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고 결심하게 되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모 아니면 도가 되는 결정만이 우리 앞에 남게 되고 말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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