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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May 22. 2022

그들이 아는 난 자리 내가 아는 든 자리 2

노랑가오리 찜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베체, 혈관성 두통, 섬유 근육 통증, 해리성 기억상실, 자율신경 실조증, 역류성 식도염, 위염, 부정맥, (5~6번) 경추 디스크, 퇴행성 척추관 협착증, 뇌동맥류, 중성지방, 고지혈, 베체트 장염, 우울증, 불면증, 불안장애, 공황 장애


이 많은 병이 생기도록 무엇보다 나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8년이 넘는 그 오랜 시간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모든 것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날들이 훨씬 많다. 게다가 매일 어제보다 오늘, 조금씩 더 많은 기억들을 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저 나를 외면하고 이렇게 많은 병이 생기도록 모른 체한 원가족들을 원망했고 긴 시간 동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외면하고 삶의 모든 어려움들을 그저 아픈 딸과 내게 맡겨 버렸던 남편을 죽도록 미워하기만 했었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원망과 미움은 해리성 남아 안 그래도 심각한 두통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머리가 지독하게 아파질수록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세월들, 날짜들, 사건들은 점점 줄어들고 모든 게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고 기억을 떠올려 봐도 투병기간 중의 기억들 중 내가 벽하게 올릴 수 있는 것들이라곤 고작해야 2~3년간의 정확하지 않은 낯설고 고통스러운 기억들 뿐이었고 나머지 7에서 6년이 못 미치는 시간은 지우개로 지운 듯, 검은색 페인트로 덮어 버린 듯 내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워져 버렸다.


나에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을 한 적 없던 오빠나 동생 덕분에 더 어릴 적 옛일마저도 희미해져 내 일생이 얼룩지는 것 같아 슬프고 우울한 마음으로 로워만 하던 음의 변화를 줄만한 일이 생겼다.




언젠가 한 번 오빠와 동생을 용서했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발행을 취소해버렸지만. 진심으로 용서를 했던 것이든 아니든 내 머릿속에서 그들을 지우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편하게 살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후론 사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내 관심 밖의 일이 돼버리고 말았다.


다만 한 가지, 점점 나이가 들어가시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은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아프기 전에 해드리던 모든 것들을 이젠 동생과 오빠가 나눠서 일이나 심부름을 해드리고 있는데 [구관이 명관]이라고 모든 걸 땅치 않게 생각하시고 급하게 해결할 일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 다반사가 돼버리니 많이 불편함을 느끼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에게 전해 들었다. 그리고 함께 모여 있는 자리에서 내 얘기를 말씀을 하시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되었다는 얘기까지 전해 듣게 되었다.


"아니. 복잡한 일 얘기한 것도 아니고 서류한 장 만들어 오라는 걸 마음에 쏙 들게 못해오냐! ㅇㅇ이가 아프지 않았을 땐 두 번 말할 필요도  없이 뭐든 야무지고 싹싹하게 해 왔는데... 두 놈 다 뭐 한 가지를 속 시원하게 해 오는 놈이 없으니.... 아픈 놈 붙들고 사정할 수도 없고."


그리고 예전보다 잦아진 부모님과의 통화를 통해 마음 아프고 상처받았던 일들에 대해 일부나마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기도 했다.

물론 내가 받았던 모든 상처에 대한 대답을 다 들을 수 있을 거라곤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다. 


아버진 당신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셨다고 믿는 분 이시다.

나 역시 부모님께서 자식인 내게 그렇게 해주셨다는 걸 감사히 생각하고 언제나 큰 복이라 여기며 살았었다.

단 한 번도 부모님께서 자식인 내게 주시고 베푸시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받았던 적은 추호도 없었다.

부모님께서 주시고 베푸시는 것에  대한 보답을 하기 위해 살을 저미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며 살았다.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부모님의 사랑에 화답할 수 있도록.

무엇이든 부모님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사는 걸 당연시 여겼었다.

부모님께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 말씀하시듯 나 역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누구의 탓이었던 흘러간 시간 되돌아오지 않을 거란 건 잘 안다.

그래도 이제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넘어진 나를 짓밟은 이들에게 시간이 알려주고 있던 옳고 그름의 정의를 제대로 알려주려 마음먹었다.




조심히 잘 지내시던 부모님 중에 친정아버지가 얼마 전에 코로나로 심하게 고생하시고 후유증이 남아 제대로 식사를 못하신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덩달아 간호하시느라 엄마까지 병이 나서 식사조차 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어렵사리 수산물 직거래 온라인 마트를 통해 좋아하시는 노랑가오리를 구해 양념에 가오리의 애를 같이 으깨 넣고 가오리 조림을 만들어 보내드렸다.


노랑가오리는 바닥이 노랑색을 띄어서 노랑가오리라고 불려요. 찜으로 많이 먹습니다.

그리고도 여전히 입맛을 찾지 못하신다길래  알이 가득한 '암꽃게'를 배송시켜 드렸다.

편식이 없으신 분이지만 특히 꽃게를 좋아하셔 이맘때면 항상 수산시장으로 장을 보러 가는데 올 해는 여러 가지로 여의치 않아 포기하고 계신중에 마침 우리가 꽃게를 보내드려  아주 맛있게 드셨다고 하셨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 믿지 않는다.

아직 내 마음도 불확실함이 가득해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를 번갈아 겪으며 매번 시행착오를 견뎌내려 노력 중이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엔 '절대 아니다'라 믿었던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고 내 마음에도, 내 옆의 다른 누구에게도 기회를 주려고 생각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번에야 말로 내가 난 자리뿐만 아니라 내가 든 자리  역시 그들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 보이려고 한다.

한낱 어리석었던 실수와(남편) 뜯어먹기로 작정했다 내버리고, 필요할 때 이용했던 형제, 자매의 농간들이 다시금 잠시 눈앞을 가린다 해도 이제 그런 것쯤은 상관할 필요도 없어질 만큼 내 필요와 지극한 사랑을 잊지 마시기를 바란다.


내가  없어 불편했던 시간을, 내가 난 자리를 잊지 않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to be continued....



PS:한 가지, 예전 같은 모습으론 돌아가진 않을 겁니다. 속없이 다른 이도 내 마음 같을 거라 믿고 사랑도 정도 노력도 시간도... 다 주지 않을  말이에요. 정말 슬픈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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