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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Aug 20. 2022

밥을 먹다 오열을 했다

CRPS 통증, 두통, 섬유근육통, 베체트 관절통, 자율신경기능 이상..

올해는 6월의 이른 장마를 시작으로 너무 많은 비가 내리는 여름을 견디고 있다.

이건 뭐 아열대 기후도 아니고! 

매일을 34°C 가  넘는 고온에 물폭탄에 가까운 비가 연일 쏟아지며 안깝고 귀한 목숨들을 잃는 슬 일들도 일어났다. 이런 일들까지 겹치며 안 그래도 내게 가장 힘든 계절인 여름을 하루하루 고역이라 여기며 간신히 버티고 견디고 있다.


비가 많이 오고 습도가 높은 여름이라는 계절의 특성상 내 몸은 한순간도 고통과 떨어질 새가 없다.

'베체트'로 인해 대 관절의 염증이 심해지며 움직이는 것도 부자연스러울 만큼 관절 부위에 붓기와 통증이 심해졌다. 그로 인해 예민해진 몸의 감각은 '자율신경기능 이상'을 극대화시켜 에어컨 바람으로 온몸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져 있어도 머리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입고 있던 옷을 흠뻑 적시고야 만다. 이럴 땐 부지런히 땀을 닦아준 후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따뜻한 블랭킷 등으로 몸을 감싸주며 얼굴만 시원한 바람을 맞게 해 줘야 그나마 비 오듯 쏟아지던 땀도 잠잠해지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시면 알 수 있겠지만 더운 날씨에 건강한 사람이 땀을 흘려도 지치고 피곤해지는 것이 자명한 일인데 20 여 가지의 병을 가진 중환자? 가 (시원한 상태에서도) 입고 있는 옷이 모두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다는 것이 얼마나 지치고 고단한 일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게다가 심해진 '자율신경기능 이상'으로 한동안 잠잠했던 기절 증세까지 도져 온 식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살아가고 있다.




습도가 높은 날씨는 통증을 가진 환자에겐 치명적인 환경이다. 게다가 여러 가지 통증을 가진 환자는 대부분 한 가지 통증이 생기게 되면 다른 통증 연쇄적으로 발생하게 마련이다.

물론 한 가지 통증이 너무나 극심하고 지독한 경우에는 다른 통증들이 상대적으로 덜 아프 생각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올여름은 내게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비가 오기 이틀 전부터 높아지는 습도를 감지해 침대를 떠날 수 없이 아파하는 내게 매일이 비 오는 전전날이었고 비 오는 전날이었으며 비 오는 날이었다.


수면제를 먹고도 밤새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며 새벽을 맞이하고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잠시 눈을 붙이는 내게 잠에서 깨는 순간은 한마디로 지옥 그 자체다. 

날도 여느 날 다름없이 늦은 오후까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앓고 있었다.

눈을 뜬 지는 이미 오래전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임을 크게 했다가는 금 겪고 있는 갈비뼈 전체가 으스러질 것 같은 '섬유근육통'의 통증 외에 속이 울렁거리다 못해 구토가 나고 눈앞이 흐려져 무엇하나 제대로 볼 수 없고 머리 전체가 터져버릴 것 같은 '두통'이 더욱 심해질  같아 무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른쪽 팔의 상박근 팔뼈 깊숙한 골수 안쪽의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6월 장마를 시작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생긴 'CRPS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통증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사실 아픈 환자라면 하루에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을 생각해서라도 삼시세끼 꼬박 제시간에 식사를 챙겨 먹어야 하는 것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낮과 밤의 균형이 깨져있고 먹는 약의 양이 많은 데다 독한 약을 오래도록 먹은 나는 이미 입맛을 잃은 지 한참이다.

그나마 지극정성으로 상을 차려 나를 깨우고 하루에 한 끼라도 먹게 하려 애쓰는 딸의 노력에 없는 입맛이라도 단 한 숟갈이라도 더 노력해서 먹으려고 열심히 밥을 입에 욱여넣는다.


밑반찬 몇가지는 기본으로 만들어 두고 일주일에 두 세가지의 메인반찬을 교체해서 상을 차려줍니다.본인도 아픈 몸인데도 불구하고 엄마를위해 고생해주어 늘 딸에게 고마워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눈을 뜬 후부터 어떤 약을 먼저 먹어야 할까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통증에 휘둘리고 있을 때 매일 루틴처럼 밝은 목소리로 얼굴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고 딸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김여사~~ 일어날 수 있겠어? 오늘은 무슨 약부터 먹고 싶어? 어디가 제일 아파?

"음... 막상막하야. 온몸 ~어무 아파.ㅎ ㅎ. 우열을 가릴 수가 없네. 엄마가 어떻게 아픈지 얘기할 테니까 어떤 약을 먼저 줄지 네가 결정해 줘. 주는 대로 먹을게."

"알겠어. 들어보고 딱 맞는 약 세팅해서 대령할게. 그 대신에 엄마 내가 밥 차릴 테니까 우리 밥 먹자. 나도 아직 밥 한 끼도 안 먹었어. 나 고파."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프고 두통으로 눈앞은 흐리고 어지러워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마치 건강한 사람인 것 마냥 딸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 딸에게 환하게 웃어주며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식탁에는 진수성찬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의 맛있는 반찬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흰쌀밥이 차려져 있었지만 침대에서 욕실을 거쳐 식탁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이에 오른쪽 팔에는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리는 서늘하고도 뜨거운 통증이 심해지고 있었다.

다른 어떤 통증에 대한 약 보다도 CRPS통증을 위한 약이 먼저 필요했다. 망할 놈의 날씨가 나를 때려잡으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결국엔 밥을 한 술 뜨기 전부터 팔의 통증을 잠재우기 위한 마약 진통제인 옥시코돈을 2알 먼저 삼켰다.(처음만 2알을 먹어요) 그리고 10분 간격으로 알람을 설정해 놓고 팔과 다리의 통증이 가라앉기까지 옥시코돈을 한 알씩 먹을 수 있게 세팅을 해 놓은 후에야  아침이기도 하고 점심이기도 하며 저녁이기도 한 우리의 1일 1식을 시작할 수 있었다.

사실 마음 같아선 팔의 통증을 먼저 진정시키고 밥을 먹고 싶었다. 팔의 통증이 조금이라도 더 진행되면 CRPS통증은 금세 왼쪽 다리로 번져 걷잡을 수 없이 극심한 통증을 불러일으키게 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올해 들어서 진통제를 많이 먹은 후엔 반드시 알레르기가 심하게 올라와 온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은(심하다 못해 모공까지) 다 가렵고 따가운 증세가 몇 시간씩 이어져  인내심 끝을 시험하는 듯했다.

하지만 공을 들여 식사를 준비한 딸의 마음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빈속에 독하디 독한 마약진통제를 쏟아붓는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안타까운 눈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찢기고 피가 튀며 팔과 다리가 난도질당하고 불에 타는 듯한 통증 속에서도 약을 하나 삼키고는 밥을 한 숟갈 욱여넣고 딸이 준비한 맛있는 반찬을 골고루 먹으며 소리 없이 울었다.

온 얼굴과 목, 가슴팍이 다 젖도록 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12알의 약을 삼키며 한 시간 반이 넘도록 통증과 싸우며 식탁 앞에 앉아 오열했다.


그리고 밥 한 그릇을  다 비워냈다.




내일 눈을 뜰 시간이 무섭다. 다시 내게 찾아들어올 모든 통증과 고통들이 두렵다.

어느 누구도 내가 겪는 이 심연의 외로움을 알지 못할 것이란 걸 알기 때문에 더욱 무섭고 두렵다.


내가 이 모든 것들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나도 내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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