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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Sep 13. 2022

나는 포기하고 있는가?

나는 불치병 환자(베체트, CRPS)

처음 베체트병 진단받았을 때 의사가  했던 말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특별히 치료할 방법이 있다거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진 병은 아니에요. 호전되거나 악화되거나 하는 기간 동안 약 조절하면서 생기는 증상에 대처해야 합니다. 평생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마음을 잘 다독이세요"


물론 그때까지 잔병치레 하나 없이 살아왔던 인생은 아니다. 튼튼하다고 큰소리칠만한 몸은 아니었지만 강단 있는 성격과 무엇이든 잘 해내고픈 욕심으로 악바리라는 별명답게 뭐든 열심을 다해 애쓰며 살다.

리고 비록 약한 몸이었지만 큰 수술 한번 없이, 뼈 한번 부러진 적 없이 이까지 낳아 잘 키우며 살아던 내게 느닷없이 죽을 때까지 나을 수 없다는 불치병(희귀 난치질환)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흔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자기 찾아온 베체트는 한참 일에 재미를 붙이며 날아오르려 날갯짓을 하는 내 날개를 부러뜨려 주저앉혀버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병을 발견하는  6개월, 내게 맞는 약을 찾는 데만도 또 여러 달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내게 온 이 병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에도 몇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병명조차 들어보지 못했을 그런 이상하고 어려운 병을 평생,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오랜 시간 나를 괴롭히고 있다.


완화와 진행이 반복되는 병의 특성상 완화되었다고 해서 약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날이 가고 나이를 먹어가며 또 함께 앓고 있는 다른 병들이 심해지면서 베체트  역시 계속 변하고 있다.


유난히 비가 많고 습했던 올여름은 내게 지옥 같은 시간을 선사했다.

입 안이 허는 것도 모자라 치아를 둘러싼 잇몸이 헐 염증이 심해져 7주가 넘도록 낫지 않 물을 마시는 것조차 웠다. 어깨, 팔꿈치, 팔목, 고관절, 무릎, 발목 등의 대관절이 부어올라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화장실을 가기까지 오랜 시간 지나움직일 수 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손가락을 움직일 수 조차 없는 날카롭고 무지근한 통증 저절로 신음 소리를 내게 만들고 다. 눈을 뜨고서도 바로 움직이지 못하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날이 늘어가고 있다. 이런 고통들을 내가 단 한 가지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에 깊은 무력감을 느낀다. 매일매일 늪으로 한 발짝씩 걸어 들어가고 있는  같다. 걸어 들어가는 곳이 늪이란 걸 알지만 돌아 나올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늘어가는 합병증과 다른 병들의 악화로 내가 나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내 병을 알고 있는 지인들의 다정한 위로의 말이나 교회 교인들의 믿음 어린 격려의 말, 가깝게는 나를 간병하는 딸의 의지가 듬뿍 담긴 희망찬 말에도 나는 희망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양쪽 어깨에 처음 불편함을 느꼈을 때엔 내게 다른 병이 생겼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어느 날 문득 느껴지는 통증에 '내가 어제 무거운 걸 들었었나?''아님 뭐를 잡아당겼나?''왜 이렇게 어깨가 불편한 거야?'

렇게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는 통증에 걱정이 되어 동네에 있는 정형외과를 찾아갔고 정형외과에선 어깨 석회성 건염 의심했지만 엑스레이상에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단순 오십견으로 진단한 후에 양쪽 어깨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시술리치료를 받게 됐다. 하지만 몇 달간 이어진 치료에도 어깨의 통증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어깨의 통증이 심하다는 얘기를 진료 중에 들으신 베체트 병 담당 교수님은 어깨 전문인 정형외과 교수님께 transfer 해주셨고 거기서 제대로 된 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

병명은 회전근개파열이었다.

3차 대학 병원에서도 몇 달에 거쳐 스테로이드 시술을 하며 경과를 지켜보았다. 다행히 그 분야에서는 경험이 많은 선생님이셨던 덕에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치료를 열심히 다녔지만

문제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왼쪽 어깨는 서서히 나아지며 통증이 잦아들어 갔지만 오른쪽 어깨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욱 통증이 심해져 가기 시작했다.

무엇이 됐든 내가 원치 않는 것이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는 소름 끼치는 일을 이미 겪어 알고 있는 나는 심상치 않은 오른쪽 어깨의 통증이 날이 갈수록 견딜 수 없어졌다.

베체트로 인해 한번 꺾인 삶의 희망도 더 이상 흔들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서 얘기한 대로 수술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이 내 남은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을 거란 걸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난 무엇이든 잘 참는 인간이었다.

그중 통증도 포함되어 있었다.

웬만큼 아파서는 아프다는 말도, 신음 한마디조차도 흘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직장을 다닐 땐 일하다 링거를 맞고 다시 일을 하러 가고, 밤새 아픈 아이와 씨름하고 아이에게 목감기, 기침감기가 옮아도 아픈 내색 한번 없이 일하며 아이를 돌봤다.

딸을 낳던 32시간 내내 '아'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세상에 참지 못할 고통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회전근개 파열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담당의는 그날 밤 안으로 팔을 90° 이상으로 려야만 수술부위에 유착을 막을 수 있다고 기를 했다. 진통제 알레르기가 있었던 나는 수술 후에 달았던 마약성 진통제를 제거한 채 팔이 끊어지는 것 같은 통증을 참으며 수술한 첫날밤에 90°가 아닌 180°를 올린 후에 통증을 벗 삼아 밤을 지새웠다.


수술받은 어깨가 뜯겨 나가고 그 자리에 활활 타오르는 불이 옮겨 붙은 듯 통증을 처음 경험한 밤이었다.


수술받은 오른팔은 몇 달에 걸쳐 재활을 받았다.

여전히 주사 시술도 받았다. 하지만 오른쪽 어깨의 통증은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수술받았던 날 밤의 통증과 비슷한 양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6개월이 채 되기도 전에 정형외과 교수는 내게 선언을 하듯이 말했다.


"환자분, 죄송하지만 여기선 더 이상 해드릴 게 없을 것 같네요. 팔의 통증 CRPS(복합 부위 통증증후군) 것 같습니다. 마취통증 학과로 전과해드리겠습니다."


어안이 벙벙했다.

CRPS(복합부위 통증후)이 무엇인지, 어떤 병인지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원치 않는 소름 끼치는 무엇인가가 달라붙어 내 인생을 망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떤 병이라 명명되지 않고 그저 증상들만 나열되어 있어 syndrome이라 불리는 이 끔찍한 병은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CRPS는 순식간에 나를 지옥의 저 바닥 밑으로 내팽개쳐지게 만들어 버렸다.

 뜯기고 잘리고 피부를 베어내고 뼈의 골수를 뽑아내며 뼈 울려 깨지도록 두들기고 쇠못이 박힌 방망이로 내려쳐 짓이겨 버리는, 그 문드러지고 피가 터진 살덩이와 뼈가루에 불을 붙여 마침내는 머리가 터져 버리게 만들고야 마는 지옥 그 자체가 내 일상이 되고 말았다.


내가 베체트에 이어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진단받았을 때 나를 진료하고 있던 여러 과의 교수님들은 다들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중 어느 교수님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번에 CRPS 진단을 받으셨다고요... 이렇게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그게 조금 어려운 병이라서 마음 굳게 먹으세요. 차라리 암이라면 수술이라도 해보고 알려진 병이라 이 사람, 저 사람 위로라도 많이 받을 텐데 이 병은 아는 사람도 없고 환자 고통은 말할 수도 없이 크니... 여러 가지로 도울 테니 낙심하지 마시고 치료해 봅시다. 기운 잃지 마세요."




어느 누군가는 '죽지 않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8년이 넘는 시간을 지옥(CRPS)을 겪으며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베체트를 겪고 두통과 섬유 근육통, 그리고 더 많은 병들과 함께 하며 어느 순간 나는 죽음을 꿈꾸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고통에 못 이겨 죽음으로 내몰리기도 했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내게 "죽지 말아라"  말할 수 없다.


나는 죽 날까지 사람이 겪는 가장 극심한 고통이라 말하는 불에 타는 고통을 느끼며

지금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다.

베체트의 통증과 눈이 안 보이고 구토가 생기는 심한 난치성 두통과 몸이 깨질 것 같은 섬유 근육통, 시도 때도 없는 공황발작과 당장이라도 심장이 입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은 불안 숨이 쉬어지지 않아도,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통증 멘털이 무너져 세상에 나 혼자뿐인 것처럼 외로워도 나는 또 하루를 견디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포기하고 있냐고?

아니. 렇지 않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나는 견뎌낼 것이다. 


다시 오지 않을 20대를 엄마에게 헌신한 나의 아가, 나의 딸이 나를 두고 안심하고 독립할 수 있도록.


엄마가 아파 자신의 젊은 날을 엄마 옆에서 보내버린 강아지 아들 콩이에게 엄와의 산책과 여행을 선물하기 위해.


그리고 다시 한번 날아오를 나 자신을 위해서 오늘도 나는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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