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에 푹 빠져들었다
걱정을 많이 했었지만 새벽 찬양단은 내게 꼭 맞는 옷을 입은 것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만으로 가득했다.
새벽 예배의 시작은 오전 5시 25분이었지만 찬양단을 서기 위해 잠깐이라도 목을 풀고 입을 맞추려면 새벽 4시 40분까지는 교회로 나가야 했다.
불면증이 있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내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힘듦보단 은혜가 많은 날들이었다.
내가 새벽 찬양단을 시작하면서 찬양단을 지원하시는 분들도 늘어 날짜를 정해 교대로 설 수 있는 여유도 생겼고, 나와 함께 시작하신 분 중에 바이올린을 켜시는 치과선생님이 반주를 자원해 주셔서 풍성한 반주 속에 찬양을 드릴 수 있어 더없이 감사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예배가 끝난 후에 모여 다과를 나누며 다음 주에 드릴 찬양을 연습했고 한 달에 한 번씩 맛집을 찾아 아침식사를 나누며 팀워크를 다지곤 했다.
새벽 찬양단을 하면서 새벽 예배를 다녀야 할 중요한 이유가 생겼고 새벽 예배 후의 기도 시간을 통해 그동안 상처받았던 내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많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어느 땐 울며 하소연하기도 하고 또 어느 땐 나 이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내 마음속 깊은 비밀을 털어놓으며 조금씩 본래의 내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내가 언제 병을 앓았던 적이 있었나, 아직도 깊은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맞는가 싶을 만큼 웃음이 많아졌다. 집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교회만 나가면 다 잊을 수 있었다.
그만큼 난 하나님께 모는 걸 의지하고 있다고 믿었다.
내가 54년이란 세월을 살아온 지금까지의 살아온 삶을 뒤돌아 봤을 때, 가장 평화롭고 가장 행복했던 몇 년의 시간이 시작되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그만큼 내 35살의 봄은 찬란하고 아름답고 평화롭다고 느껴졌다.
본 예배의 성가대와 새벽 찬양단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 중창단인 아르엘 중창단에서도 함께 하자는 얘기가 여러 루트를 통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쯤 되자 슬그머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본 예배의 성가대야 원체 인원이 많아 내가 조금 못한다 해도 다른 분들이 잘 부르시는 사이에 살짝 숨도 몰아 쉬고 음이 이탈이 나도 슬쩍 묻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새벽 찬양대 역시 그 시간에 나와 앞에 서서 찬양을 부른 다는 사실 만으로도 모든 걸 용서? 해 주시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너그럽게 봐주셨다.
하지만 중창단은 얘기가 달랐다. 소수의 정예 요원들이 각자의 파트에서 정확하게 아름다음 음을 내며 화음을 만들어 찬양을 부르시는 분들이 대다수였고 전공을 하신 분들도 있어 내가 낄 자리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난 진심을 다해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그런데 내게 권유를 해주셨던 분들은 모두 '거절은 거절하겠다'는 의사를 확고히 내비치시며 내게 한 번, 두 번, 세 번... 여러 번 중창단을 함께 하자며, 중창단을 시작해 보라며, 중찬단을 꼭 해야 한다며 권유해 주셨다.
난처하고 죄송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을 때 이 상황을 한 번에 정리해 주신 분이 계셨다.
본 예배 성가대 '시온 찬양대'엔 전공을 하신 집사님이 지휘를 맡고 계셨다. 약간 츤데레 스타일의 집사님은 보기엔 무뚝뚝하고 연습을 시킬 땐 때론 무섭다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분이었다.
어는 날 성가대 연습이 끝나고 연습실을 나서려는 나를 지휘자 집사님이 불러 세우며 말을 했다.
집사님. 그 아르엘 중창단 그냥 하세요. 거기 제가 지휘하고 있어요. 지금 알토가 부족한데 집사님 거기서 연습하시면 실력 많이 늘어나실 거예요. 연습 때 오세요.
그리곤 연습실을 나가셨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주 목요일 중창단 연습부터 참여하게 됐다.
중창단까지 하게 되면서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많은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또,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사랑하게 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순간들이었다.
해마다 동서울 노회에서 개최하는 찬양 대회에 참가하고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교회를 대표하여 노래를 했으며 결혼식에 초청받아 축가를 부르기도 했다.
처음엔 병의 치유로 나를 위로하시고 당신을 찬양할 수 있는 은혜로 부족한 나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살게 됐다.
어느새 영접 기도를 따라 하며 눈물을 흘린 지 1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드디어 나도 세례를 받는 날이 다가왔다.
교회에서 세례를 받기 전에 따로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도 내 마음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들뜬 마음에 내 마음을 짚어볼 여유가 없었다. 그 당시엔 그냥 교회를 처음 다닌다면 누구든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잘못 생각해도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날에 하필 예배 순서에 중창단의 연주가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있을 동서울 노회 찬양대회에 입으려고 맞춰둔 드레스를 먼저 입자고 얘기가 나와 처음으로 드레스를 입고 찬양을 부르게 된 날이었다. 내 생각은 온통 드레스에 쏠려 있었다.
중창단의 찬양보다 세례식이 먼저 진행되도록 식순이 정해져 있었다. 아무리 세례 받는 것이 기뻐서 좋은 옷을 입고 왔다고 생각하더라도 드레스를 입고 단상에 올라서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아무리 세례 받는 일이 좋다고 해도 저렇게 드레스까지 입고 오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와! 저 사람 좀 봐. 오버(over)를 넘어서 육바를 하고 있네. 웬 드레스? 웃긴다. 진짜.
세례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신해 내게 성수를 부어 주시며 기도와 세례를 해주시는 목사님의 말씀을 뚫고 내 귀에는 성도들이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사실 누군가 오해를 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잠깐의 세례식이 끝난 후에 중창단의 찬양을 듣게 되면 내가 드레스를 입은 이유를 누구나가 알게 될 거라는 사실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예배를 보며 세례식을 참관했던 사람들은 어느 누구보다 더 세례 받은 사람들을 위해 함께 기뻐해주며 사랑을 나눠 주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다만 내가 간과한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 자리엔 나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어릴 적부터 오랜 시간 참고 인내하며 나를 누르고 감추며 착한 사람으로만 살아왔던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 자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 옛 모습을 버리고 나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믿으며 내 몸이 곧 그리스도의 몸인 한 지체가 된다고 선언하는 세례식이 있던 날 내가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내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가슴이 찢어지게 아파왔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