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설까, 쓰러질까 -제자 대학 공부기(期)

by 강나루

제자 대학을 공부해 보겠다는 결심은 정말 탁월한 선택인 듯했다.

아프고 고단한 몸에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성경을 다시 읽으며 말씀을 가까이하고, 여러 가지 기독교 서적을 통해 내가 알지 못했던 지식을 쌓아 가면서, 예배를 통해서 들어도 이해가 안 됐던 부분들과 목사님의 강론에서 듣고 부족했던 부분들에 대한 목마름을 채워 나갈 수 있었다.

또 담임 목사님께서 우리 2기를 지도하며 의를 이끄셨는데, 늘 어렵게만 느껴지고 가까이하기 어려웠던 목사님의 섬세하고 위트 있으시며 다정하신 모습에 힘든 마음을 많이 위로받기도 했다.


그리고 함께 공부하시는 여러 연령대의 집사님들, 권사님들과 교류하는 일은 정말 즐겁고 배울 점이 많은 시간이었다.

제법 나이가 있으신 권사님들도 젊은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을 보며 새롭게 도전정신이 일깨워지기도 했다.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해오시며 나이가 드신 분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인내심과 상대를 향한 너그러운 배려가 한층 깊게 몸에 배어 있는 듯했다. 그런 어른들을 바라보며 내가 제대로 된 신앙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성도 간에 서로 교제하는 일이 또, 바른 신앙생활을 하시는 어른들의 모습이 얼마나 훌륭한 교과서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게다가 워낙 공부해야 하는 양이 많기도 했지만 숙제를 통해 평가되는 부분들이 있어, 나 역시 잘하고 싶은 마음에 열심을 다하려 많은 애를 쓰기도 했다.

우리 2기 에는 현역 의사 선생님도 계셨고, 은퇴하신 학교 선생님이 두 분이나 계셨으며, 어디에 내놔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한가락하시는 분들이 대거 포진하고 계셨던 덕에, 난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많이 앞서 있었다. 어떤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내더라도 자료조사까지 첨부해 가며 열심히 했고 무엇을 하던 역시 강나루 집사님은 다르네요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그때는 아직 직장 생활하던 때의 완벽주의 성향과 모든 일에 실수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던 때의 강박에 가까운 아집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며 살던 때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나님과 믿음에 대한 공부를 하며 배려나 양보는 고사하고 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마음이 앞섰던 어리석은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지만, 그때는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여 남에게 보일 내 모습만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던 때였다. 그리고 남편이 저지른 외도로 인해, 혹여 내가 실수하면 다른 사람들까지 나를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열등감과 열패감에 사로 잡혀 제대로 된 상황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여러모로 부끄럽고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제자 대학 공부를 하며 회복되고 배우는 것들도 많았지만, 온전히 쉽고 행복한 시간 만은 아니었다.

희귀 난치 질환인 베체트를 진단받고 교회를 다니며 한동안 잠잠했던 불면증과 우울증이 다시 고개를 쳐들어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베체트 병 자체의 증상 만으로도 이미 일상을 지키기 어려워지고 있던 나는 내가 그렇게 약해졌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기 싫어했고, 힘들고 지쳐 갈수록 더 좋아진 듯, 더 행복해진 듯 얼굴에 가면을 쓰고 살았다.

예배에 열중하고 틈만 나면 기도를 하며 이렇게 교회에서 이끄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내 몸을 무너뜨리려 하는 병에 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수많은 노력은 그저 노력 그 자체로만 남겨질 때가 많았다.

교회는 상처 많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집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주변엔 나를 위로해 주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만큼 상대적으로 나의 위로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도 차고 넘쳤습니다.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것이 힘에 겹기도 했지만 또 어느 땐 그들의 얘기를 통해 위로를 받는 순간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계획하신 일이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공부해 조금이나마 더 나은 Listener, 더 나은 위로자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이렇게 제자 대학을 공부하는 동안 나름대로 마음을 추스르며 노력하고 애썼지만, 감정의 진폭이 크게 오르내리며 위태로운 모습을 자주 보이자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유독 나와 친하던 몇몇 집사님들과 담임 목사님은 주 내 출석을 따로 챙기시며 마음을 많이 써주셨다.

그중에 우리 셀 리더였던 김집사는 주중에도 잊지 않고 집에 들러 입맛을 잃은 내가 먹을 수 있을만한 음식들을 사서 챙겨 나르기도 했다.

어느 땐 교회 식구들이 가족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위해준다는 느낌을 많이 받기도 했다.

돌아보면 구멍구멍, 가닥가닥 갚아야 할 은혜고 빚 천지였다.




난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하다못해 연말 시상식 프로그램에서 상을 받은 연예인이 소감을 말하며 울먹이는 장면을 보면서도 눈물을 쏟아내는 사람이었다.

나 역시 편치 않은 삶을 살면서 누구든 자신의 얘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며 함께 웃고 울었다. 함께 얘기하고 공감하다 보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해소될 수 있었고, 그리고 남은 문제는 주님께 맡기고 이겨내자고 함께 기도했다.


제자 대학 강의가 있던 그 목요일 아침은 유난히도 맑았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교회 갈 준비를 서두르는 대신 다시 침대에 길게 뻗어 드러누워 버리고 말았다.

분명히 맑은 날씨인데 몸이 천근만근인 것처럼 느껴져 꼼짝도 하기 싫었다.

그냥 이대로 다시 자 버릴까?!

이제껏 단 한 번의 결석도 없이 강의에 열심히 매달리던 마음에 슬그머니 귀찮음이 몰려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누운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싫었지만 팔을 길게 뻗어 침대 옆 탁자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문자를 읽었다.


[안녕하세요. 제자 대학 2기 수강생 여러분.

주의 중반을 지나 제자 대학 강의가 있는 목요일입니다. 힘들고 피곤하신 분들 많겠지만 다들 떨치고 일어나서 교회 502호 회의실에서 뵙겠습니다. 이제부터 20분 후에 강의 시작입니다. 서둘러 오시기 부탁드립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보내신 문자였다.

왠지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죄송하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교회로 향했다.

우리 집부터 교회 까지는 어른들의 빠른 걸음으로 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강의를 빼먹으려 했다는 작은 죄책감에 서둘러 교회를 향하고 있을 때 갑자기 새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시간에 쫓기고 있었지만 몇 시간 동안 전화를 할 수 없을 것을 생각해서 부지런히 걸으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새언니. 나 지금 교회 가는 길인데....

고모! 고모. 혹시 들었어요? 최 진실이 어젯밤에 자살했대요. 지금 뉴스에 나와요.

뭐? 최 진실이 죽었다고? 정말 최 진실이 죽었다고? 아... 나 지금 교회에 공부하러 가는 길이야. 끝나고 오후에 전화할게.

전화를 끓고 일순간 교회로 향하는 발걸음이 멈춰졌다.


한 달 전쯤 개그우먼 정선희 씨의 남편 안재환 씨가 자살을 하며 여러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안재환 씨의 죽음에 최진실 씨가 관련되었다는 악성 루머와 댓글들이 판을 치 있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가까운 친구의 남편을 죽인 사람이라는 누명을 쓰고 괴로워하는 최진실 씨의 모습을 '국민들의 알 권리'라는 명목하에 무참히 까발리고 왜곡하여, 것 그대로의 모습을 앞다투어 방송에 내 보내던 여러 방송사들의 추악한 행태에 진저리를 치던 때였다.

또 저간의 사정을 알지 못하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외로움과 끔찍하게 왜곡된 거짓에 살이 더해져, 진실보다 더한 진실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던 최진실 씨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을지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안재환 씨의 장례식까지 세세히 보도해 주는 방송 덕분에, 우울증이 심했던 나는 가족을 잃은 듯 통곡을 하며 며칠 동안 울었고, 그런 나를 보고 걱정되었던 딸이 내게 말을 했었다.

엄마, 너무 안되고 슬픈 일이긴 한데... 저 사람들이 가족도 아니고. 왜 그렇게 며칠씩 입맛도 잃고 울기만 해? 그러다 몸살 나겠어. 안 그래도 아픈데 많은 사람이. 이제 저거 그만 봐.


새언니의 전화를 끊자마자 미처 막을 새도 없이 두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멈춰 섰던 발을 움직여 교회로 향하면서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교회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냥 이런 마음으로 집으로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502호 회의실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함께 공부하시는 분들의 얼굴을 보자 이젠 눈조차 바로 뜰 수 없을 지경으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바로 옆에 앉아 계신 두 분의 집사님들이 내 어깨와 다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지만, 내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우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강의에 참석한 어느 누구도 내게 왜 우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렇게 첫 강의 시간 내내 소리 내서 울지 않기 위해 를 쓰던 나를 바라보던 목사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여기 중보 기도팀에 계시는 분도 있으시고... 우리 교회에서 여러 번 기도 제목으로 올려서 잘 아시겠지만 강나루집사님이 다시 아프시죠. 몸이 아프면 마음도 따라서 약해지고 아프게 돼 있어요. 이렇게 함께 모여 공부하시는 분들은 특별히 신경 써주셔서 집사님 혼자 마음이 힘드시는 일 없게 각별히 챙겨주세요. 안 그래도 오늘 강의 시작하기 전에 뉴스를 보고 왔는데 최진실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보고 왔어요. 최진실 씨도 크리스천이었다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주변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고 조금만 더 신경 쓰고 지켜줬더라면 지금 같은 결과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네요.

소리를 내지 않고 우느라 당장 목이 터질 것만 같았던 나는 목사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어깨를 들썩이며 탁자에 머리를 처박고 "끅~끅~" 소리를 내며 울었다.

강의 시작 전부터 내가 울고 있던 이유를 목사님은 이미 짐작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사람을 지켜야겠죠. 강나루집사님을 위해 잠시 기도하고 다시 시작하죠. 힘들고 고단한 몸과 마음을 지켜주시길, 그 길 위에 주님과 우리의 기도가 항상 함께 할 것을 잊지 말기를 바라면서 기도 하겠습니다.




내가 제자 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탁월하신 선견지명과 따뜻하신 위로가, 목사님을 통해 내게 전달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남은 제자 대학 기간을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를 다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내게 2기 졸업생을 대표해 간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To be continued....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