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어깨 수술은 완벽했다.
실력 있는 의사를 만난 난 운이 좋은 케이스 라고 했다.
수술했던 날 진통제 알레르기가 심해 진통제 없이 버텨야 했지만, 통증을 참으며 스스로 재활 운동을 해야 하는 것도 엄살 한번 부리는 법 없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을 들였고 더 큰 각도로 올리려 악착 같이 노력해서 그것 역시 무사히 잘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날이 가도 팔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만 넓어졌을 뿐 어깨에 있던 통증은 여전했고, 오히려 어깨 아래로 통증이 번지며 점점 견딜 수 없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수술한 팔에 내내 주사 치료와 재활 치료를 병행하며 노력했지만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진료를 보러 갔던 때에 의사가 내게 말했다.
통증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봐서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가 된 것 같습니다. 협진을 넣어 놨으니 다음 진료부턴 '마취 통증 의학과'에서 진료를 보시면 됩니다. 고생하셨는데 정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의사의 말은 내게 청천벽력 같았다.
난 CRPS(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이 어떤 병인지 알고 있었다.
수술이 끝나고 주사와 재활 치료를 병행하던 팔이 몇 달이 지나도록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무지막지하다 못해 무식하게 아파지는 통증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어깨부터 시작된 통증은 팔 전체로 번져 얼음이 박히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음처럼 차게 느껴지는 피부를 만져보면 오히려 피부 안쪽에서 펄펄 끓는 열이 느껴졌고, 함부로 만질 수도 없었던 팔을 보며 두려운 마음에 이것저것 검색 하던 중에 발견했던 병명이었다.
하지만 설마 내가 그 병일 거라고는 상상 조차 하지 못했었다.
내가 이미 앓고 있던 희귀 난치 질환인 베체트를 오랫동안 진료 봐주시던 교수님은 CRPS를 진단받았다는 얘기를 들으시곤 나를 위로해 주었다.
차라리 암이었다면 수술이라도 해보고 항암 치료라도 해볼 여지라도 있을 텐데... 이 병은 죽을 때까지, 통증을 느끼는 매 순간, 죽고 싶다 여길 만큼 많이 아픈 병이기 때문에 환자의 의지가 중요해요. 너무 안타깝지만 의료진들도 최선을 다할 테니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함께 견뎌 봅시다.
하지만 그땐 어떤 위로도 공감도 내게 힘이 되어 주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에서도 내 새로운 병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다시 한번 담임 목사님의 안수 기도를 받고, 중보기도 팀에선 내 병과 나를 기도 제목으로 올리고 밤낮으로 기도해 주셨다. 그리고 나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 집으로 자주 찾아와 주셔서 내게 말씀하셨다.
김 집사님은 하나님을 처음 믿으셨을 때부터 치유의 은혜를 많이 입으시고 기적 같은 경험을 많이 하셨잖아요. 지금 너무 힘드셔서 위로가 안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크게 들어 사용하시려고 이런 시련이 많으신 거예요. 반드시 나으실 거예요. 희망 버리지 마시고 기운 내세요.
하지만 그런 말들은 내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베체트가 심해지면서 Sunday Christian 노릇만 하던 난 CRPS를 진단받은 후엔 아예 교회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난 평생 몸에 가시를 지닌 채 선교를 했던 사도 바울도 아니었고 가진 것을 모두 잃었어도 하나님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욥도 아니었다. 부끄럽게도 CRPS가 생기기 전 8년을 교회에 다니면서 내가 했던 것은 믿음 생활이 아니라 그저 즐겁기만 한 교회 생활일 뿐이었나 보다.
게다가 처음 교회를 다닐 때 아프던 병이 안수 기도와 중보기도를 통해 치유되는 은혜를 경험했던 내게,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을 희귀한 병이 두 가지나 들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절망에 빠뜨리기 쉬웠다.
원인을 알 수도 없고 치료 방법도 없으며 후유증과 함께 동반되는 병들도 많아져 절망에 절망을 거듭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억울하고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몇 시간씩 무참한 돌발통에 시달리며 짐승처럼 울부짖고, CRPS 후유증으로 생긴 자율신경 실조증 증상으로 반복적으로 기절하면서 마약성 진통제에 취해 일상의 기억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발광하듯 쏟아냈다.
하나님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지금 내 곁에는 계시지 않아.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을 해서 이런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고통을 왜 내가 겪어야 하는데!
그래서 결심했다.
집 문 밖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우리 교회의 모습을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아니, 정확히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35년이 넘도록 살던 고향과도 같은 동네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만큼 하나님이 미웠다.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허락하신다는 그 하나님은 내 곁에 계시지 않다고 확신했다.
내게 온 시련이 나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