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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Aug 20. 2020

CRPS(복합부위 통증증후군) 치료기.

고주파 열 응고술.

이번 여름의 긴 장마의 시작 전에 '대상포진'을 앓게 되어 예정되어 있던 '고주파 열 응고술' 치료가 두 달이나 미뤄졌다.


CRPS(복합부위 통증증후군)의 치료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바람이나 옷깃이 스치기만 해도, 어느 땐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통증이 생기기도 하는 나는 운동치료는 배제하고 '신경 차단술''고주파 열 응고술'을 각 3개월, 6개월 단위로 시술받는다.


사실 통이 나타나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서 시술을 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크게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내게 거의 유일하다 볼 수 있는 치료를 멈출 수는 없는 상황 이기에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술하는 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어쩌다 몸이 너무 아파 일어나지 못해 병원을 가지 못하게 되는 날이 생기면 그나마 간신히 약으로 누르고 버티던 통증이 더욱 심해져 매일 셀 수도 없는 극심한 돌발통에 시달려야 하고, 다음 시술하는 날짜가 올 때까지 서서히 통증에 젖어들고 약물에 의존하여 엉망이 되어가는 몸과 마음을 하릴없이 지켜보며 속수무책으로 견뎌야 한다.


이번에도 미뤄진 날짜와 길었던 장마, 지독했던 합병증들의 공세로 지옥 같 한 달을 보냈다.

매일 마약 진통제를 입안에 쏟아붓고, 심해진 구토에 엉망이었던 위장이 더욱 나빠져 위경련을 달고 살며 아직 치료를 끝마치지 못해 세게 악 물지도 못하는 이를 악물고 입을 틀어막으며 신음하는 날들을 보냈다.


이날은 마취통증 학과 진료가 오전 일찍 잡혀 있어 혹시나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할까 하는 마음에 수면제를 먹지 않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병원을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교수님은


"오늘 고주파 다리 쪽 시술하셔야죠? 대상포진은 괜찮아지셨어요?

어쩌다  대상포진까지 하시느라고... 암튼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그리고, 팔은 좀 어떠세요?

팔은 신경차단술 하셔야 하는데 아직 기간이 안되셨는데. 통증이 심하세요?"

라고 세심하게 물어봐 주셨다.


"통증 빈도는 비슷 한데 날씨 때문인지 강도가 훨씬 심해서 좀 힘들었어요.

팔도 많이 아파서 오늘 신경차단술 안 되는 건 아니까  리도카인(마취제) 주사인가요? 통증 줄일 수 있는 주사 맞을 수 있을까 하고요.

약(마약 진통제)이 모자랄 지경이에요.

그런데 추가처방 안 되는 거 아니까 조절해서 먹는 중이에요.

이번 여름 정말 힘드네요..."

하소연처럼 적당히 징징거리며 필요한 걸 말씀드렸다.


내 아픔에 대해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아픈 환자에게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 또 그 상대가 나를 치료하는 의사라면 그에 대한 신뢰는 배가 된다.

하루 종일 통증에 예민한 환자들을 상대해야 하니 얼마나 힘까 하는 생각미안한 마음이 설핏 들기도 했다.


진료를 본 후 시술 실에 들어가 먼저 어깨 통증 관리를 위해 주사를 시술했다.

이 시술은 초음파 기계를 보면서 주삿바늘을 최대한 통점 가까운 신경 부위에 닿도록 넣어 약물을 주입하는 방법인데 보통 3대에서 6대 정도의 주사를 시술한다.


사실 팔의 '신경 차단술'도 이와 비슷해서 크게 힘들지 않고 시술을 할 수 있어 참을만하다.

아프고 무섭지만 CRPS 통증의 강도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만 있다면 이 정도 아픔과 무서움 정도는 껌이다. 매일도 맞을 수 있다.

음... 매일은 좀 무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맞을 수 있다. 자신한다.



진짜 무섭고 아프고 힘든 시술은 '고주파 열 응고술'이다.

이 시술은 엑스레이 기계를 보면서 하는데 "요추천자'를 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우선 정맥에 링거줄을 잡고 허리 척추 쪽의 피부와 피부 가까운 근육층을 마취하고 링거를 통해 안쪽 깊은 곳의 근육을 마취하여 고주파 열 에너지를 이용해 통증을 일으키는 감각신경만을 선택적으로 응고시키는 시술이다.

이건 마취를 다 한다 해도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시술 중에 생기는 통증을 참지 못해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는 일이 다 반사로 생길 정도로 아픈 시술이다.

그리고  환자가 움직이거나 시술 중에 실수가 발생하면 하반신 마비까지 생길 수 있는 어려운 시술이어서 숙련된 손길이 필요한 시술 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 경우엔 오른팔에 CRPS가 있어 오랫동안 왼쪽 팔에만 링거를 꽂아온 데다 혈관이 선천적으로 얇고 꼬불거리며 건드리기 만해도 숨어버려 숙련자가 아니면 주삿바늘을 꽂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입원 시에도 항상 여러 번 바늘에 찔렸어야 했고, 외래진료에서는 사실상 링거 바늘을 꽂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에 링거를 통한 2차 마취는 포기해야 했다.(이런 환자는 한 번도 없었다고 해요. 뭐든 평범하긴 글렀나 봐요ㅠㅠ)

그러니까 피부와  진피층 정도의 마취로만 시술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 이후로는 무조건 내 의지로 몸의 힘을 풀고 내 근육이 바늘을 밀어내지 않도록 애를 써야만 다.


이 시술이 얼마나 아픈지를 알기 때문에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당장 베드에서 일어나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된다는 것 또한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기에 짐짓 더 아무렇지 않은 척, 담대한 척하며 누워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이런 상황들이 기가 막히고 고단했다.


허리에 마취주사 몇 대가 놓이고, 잠시 후에 고주파 시술용 바늘이 깊숙이 들어가 제자리를 찾느라 바늘을 이리저리 돌리고 찔러가며 위치를 잡고... 그러는 사이에 시술 베드에 엎드려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누워 허리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애를 쓰느라 이마와 콧대에선 땀이 맺혀 침대 위로 르륵, 르륵 흘러내렸다.

5분쯤 흐른 후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잘 참고 계시네요. 힘드시죠. 얼른 끝냅시다. 지금 열 들어갈 건데 너무 힘들면 참지 말고 얘기하세요. 시작합니다"


'딸깍' 버튼을 누르는 소리와 함께 바늘 끝에서 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악'하고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비명을 간신히 꿀꺽 삼켰다.


뱃속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내장이 온통 녹아내린다.

다리에도 불이 옮겨 붙었다.

다리가 녹아 없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허리와 다리에 힘을 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는 것이 비참한 것인지, 이렇게라도 살 수 있어서 감사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두 번의 열 응고술 후 교수님과 보조하던 레지던트, 인턴 선생님들의 찬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의 격려와 칭찬(?)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와 죽도록 앓고 있는 중이다.

시술 자체가 너무 힘들고 고단해 일주일 정도는 심한 중병을 앓는 환자처럼 지내게 된다.(뭐 이미 심한 환자지만 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실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은 자유니 까요!!)


앞으로도 수없이 받아야 할 치료이고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방법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하는 것이 그래도 낫다.

그리고 언젠가는 조금 더 친절한 치료법이 나오리라 기대한다.

죽을 때까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고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치료 자체도 고통스럽다는 게 정말 많이 가슴 아픈 일이다.


또한 단순히 통증을 저감 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이 병 자체를 치료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더 이상 안락사를 고민하고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끔찍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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