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제 엄마의 나이가 되고 보니 말이야(2021.12)
이사 온 지 벌써 한 달하고도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한 번 무너진 몸은 좀처럼 제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한다.
약을 먹지 않으면 단 한숨도 잘 수 없고, 약을 먹어도 새벽이 밝아올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든다. 그렇게 버티다 결국 추가 처방을 받아 약을 더 복용하게 되었지만, 사정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약을 먹지 않아 잠을 이루지 못하면 다음 날이 엉망이 되고, 추가로 처방된 약을 먹으면 과한 졸음과 늘어짐으로 하루가 무너진다. 결과는 결국 비슷하다. 남는 것은 그저 참담한 기분뿐이다.
오늘도 전날 밤에 먹은 추가 처방된 약 때문에 하루 종일 침대에서 화장실도 한 번 가지 못한 채 눈도 뜨지 못하고 아픈 몸을 돌려 가며 끙끙 앓아누워 있었다. 죽었다 깨도 일어나지 못할 것만 같던 몸뚱이는, 하루에 한 끼라도 어떻게든 먹여보려는 딸의 노력에 홀린 듯 눈이 떠졌다.
엄마, 정신 좀 차려봐. 배 고프지 않아? 벌써 오후 4시가 넘었어요! 뭐라도 먹어야 살지! 엄마 엄청 끙끙거려요. 많이 아파서 그러잖아? 밥을 먹어야 약을 먹지. 정신 좀 차려봐요!!
갈근탕을 데워 들고 와 침대 옆에 다가앉아서 정신없는 나를 추슬러 깨워주고 일으켜 준다.
이제껏 숨죽이고 있던 강아지들도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핥고 뽀뽀하고 난리를 치기 시작한다.
퉁퉁 부은 몸으로 일어나 식탁 앞에 가 앉아 그제야 딸에게 안부를 물었다.
미안해. 엄마 어제 수면제 먹었는데도 잠이 안 와서 새벽에 잠들었어... 뭐 좀 먹었어?
딸도 내가 일어나기 전까지 자신이 할 일과 여러 가지 챙기고 돌봐야 하는 일들로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엄마 일어나면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지. 그래도 커피도 마시고 요구르트 하고 그래놀라 먹었어. 내 걱정은 하지 마. 배 고프면 뭐든지 먹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자면서도 내내 아파서 끙끙거리고, 잘 먹지도 않는 엄마가 걱정이지!!
성인이 된 딸이지만 아직은 내 손길이 한참 필요한 딸에게 언제나 마음의 짐을 한가득 지운다.
그런 딸이 저녁 식사 시간에 문득 내게 한 가지 이야기를 건넸다.
엄마, 내가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그 이쁜 머리로 또 뭐를 생각했는데...?
엄마가, 아빠하고 결혼하고 나를 낳고, 그 어려운 일을 겪고 혼자서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힘들었는데도... 누구도 엄마를 도와줄 수 없었는데도.... 엄마는 정말 용감하게 날 지키고, 내게 부족함 없는 사랑을 주고, 내가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엄마라는 확신을 주면서 나를 키우고 엄마 스스로를 지키면서 정말 잘 살았어. 정말 대단해. 나라면.... 내가 지금 그 나이쯤 돼보니까 엄마가 얼마나 막막하고 힘들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어. 나라면 그렇게 못했을 것 같아. 엄마 정말 고생했어. 정말 고마워. 엄마가 내 엄마라서 정말 좋아.
목이 메어 입 안의 밥을 한참 씹어야 했지만 다른 때는 몰라도 오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