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의 궁합 (2021,12)
어느새 이사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아직 확신하기엔 이르지만, 이 집과는 합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좋은 예감이 든다.
여태껏 살아온 어떤 집보다도 조용하다.
난치를 선고받은 뒤, 내 두통은 세상의 모든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완전한 고요 속에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일정 부분 스스로 타협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끼야아악’ 하는, 마치 익룡이 포효하는 듯한 웃음소리는 여전히 견디기 어렵다.
데시벨의 문제는 아니다. 그건 아이들만이 낼 수 있는 순수한 에너지의 폭발이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웃음이 비명으로 변하는 순간마다, 내 머릿속 깊은 곳에서는 고약한 일이 벌어진다.
그 소리는 뇌를 부풀게 만들고, 두개골의 틈과 안구 사이로 순두부처럼 연약한 뇌가 뭉글뭉글 새어 나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심한 두통과 겹쳐진 고통은 사람을 서서히 피폐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그 모든 소음이 만들어내던 근심과 분노가 자취를 감췄다. 하루 종일 들리는 소리라 해봐야 낮고 조심스러운 딸의 목소리, 아픈 엄마 곁에서 발소리를 죽이고 다니는 강아지들의 톡톡 거리는 발걸음 소리뿐이다.
두통이 가라앉는, 기적 같은 찰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록 몇 페이지에 불과하겠지만, 책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언제나 나를 위로해 주던 책 읽기가 조심스레 내 곁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 집은 하루 종일 빛으로 가득하다.
복도 끝에 있는 남편의 방을 시작으로 딸의 공부방, 그리고 딸의 침실을 지나 거실과 안방까지, 햇살이 천천히 옮겨 다니며 집 안을 채운다.
어두운 순간도, 어두운 구석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햇살 아래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환해진다.
언제나 광합성이 부족해 볕이 드는 시간에 베란다 쪽에 누워 있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더할 수없이 행복한 순간들을 즐기고 있다. 곁에는 10살이 되도록 큰 병 없이 무사히 견뎌준 사랑하는 강아지 아들 콩이가 언제나 함께 하고 있다.
옛 동네에서 쓰던 작은 TV와 김치 냉장고를 13년 만에 바꾸었다.
오래 쓰던 물건을 보내고 새 살림을 맞이하니, 마치 새로운 계절이 시작된 것처럼 마음이 산뜻해진다.
아직도 어린 시절의 흔적이 남아 핑크색을 좋아하는 딸의 방에는 분홍색 헤드가 달린 침대를 들였다. 생각보다 너무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 더 일찍 바꿔 주지 못한 게 미안해졌다. 아마 결혼하기 전까지는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부디, 그날이 조금이라도 빨리 오길 바란다.
딸이 하루빨리 결혼해 지긋지긋한 엄마 간병의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꼭 결혼이 아니어도 좋다. 그런 이유로라도 독립을 꿈꿀 수 있다면, 아픈 엄마로서는 그저 다행일 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주 많이 아프고 때로는 죽음에 이를 만큼 고통스러운 엄마를 두고 완전히 독립한다는 건 우리 딸에게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마음일 것이다.
무엇보다, 딸에게 매달린 족쇄가 되고 싶지 않다.
딸이 날으려 할 때 날갯짓을 받쳐줄 높새바람이 되려 한다.
내 팔자 닮지 말고 세상 다정하고 사랑 많은 사람 만나 서로 아끼고 보듬으며 잘살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우리 집의 가장 좋은 점이 한 가지 더 남아 있다.
이 집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거실 창 너머로 하루를 갈무리하는 이 석양(夕陽)의 아름다움이 매일 선물처럼 내게 주어진다.
그것도 완전히 공짜로!
저녁나절에 노을 진 이 풍경을 마주할 때나마 그 모든 시름들을 완전히 내려놓는다. 내가 편히 숨을 쉴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시간 중에 하나이다. 매일 같은 노을이지만 매일 다르다.
석양의 순간은 찰나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아쉽다.
힘들고 아쉬움 많았던 내 인생의 모든 순간도 지나고 보면 찰나가 모여 아름다울 것을 믿는다.
나의 모든 찰나가 영원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저무는 석양을 마음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