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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May 25. 2021

남을 용서하기 위해 내게 용서를 구했다.

나를 먼저 사랑하는 마음.

 *용서(容恕)-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


지난했던 내 투병기간 동안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가족들이 내게 했던 무참했던 행동들부터 단 한순간도 자유롭지 못했었다는 사실이었다. 

또 그 일로 인해 오히려 가지고 있던 병이 화되어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몇 년 간의 지옥 같던 시간들을 디다 결국엔 나 스스로 내 목숨을 끊는 경에 까지 이르게 됐었다.


여러 가지 몸과 마음의 병을 겪으며 어지간한 통증에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몸소 겪어보기 전엔 사람으로선 미처 가늠할 수 조차 없던 고통과 직면했을 때엔 스스로 독하고 단단하다 여기던 나 자신도 의 희망을 놓아 버릴 밖에 없었다.




부모님께 더할 수 없는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 자부했었고 또 실제로 겉으로 보기엔 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게 반듯하고 심지 곧은 사람으로 자랐다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 피치 못할 이유로 아버지와 같은 직장에 몸담게 되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아버지의 이름이 따라오게 됐다. 그건 생각보다 큰 부담이 되어 내게 주어진 일에 악착같이 애쓰는 것 말고 진심으로 이 일을 원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더불어 내게 아버지라는 프레임을 걷어 냈을 때도 다른 사람들이  역량에 대해 같은 생각과 족도로 나 평가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을 하기도 다. 

'세상에 나 홀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했을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첫 번째 혼자 한 선택이었던 결혼이 망처 져 버리면서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됐다.


아버진 사랑이 넘치셨지만 그에 못지않게 화(火)도 많으신 분이었다. 엄마는 부잣집의 맏이로 자라면서 고생 없이 사시던, 자기애가 많은 분 이셨다. 가난한 아버지를 만나 우리 세 남매를 기르고 아버지의 화를 참고 맞춰가며 내조를 해 아버지 성공을 도운 내조의 여왕이었다. 부모님 또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셨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우린 사랑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시는 부모님 에게서 조금씩 상처받으며 자라야 했다.

겉으로 보기엔 다들 번듯하게 잘 자란 듯 보였지만 조금씩은 고장 난 말하자면 불량품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마음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채 커버린 몸과 그런 나를 보호하려 가시 돋친 자존심을 바싹 내세운 아이 같은 어른로 자라게 돼 버린 것이 생각다.




일련의 일들을 겪은 후, 중환자 실에서 눈을 서는 요 근래 두서너 달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내 기억 속에 명징(明澄)하게 떠오르는 확실하게 연결된 사건이나 장면들이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 7년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대부분의 사건들은 연속된 사진 몇 장을 본 것 같은  토막 난 기억들이 많았고 딸아이의 이야기와 연속된 이미지들을 연결해 내가 기억하고 있다고 믿게 만든 게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글을 쓰게 되면서 발견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내가 전해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일들을 마치 제삼자가 되어 바라보듯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었다.

너무 심한 통증과 독한 약들의 부작용으로 기억에 오류가 생기기도 했지만 내게 일어난 충격적인 일들을 몸이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스스로 기억을 지워버린 경우도 숱하게 많았다.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건 슬프고 가슴 아픈 경험이 맞다는 걸 겪어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내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선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존재들을 잊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한 번 그렇게 마음을 먹자  내가 아무리 되새기고 미워하며 이를 갈아 붙인다 한들 그들이 알리도 없거니와 혹여 안다고 해도 이제 나와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라는 생각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용서하기 위해선 바쁘고 까탈스러우셨던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나 자신을 억누르고 부모님의 입안의 혀처럼 살려고 노력하던 딸이었던 나에게, 의지박약에 약속도 한번 제대로 못 지키던 오빠 오빠라서 양보하고 배려하느라 마음 쓰던 동생이었던 나에게, 자기애가 강하고 이기적 막내지만 동생이라고 모든 걸 감싸주고 아껴주던 니였던 나에게, 든 얘기를 자신이 듣고 싶은 대로 듣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남편도 가정의 평화와 유지를 위해 참고 살아주던 아내였던 나에게,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최선이 되고 최고이고 었던 너무도 모자라고 한심하고 어리석었던 그동안의 모든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싶었다.



말로는 항상 '네가 좋으면 나는 괜찮아'라고 지만 마음 망가져 가고 지치고 고단했었다.


그동안 다그쳐서 미안했다고...

상처받는 줄 몰라서 미안했다고... 외로웠는지 몰라서 미안했어.

울고 싶었을 텐데 몰라서 미안해. 사랑받고  몰랐어 미안해. 혼자 죽게  그냥 둬서 정말 미안해.

외로웠겠나.

정말 쓸쓸하고 서글펐겠구나.

슴이 찢어지도록 아팠겠구나.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를 용서해 줄 수 있겠니?"


나는 내게 먼저 용서를 구해야 했다.

그리고 나를 안아주고 등 두드려주고 위로해 주기 위해 많은 시간을 두고 노력을 해야 했다. 그 후에야 비로소 다른 이들을 용서할 수 있는 용기가 내게 생겼다.

내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사과를 한 후, 그제야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기기 시작했다.

삭막하고 상처 많은 내 마음속에서도.


내가 나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른 이를 용서했다고 해서 마음속에 생긴 상처가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해했다는 것도 아니다.

내 속에 생긴 깊은 상처들은 오랜 시간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들을 통해 어느 날엔가는 치유되기도 할 것이며 또 어떤 것들은 깊은 상흔을 남기기도 할 것이다.

다만 이제 내가 확신 있게 할 수 있는 말 한 가지는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내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다.

그거라면. 그것이라면 내가 내게 용서를 구하고 그들을 용서한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영원부터 날 지키시는 그 분과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긍휼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그분들이 내게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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