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옛날에 남미를 가려고 칠레 출신 선생님한테 스페인어를 6개월간 배운 적이 있다. 너무 오래 전이긴 한데 덕분에 스페인어 하는 사람들이 말을 시키면 아주 재빠르게,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처럼 "hablo español un poco(아블로 에스빠뇰 운 뽀꼬)"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별 대단한 말은 아니고 스페인어를 쬐끔 한다는 의미인데 ‘쬐끔’에는 포괄적 해석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되는 바이다. (뭐래) 스페인어처럼 돈을 벌 정도는 아니고 돈을 쓸 정도로 구사하는 외국어가 몇 개 되는데 핵심은 그건 아니고.
그당시 남미에 한국인이 비자없이 갈 수 있는 나라가 2개 국가 뿐이었다. 일본은 반대로 2개 국가 빼고는 무비자 국가라 엄청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10년 이상 해외에 체류하면서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력이 신장되고 있음을 가장 많이 체감했던게 바로 ‘패스포트 파워’였다. 트랜짓할 때 여권이랑 비자를 꼼꼼하게 검사하던 국가들이 언제부터인가 한국국적의 여행객들은 그런 게 필요없다고 안내를 했고 비자없이 갈 수 있는 나라 숫자들은 점점 늘어났다. 한국 여권이 전세계 파워풀 패스포트 2등까지 갔을 때 솔직히 국뽕이 차오르는 걸 감출 수가 없었다. 요즘 코로나로 방문금지 국가가 많아지면서 6위까지 떨어졌는데 한국국적 여행객의 방문을 금지한 나라에는 인도도 있고, 일본도 있어 그렇게 중요한 변화라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 엄청 바쁠 때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상 수상 소식이 발표되어 좀 늦게 외신이며 관련 뉴스를 챙겨봤다. 70대 대배우의 프로로서의 자신감과 여유에서 나온 수상소감에 문득 파워풀 패스포트 리스트에서 대한민국을 발견했을 때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챔피언 스피치도 좋았지만 약간 상기된 표정의 얼굴에 마치 인생의 이력서 같이 도드라진 주름이 나를 감동의 바다에 빠뜨렸다. 차오르는 국뽕과 감동이 섞여 ‘쬐끔’ 울고 말았는데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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