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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을 들을 때 내 마음은

by 윤오순

2015년 네팔에서 두번째 강진이 있던 날 자주 가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지축이 크게 흔들리면서 굉음과 함께 각종 그릇 부서지는 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졌고 식당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식사를 하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듯 작은 출입구로 한꺼번에 몰려갔다. 상식이 통하는 곳이었다면 다들 머리를 감싸고 식탁 아래로 몸을 피했어야 했지만 상식을 논하기에는 너무 짧은 순간이었다. 출입구에는 3층에 해당하는 계단이 기다리고 있어 다들 식당을 바로 탈출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간 후 자전거 헬멧을 주섬주섬 챙겨쓰고 밖으로 나갔는데 밖은 한마디로 그냥 ‘헬’이었다. 전봇대가 곧 쓰러질 수도 있는데 사람들은 그 주변에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피(하는 척) 하고 있었다. 어디에도 대피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일단 일하던 곳으로 달려가 직원들한테 근처 5성급 호텔 잔디밭에 모이라고 한 후 센터 문을 잠그고 나도 그쪽으로 이동했다. 1차 지진을 겪은 경험에 따르면 주변에 쓰러질 것들이 없는 넓은 광장 같은 데가 차라리 안전하다고 느껴 내린 결정이었다. 호텔 잔디밭에서 초조하게 나를 기다리던 직원들에게 괜찮다고, 곧 괜찮아질 거라고 이야기하며 음료수를 한 병씩(그것말고는 주문이 되는 게 없었다.) 돌렸다. 내가 그순간 해야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렸는데 당장은 그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인터넷도 안되고 전화도 안되고 바깥으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땅의 큰 움직임이 잦아들자 호텔 잔디밭에 모인 사람들이 어딘가로 하나씩 사라졌고, 나도 직원들에게 남고 싶은 사람은 남고 집으로 돌아갈 사람들은 돌아가라고 했다. 연락이 있을 때까지 출근은 하지말라고 했다.


1차 강진 후에 제대로 손을 못보고 있던 집이 2차 지진이 난 날 아무 일이 없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니 문득 돌아갈 곳이 없었다. 갑자기 점심 먹던 식당 근처의 프랑스 식당이 생각났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거리를 한참을 지나 프랑스 식당에 도착했다. 나같은 생각을 한 외국인들이 거기에 많았다. 넓은 잔디밭에 놓인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해가 서서히 지는 중이었고 마당 한쪽에는 장작이 활활 타고 있었다. 긴 머리를 묶은 현지인이 류이치 사카모토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있었다. 한 곡이 끝나고 다른 곡이 시작되었는데 또 류이치 사카모토 곡이었다. 난 아직 자리를 찾지 못했다. 정말 오늘 지진이 있었나 싶게 식당 안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여러 사람이 같이 앉는 테이블만 비어 있어 결국 거기 앉아 이것저것 주문을 많이 했다. 갑자기 배가 너무 고팠다. 오래오래 앉아있을 요량으로 와인도 병으로 시키고 디저트까지 시켰다. 현지인 피아니스트는 그날 밤새 작정한 듯이 류이치 사카모토 곡만 연주했다. 그래도 그날 귀에 익숙한 그 음악들이 있어 덜 무서웠던 것 같기도 하다.


좀전에 스피커에서 연속으로 두 곡의 류이치 사카모토 곡이 흘러 나왔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공간인데 내 마음은 폐허가 된 네팔의 어느 거리를 걸으면서 그 음악을 듣고 있었다. 이런 것도 트라우마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옛날옛날에 #네팔 #지진 #류이치사카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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