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새 운동화를 신고 거하게 외출을 해봤다. 마스크를 아예 하지 않은 사람들, 마스크를 했는데 턱에 걸친 사람들, 코를 내놓고 입만 막은 마스크 착용자들이 다수로 지금 역병이 창궐하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내겐 놀라운 바깥 풍경이었다. 카페나 식당에 옹기종기 앉아 화기애애한 그 사람들은 대개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난 귀국 후 심장이 쪼그라들어 마스크를 비롯해 완전무장을 하지 않으면 밖에 못 나가는 쫄보가 되어버렸는데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인드도 힘들고, 면역력이 높아서.... 따위의 강심장도 내 이야기는 아니고, 복불복에 나를 맡기고 싶지도 않다.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를 하니 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하라고 하는 모임도 불편하고, 마스크를 다 벗고 좁은 테이블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고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은 더 고역이다. 몇 개월 만에 만난 반가운 사람과 신체적 접촉의 반가운 인사도 없이, 마스크를 벗지 않은 상태로, 창가 쪽에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앉아, 거리를 함께 보며 샌드위치를 나눠먹는 일이 몹시 극성스럽게 비칠지 모르지만 코로나 19 시절, 오히려 이런 모습이 나한테는 자연스러우면서도 나름 힘겨운 노력의, 뉴노멀의 산물이기도 하다.
무증상 감염자가 워낙 많아 밀집, 밀폐된 곳에서 전파가 일어나면 확진자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인데 수개월간의 방역 캠페인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긴장의 끈을 놓게 만든 것 같다. 지난 1월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몇 개월만 버티면 잠잠할 거라며 희망을 부여잡고 열정을 갈아 넣던 의료진들 볼 낯이 없다.
어쨌거나 꽃놀이, 물놀이도 미뤘으니 이젠 단풍놀이를 미룰 차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맛있는 커피/카페 투어도 죄다 미루는 중이고 아무튼 다음으로 미룰 수 있는 건 다 미뤄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뭔가 대대적으로 미루는 기념으로 읽다가 미뤄둔 <미루기의 천재들>을 마저 읽어보려 한다. 이 책의 미덕이라면 읽다가 미뤄도 죄책감 같은 게 생기지 않고 역사 속에서 뭔가 중요한 일을 미루며 살던 사람들을 만나 공범의식 같은 걸 느끼며 지금 당장 혹은 오늘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을 다음으로, 게다가 떳떳하게 미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