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막뚱이 Mar 19. 2023

오늘조손-북적북적 제사

8남매 맏아들 네 제사 풍경


우리 할아버지는 8남매시다. 할아버지는 그중에 둘째, 아들 중엔 첫째,  장남이다. 할머니는 장손에게는 시집가지  것을 이따금씩 말씀하시 했는데, 당신이 바로  맏며느리이기 때문이다. 맏며느리로서 나에게는 고조할아버지, 고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여러 차례 제사를 지내야 했다. 집안일의 의무에서 면제받은 어린 시절에는 제삿날을 좋아했다. 제사면 평소에   사 먹는 내가 좋아하는 바나나를 먹을  있고, 약과를 먹을  있고, 무엇보다 적막하던 집이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되며, 북적거림의 피곤함과,  이후 성인이 되면서 집안일의 나의 일이 되면서 제사의 노동을 알게 되었지만.


어렸을 때 제삿날은 나에게는 신나는 날(?)이었다. 등굣길 발걸음이 가벼울 정도였다. 할아버지의 형제자매분들 중 인근 지역에서 오신 분들도 온 집안이 북적거리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나를 들뜨게 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 제사에는 마당에 아상(=평상)을 펴놓고, 준비를 했던 기억이 난다. 수줍음 많은 어린이였지만, 사람이 가득한 집은 무섭던 밤도 더 이상 무섭지 않게 용기를 주었고, (할머니의 표현을 따르자면) 한 뼐다구 식구들, 한 일가가 모여 있는 게 그렇게 든든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얼굴조차 모르지만, 분명 나를 예뻐해 주실(?) 조상님들까지 오신다니, 천군만마의 상황이 아닐까.


청소년기를 지나며, 어색한 시간이 되었던 멀리 떨어져 살며, 제사는 가끔 통화 건너편으로 알게 되는 집안 행사가 되었고, 다시 집에 돌아올 때는 코로나가 한창이라 다른 집들처럼 조촐해졌다. 그 사이 제사를 합쳐 모시는 게 하나의 유행이라 네 분의 제사는 고조할아버지의 제사로 통일되어 있었다.


그리고 최근, 코로나 이후 몇 년 만에 몇 분의 어른들이 오셨다. 어느 순간 확진자를 세지 않게 되거나 하는 순간들, 코로나가 그래도 어느 정도는 과거의 일이 되었구나 감개무량한 순간들이 있는데, 이번 제사도 그런 것. 다들 마스크 쓰지 않고, 정말 오랜만에 조상을 모시러 모인 것이다.


오랜만에 뵌 친척분들은 그래도 한 식구라 그런지 칭찬 폭격이셨고, 물론 그 칭찬 폭격은 ‘우리 집안사람들이 피부가 좋다’ 이런 친정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 거였지만. 오랜만에 어른들과의 조우가 부담스러워 출근길부터 부담으로 발걸음이 느려졌었던 내게 이번 제사는 어렸을 때의 북적거림이 떠오르는, 뭔가 이런 것도 삶의 한 장면이었지 하며 내심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하루종일 고된 일에 시달리다 온 나는 어른들보다 먼저 병든 닭처럼 곯아떨어졌지만.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 어른들을 이제 앞으로 만날 일이 몇 번이나 될까 하는 조금 슬픈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나의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는 것처럼 어른들의 시간도 마찬가지니까.


어른들은 종종 이렇게 말하신다. 이제 명절도 우리 대까지가 마지막이라고. 이미 뿔뿔이 흩어졌다는 친구들 이야기도 들린다. 6.25 전쟁을 거치셨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시대가 지나면, 이제 이런 모습도 거의 사라지겠구나.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실감하게 된다. 나중에는 이런 북적거림이 그리워질 순간이 오겠지. 지금 명절이 옛 명절과 다르듯이. 나의 유년의 추억과 함께 저물어가는  같아 조금은 아쉽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갈 것이라고 바라본다. 




#에필로그

할머니들의 대화를 듣는 것은 재밌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온 사이는 어떤 걸까요. 시누와 올케 사이, 올케와 동서 사이. 여러 가족들 간에 얽힌 사연들. 분명 순탄치만은 않은 우여곡절이었겠지만, 모든 것은 시간이 흘려보낸 것 같아요. 옛날이야기도 흥미진진했지만, 친척 할머니의 말씀에 따라 지금의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가 중요한 것.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할머니는 잃어버린 눈썹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동서의 눈썹을 보고, 눈썹 그리개(=아이브로우)에 관심을 갖게 되신 것. 할머니는 역시 귀여워요.











이전 04화 오늘조손-마음이 만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