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세는 이마띠?
할머니는 무언가를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할)매의 눈으로 여기저기 살펴보고, 우리가 무심코 했던 말이나 행동도 잘 캐치하신다.
새벽이 되어 한밤의 더위가 좀 가시고 나면, 에어컨이 꺼진다. 그리고 날이 다시 밝아 더위 게이지가 서서히 차오를 무렵 선풍기 버튼을 달칵하고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요즘 여름 일상이다.
어느 날은, 선풍기 바람에 나부끼는 내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지럽혀 잠결에 손을 휘적휘적 휘저었다.
나와 나와의 싸움을 지켜보며, 내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특유의 소 같은 걸음으로(tmi 할머니는 참고로 소띠) 퉁퉁 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뭔가 뒤적뒤적 뽀시락 뽀시락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나갔을 때와 동일한 진동을 울리며 퉁퉁 할머니가 돌아왔다. 그리고 내 이마에 느껴지는 딱딱하고, 익숙한 감촉. 눈을 감은 채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나는 굳이 눈을 뜨지 않아도, 날리는 머리에 불편해하는 나를 발견하고 할머니가 이곳저곳 뒤적거려 찾아낸 머리띠를 내 머리에 씌워주려고 이리저리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안경도 그렇고 머리띠도 그렇고 타인이 해주기 어려운 두 가지 아니던가. 괜히 할머니의 열심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뭔가 챙김을 받는 기분을 간직하고 싶어서 잠은 대충 깼으면서 계속 자는 척을 했다. 가끔은 그렇게 이미 잠에 깼으면서 계속 자는 척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얼마 후 눈을 뜨고, 거울을 본 나는 빵 터질 수밖에 없었다. 머리띠가 머리가 아닌 이마에 걸쳐져 있었기 때문. 이리저리 궁리하다 일단 임시방편으로 머리를 고정하자고 이마에 머리띠를 올려둔 것이었다. 할머니 나름의 고민과 해답은 늘 큰 웃음을 준다.
닭에게 할머니가 오늘 아침에 이랬다 하는 썰을 풀면서, 이마띠(?)가 되어버린 머리띠와 함께한 셀카를 닭에게 증거로 보여주자 동시에 빵 터졌고, 옆에서 은근슬쩍 본인이 등장하는 우리의 대화에 안 듣는 척, 귀를 기울이시던 할머니도 우리를 따라 멋쩍게 웃는다. 닭에 따르면 '세상에서 본인이 제일 웃긴 할머니'다. 할머니의 웃음 끝엔 내가 또 한 건 했다는 뿌듯함이 서려있다.
우리 할머니는 참 재밌는 할머니다. 보통 할머니가 아니다. 부모님들이 자식의 웃긴 에피소드를 공유하듯이, 나와 닭만 알고 있기 아까운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싶어 이 글들을 쓰게 된 것도 있다. 좋고, 재밌는 경험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랄까. 직접 봐야 하는데 글로만 전할 수 있어 아쉬울 따름이다. 어쩌면 우리에게만 웃긴 일들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할머니는 엉뚱하기도 하고, 한참 귀여울 나이 80대다. 그리고 할머니의 고민 속에는 항상 우리를 향한 애정과 사랑이 담겨있다.
에필로그
연재의 방향을 고민하다가, 과거의 이야기는 <우여곡절>와 현재의 일상은 <오늘조손>으로 교차하면서 보여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이 오늘조손의 첫 시작입니다. 오늘조손 첫 글을 쓰며 한편으론, 오늘조손 시리즈를 쓸 수 있음에, 매일 새로운 소재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영어로 따지면, ed뿐만 아니라 ing, 즉 과거형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입니다. 할머니와 살다 보면 마음이 급해지는 순간이 듭니다. 너무나 평범해서 그래서 더 소중한 일상들입니다. 이 순간들의 소중함을 잊지 않도록 잘 모으고 다듬어 공유하고 싶습니다. 할머니는 귀여운 면모가 많습니다. 자식 자랑하듯, 할머니 귀여운 순간들 자랑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귀여운 건 나눌수록 좋고, 최근에 책에서 읽었는데 귀여운 건 머리에도 좋다고 합니다. 귀여운 거 많이 보시고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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