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밖에서 만나게 된다면?
가족을 밖에서 만나면 새로운 느낌이 든다. 나 같은 경우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막뚱이 모드로 변신하고자 하는 욕망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성인으로서의 자아와 막뚱이로서의 자아가 자주 충돌한다. 이러한 충돌 속에 자아분열을 겪다 보면 얼른 집으로 돌아가 마음껏 막뚱이 자아를 드러내고 싶어 진다. 지금은 이런 내적 갈등으로 곤욕을 치르는 것만 제외하면 할머니를 밖에서 만나게 되면 마냥 반갑다. 하지만, 어린 시절, 적어도 고등학생 때까지의 나는, 지금보다도 철이 들기 전의 나는 할머니와 밖에서 만날 땐 반가운 마음과 함께 (부끄럽게도) 창피한 마음이 함께 일곤 했었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선 그냥 할머니였지만, 학교에선 학부모이기도 했다. 한 사람이 학생이 되면, 그 보호자도 마찬가지로 자연스레 학부모가 되는데, 우리가 초등학생이 되자 할머니에게도 학부모로서의 임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그렇게 국민학생 학부모 역할을 마친 지 수십 년이 흐른 후, 다시 초등학생의 학부모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놀랍게도 우리 할머니는 농사를 짓느라 바쁘신 중에도 놓치지 않고, 운동회, 학예회 같은 행사에 학부모 자격으로 꼬박꼬박 오셨다. 그리고 유치원생일 때 할머니 보고 싶다며 볼풀장에서 엉엉 울던 어린이는, 유치원에 방문한 할머니를 보면 보자마자 따라간다고 냅다 드러누웠을 어린이는 할머니의 방문이 가끔은 창피해지는 그런 어린이가 되어버렸다.
할머니는 공식적인 학부모 방문 행사가 없는 날에도 학교에 오신 적이 몇 번 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던 할머니의 방문 두 번째 이야기다. 때는 초등학교 3학년, 할머니께서 준비물을 가져다주러 학교에 오신 적 있다. 수영장 체험 학습이 있었는데, 전날까지 수영복을 마련하지 못했었고, 전전긍긍하며 등교한 언니와 나를 위해 수영복을 사서 부랴부랴 당일날 학교로 가져다주러 오신 거였다. 우리 반 교실에서 한 아이가 할머니 오셨다 하는 말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끼며 쭈뼛쭈뼛 복도로 나갔다.
할머니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복도에 서 계셨고, 시장에서 사 온 게 분명해 보이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나는 긴장하며 열어보았다. 봉투 속에 나온 것은 뜻밖에 아주 예쁜 수영복이었다. 해바라기가 그려져 있는 하늘색 원피스 형 수영복에 치마가 딸려 있는, 지금 생각해도 예쁜 수영복이었다. 일부러 먼 길을 나와 꽤나 거금을 들여 수영복을 사 오신 것이다. 그런데, 어렸던 나는 감사함보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창피한 수영복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안도감. 몇몇 눈치가 빠른 여자 아이들은 내가 부모님이 안 계시는 걸 알았고, 호기심과 무시가 적당히 섞인 눈빛을 종종 보내곤 했기 때문이다. 눈에 틔지 않는 수영복에 안도감을 느끼며 봉지만 챙긴 채 할머니를 집으로 보낸 후, 할머니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한 것에 이내 죄책감이 들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나는 순간은 중학생. 내게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의 전환은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의 전환점보다 더 치열했다. 일단 교복을 입기 시작했고, 또래가 훨씬 많아진 중학생의 인간관계는 훨씬 피로했다. 특히 위태했던 1학년 때로는 돌려보내 준다고 해도, 거절하고 싶을 정도다. 달라진 공부량과 급변하는 교우 관계의 소용돌이에 집에서는 밥도 잘 먹지 않고, 일찍 잠들고 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먹는 걸로 풀렸지만, 심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먹을 거를 멀리하고, 잠으로 도피하게 했다.
할머니도 내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셨던 건지, 중학교 1학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 그냥 말 그대로 예고도 없이 수업시간 중에 학교로 찾아오셨다. 정말 이례적인 방문이었다. 아마,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셨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처럼 수영복을 가져다준다거나 하는 그런 대외적인 목적이 없는 방문. 그때 어떤 대화를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할머니 얼굴을 보자마자 울컥하고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삼키기 위해 굉장히 애를 썼다는 것만 기억난다.
이 두 방문은 내게 창피함, 반가움, 죄책감, 감사함 등 하나로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얽힌 채로 남아 있다. 반 친구들의 주목을 끌었던 할머니의 방문은 내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환경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도 했지만, 내게도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아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평소에 지지고 볶고 싸우기도 해도,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부모님이 계신 친구들이 부러운 것은, 다른 것보다는 이런 기쁨과 슬픔을 나눌 사람이 둘이라는 것, 아니 그 이상이라는 것, 그리고 적어도 나보단 아마 더 오랜 시간 동안 희로애락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슬픈 일에 같이 슬퍼해줄 사람은 꽤 많이 있어도, 기쁜 일에 진정으로 함께 기뻐해 줄 사람은 적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진정으로 한달음에 달려가서 자랑하고 함께 덩실덩실 진심으로 춤을 출 수 있는 사람, 나보다 더 기뻐할 사람, 그래서 좋은 일이 있으면 보름달처럼 마음에 떠오르고, 빨리 그 소식을 알리기 위해 마음이 근질근질한 사람. 보통은 자식들을 보며, 열심히 산다고 하지만, 지금 나는 할머니를 보며 열심히 살자고 다짐한다. 나에게 기쁜 일을 스스로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그 기쁨을 밖에서든 집에서든 전하기 위해서.
# 에필로그
오래 남는 기억은 마음속에 물음표를 많이 띄운 기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복잡 미묘해서 잘 정리가 되지 않은 마음들이죠. 이 두 방문이 제게는 그런 기억이었는데, 글을 쓰며 조금은 감정의 실마리를 풀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글쓰기는 누구보다 본인에게 좋은 행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