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보더라도, 굳이 전화를 한다는 것
매일 보더라도, 굳이 전화를 한다는 것
요즘 할머니와 닭 사이에 새로운 일과가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후의 전화. 언젠가부터 닭이 점심시간이나, 일하다 남는 짬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전화가 안 오면 할머니가 먼저 닭에게 전화를 하신다고 한다. 오늘은 왜 전화가 없냐고, 전화는 어느샌가 둘 사이의 일종의 약속이 된 것이다.
할머니는 요즘 더위를 피해 매일 회관에 출근 도장을 찍는데, (심지어 주말도), 오후에 전화를 걸면 할머니는 거의 회관에 계신다. 우리 할머니는 집 안에서와 밖에서의 모습이 판이한 할머니로, 밖에서는 엄금진(엄격 근엄 진지)이지만, 안에서는 다 함께 춤도 추고, 장난치는 우리 집만의 주책 파티에 열성적으로 참가하는 귀여운 할머니다. 회관에 계실 때 전화를 걸면 평소의 할머니와 달리 목소리고 낮고, 말도 짧게 하시기 때문에 시큰둥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처음엔 전화가 귀찮아서 그렇겠거니 짐작했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전화를 반가워하고, 기다리신다.
우리 집의 일과에 막뚱이가 빠질 수는 없는 법. "그럼 나도 매일 전화할까?" 했더니, 할머니께서 대답이 없으셨다. 할머니 언어에 따르면 이와 같은 무응답은 좋다는 뜻. 우리 할머니는 해석이 쉽지 않은 할머니라 무응답은 “기다(=그렇다)”로 알아서 해석해야 한다. 그리하여 최근에 나도 전화 걸기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사실, 다른 지역에서 근무할 때는 자주 전화를 걸었었다. 특히 점심시간에 할머니 뭐 드셨는지 여쭙고, 나는 뭐 먹었노라 말하고, 시시콜콜한 안부전화를 나누고, 힘들다고 찡찡대기도 하고. 하지만, 막상 집에 오고, 매일 할머니를 보게 되면서 전화가 새삼스럽게 느껴져서 굳이 걸진 않았었다. 닭과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할머니는 매일 보더라도 전화를 받는 걸 좋아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왜 매일 보는데, 전화를 좋아하지? 평소에는 전화비용 아깝다고 하는 할머닌데’, 살짝의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최근 최은영 작가의 <<애쓰지 않아도>>를 읽고 나서, 어렴풋이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쓰지 않아도>>는 올해 출간된 단편 소설집으로 그중 <손 편지>에는 화자의 할머니가 경로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세울 게 없는 할머니가 이미 형성된 그룹에 들어갈 수없었다는 것이다. 우리 마을에선 전혀 그런 일이 없지만, 할머니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자식 자랑이 시작되기 마련이고, ‘내세울 게’ 없었던 할머니도 한동안 우두커니 남의 자식 자랑만 주야장천 들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교 첫 여름 방학, 집에 내려가니 할머니께서 내가 좋은 대학에 합격해 할머니가 장에서 인기가 좋아져서 어깨가 으쓱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할머니는 채소를 길러다 장에 내다 파는 농사꾼이자 장사꾼이었는데, 가는 곳마다 '장한 할머니’, ‘대단한 할머니'라는 칭찬을 다른 할머니들께 실컷 들으셨던 것이다. 이제야 겨우, 자식 자랑에 낄 수 있었던 할머니가 짠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랬었다.
가끔은 까먹거나 바빠서 전화를 못 하겠지만, 닭이 오른 어깨, 내가 왼쪽 어깨 교대로 세워드려야겠다. 기 세우기 파트너인 셈이다. 우리에겐 '굳이'하는 사소한 행동이지만, 할머니께는 큰 기쁨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새로운 일과가 반갑다.
평생을 봤기에, 당연히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새롭게 깨닫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그런 걸 볼 때면 한 면만 보고 다른 사람을 단정 짓는 건 참 오만한 행동이겠구나 싶어, 가끔 제 스스로 그런 모습이 보일 때면 반성하려고 애씁니다. 우리가 있어서 요즘 행복하다는 할머니, 그런 헐머니를 보며 행복한 우리. 문득 시간이 흐른 후에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이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싶어, 오늘 하루도 충실히 해내고 싶습니다. 각자의 하루를 충실히 해내는 여러분들 함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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