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한 번째 월요일밤
아직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늦가을이나 초겨울쯤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떠나게 될 것 같다. 친구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거라 짐을 거의 없는 수준으로 줄여야 하는데, 이 집에서 십 년 넘게 살면서 늘어난 물건들이 너무 많다. 뭐든지 모자라는 걸 못 견뎌 넉넉하게 사는 걸 좋아해서 이 물건이 없을 경우 쓸 물건, 이 물건이 없을 경우 쓸 물건이 없을 경우 쓸 물건, 이런 식으로 중복되는 물건들이 꽤 된다.
처음 서울에 올라올 때 내 짐은 큰 손가방 2개였다. 그걸 들고 학교 선배들이 살던 집에 가서 신세를 졌고, 그다음도 음악 하는 선배 집에서 방 한 칸을 빌려 살았다. 꽤 오래 집이 없이 떠돌았고 처음 내가 나를 위해 구한 집이 지금 살고 있는 원룸이다. 이 작은 집에서 꽤 오래 살았고 동네에 정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되었다.
10년 넘게 하고 있는 기타 레슨으로 날 먹여 살릴 수 있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기간이 끝났음을 느낀다. 다들 사는 게 어렵고 제일 먼저 줄이게 되는 건 취미생활을 위한 비용일 것이다. 그동안 다른 기술을 배우거나 해서 준비를 하지 않은 내 잘못이 크겠지만, 난 너무 자주 많이 아팠고 다른 일을 배우려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월세가 오른 건 올해 초다. 그동안은 6만 원 낮은 금액으로 살고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은 사정을 봐줄 수 없다고 통보가 왔다. 그 오른 금액도 다른 집에 비하면 비싼 편이 아니라 어떻게든 버티고 싶었지만 레슨이 줄면서 뭐라도 줄이지 않으면 버틸 방법이 없었다. 집의 월세 말고도 작업실 월세도 내야 하니까 집이라도 줄이면 어떻게든 앞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꽤 오래 혼자 살았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다. 난 우울증이 있고, 우울증이 안 좋아지면 생활습관이 엉망이 되고 집도 엉망이 되어서 그걸 이해받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내가 알아서 노력해야만 한다. 다행히 예전보다는 우울증이 많이 나아져서 좀 더 힘내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남은 시간 동안 물건을 버리고, 당근마켓에 팔고, 친구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내 소유의 짐이 상경할 때의 짐만큼 줄어들면, 그때처럼 용감한 마음으로 새롭게 뭐든지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미리 슬퍼하고 체념하기보다는 또 다른 시작을 반갑게 맞이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