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주스를 좋아했다. 하루에 열 잔, 2 리터들이 한 통을 깨끗이 비울 정도였다. 나의 하루는 진한 원두커피 세 잔, 오렌지 주스 열 잔, 물 한두 잔으로 이루어진 액상 난국과도 같았다. 가족들은 이러한 나의 음료 습관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당 섭취가 지나치다거나, 카페인 과다라거나, 풍에 시달릴 수 있다며 보리차나 미지근한 물을 권하곤 했다.
가장 좋아한 것은 생 오렌지로부터 직접 짜낸 주스였다. 다만 매일 코끼리만큼 마셔대는 탓에 생과일주스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비싼 값을 감당하기도, 파는 곳을 찾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생 오렌지 주스와 가장 맛이 흡사한 음료들을 사다 놓고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한창 혈기왕성하던 시절이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극단성이 때때로 삶을 비집고 들어왔다. 오렌지를 박스 채 주문해 놓고 매일 저녁마다 몇 알씩 꺼내어 반으로 가른 다음 착즙기에 꾹꾹 눌러 즙을 짜냈다. 오렌지 껍질, 씨앗, 사방으로 튄 끈적한 과즙과 사투를 벌이고 나면 어느덧 지친 어깨 근육과 생 오렌지 주스 한 잔이 만들어졌다. 노고가 고스란히 담긴 그 한 잔을 들이키며 느끼는 성취감과 만족감은 가히 형언하기 힘든 환희에 가까웠다. 맛도 맛이었겠으나 아무렇게나 가판대에 널려 있던, 소위 오렌지 주스라 불리는 괴상한 음료들과 타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작디 작은 이상이지만 이를 스스로의 손으로 고스란히 담아냈음에 기뻤다.
첫 '한 잔'을 맛본 이래 나의 오렌지 주스 섭취량은 하루 열 잔에서 한 잔으로 급격하게 줄었다. 오렌지라는 단어가 라벨에 기입된 수상한 음료 열 잔 대신 의심할 여지없는 주스 한 잔이 매일 하루의 끝에 놓여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날도 잠시 시간을 들여 짜낸 그 한잔을 마시면 거짓말처럼 맑아졌다. 사정상 그 한 잔을 마실 수 없었던 날은 찜찜한 공허감 속에 잠들곤 했다. 급기야 누군가에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가장 좋아하는 건 맛있는 오렌지 주스, 가장 싫어하는 건 맛없는 오렌지 주스입니다."라고 답할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나의 인생은 오렌지 주스 그 자체였던 것이다.
지난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냉장고를 여니 주스병이 셋 놓여 있었다. 분홍빛 자몽 주스 두 병과 샛노란 오렌지 주스 한 병이었다. 작은 유리잔을 꺼내 오렌지 주스를 반쯤 따라 홀짝 마셔보았다. 생 오렌지를 짜낸, 물 한 방울 들어가지 않은 최고의 주스였지만 나는 절반도 채 비우지 못하고 잔을 내려놓았다. 배가 불러서도, 맛이 부족한 탓도 아니었다. 잔에 남은 오렌지 주스를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자니 그녀가 물었다.
"주스가 별로야? 당신이 오렌지 주스를 제일 좋아한다길래 냉큼 집어 온 건데...."
어쩐지 약간의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
"아냐, 그럴 리가. 기억하고 챙겨줘서 고마울 따름이지." 감싸 안은 그녀의 머리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유리잔에 남은 주스를 단숨에 비웠다. 분명 그 시절과 같은 맛이었지만 기억 속의 달콤함과는 달랐다.
'어째서?'
오렌지가 인생이었던 시절, 절친한 친구가 하나 더 있었다. 주홍빛 과일과 반대로 그는 주로 그림자 속에 머물렀다. 파이프, 때로는 궐련의 형태로 몸을 태우던 담배 연기였다. 역설적이지만 나는 담배도, 그 연기도 좋아하지 않는다. 단지 버티고 생존하기 위해 담배라는 나쁜 친구를 곁에 두었을 따름이다.
젊고 피가 뜨거운 만큼 사랑에 빠져 있었다.
사랑에 빠져 있는 만큼 괴로워했다.
괴로운 만큼 발버둥치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어떤 형태로든 떠나가고야 마는,
이른바 그런 시절이었다.
담뱃잎을 태우는 일에는 늘 짝이 필요했다. 커피와 연초는 혀 위에서 좋은 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잉여된 감정이나 고조된 열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흡연 행위와 커피에 담긴 카페인의 각성 효과는 그렇지 못했다. 알코올은 모든 신경을 무디게 하는 탓에 지나친 흡연을 부추겼다. 물은 이론적으로 좋은 짝이지만 기호품을 향유함에 있어 지나치게 효율성과 기능성을 추구하는 기분이 들어 선호하지 않았다. 연초 곁에는 차고 달콤한 청량감이 필요했다. 당시 우리 집 냉장고 문 너머엔 항상 짙은 노란색 정답이 놓여 있었다.
눈에 선한 정답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오렌지 주스에 풍덩 빠져 살기 시작한 계기였다.
꿈을 좇는 것보다 힘든 일이 있다면 단연 사랑을 좇는 일이라고 답할 것이다. 모든 걸 내어놓고 요령 없이 다가가는 것만이 내 사랑의 방식이었다. 갓 발사한 우주선처럼, 갑갑하고 무거운 허물을 하나하나 벗어던지며 더욱 맹렬히 가속하는 것이 내 사랑의 모습이었다. 비에 젖는 듯한 사랑과 바다에 잠기는 듯한 사랑 중 하나를 택하라면 비에 흠뻑 젖은 채 서서히 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덕분에 늘 지독하게 서투르고 끔찍하게 후회스러웠다. 내 사랑은 그랬다.
누군가를 끝없이 그리워하고 한없이 사랑함에도 오작교 삼을 날짐승은 날아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기적 따위를 꿈꾸지는 않았다. 내디딘 모든 발걸음과, 모두 밟으리라 다짐했던 흘러간 길들은 어느 하나 마음 향하는 곳에 닿지 않았다. 언젠가 뒤돌아보며 마주한 이러한 광경에 오히려 웃음이 터져 나오던 날을 기억한다.
결국 가리기로 했다. 애써 못 본 척할 것이 아니라 불과 연기를 피워서 눈앞을 전부 가리기로 결심했다. 그림자를 그리는 온전한 정신, 목소리를 떠올리는 명료한 기억, 그 모두를 자욱한 연기로 덮어버리고 싶었다.
꿈에 닿을 수 없어서, 그저 도망치고 싶었다.
담뱃잎을 태우기 시작한 계기였다.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모든 것이 두 손을 떠난 것만 같은 순간.
아파야 하는데 이상하게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
다음 일을 떠올리지 못하고 그저 멍해질 뿐인 순간.
닿으려 애를 써도 도저히 닿을 수 없었던 순간.
움켜쥐려 내밀어도 잡히지 않던 순간.
잊으려 노력할수록 진해져만 가던 순간.
웃고 떠드는 사이에 홀연히 사라져 간 웃음의 이유들.
상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어 어둠이 깊어질 때면 짙은 연기 속에서 연거푸 주스를 마셔댔다.
살기 위해. 그렇게라도 살아남기 위해.
"자기야."
"응?"
"혹시 내가 왜 오렌지 주스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아?"
"글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바로 당신 때문이야."
"나? 어째서?"
"항상 냉장고를 오렌지 주스로 채워놓은 건 당신이었으니까."
"그럼 내 덕분인 거지?"
"응. 당신 덕이야.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