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마음이 묵직할 때면 뒷산에 오르곤 한다. 문을 열고 나선 지 10분쯤 지나면 제아무리 추운 계절이어도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다. 20분쯤 오르면 작은 약수터에 당도하고, 30분쯤 오르면 좌우로 갈대밭이 펼쳐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쪽 길을 택하면 산 아래로 곧이어지는 비탈길로 접어들고, 왼쪽을 택하면 점차 능선에 가까워지는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처음으로 왼쪽 길을 택한 날이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뒷산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뛰어다니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것 같아서. 다만 왼편 길에 대한 어릴 적 기억에는 오늘날 보이는 묫자리가 없었다. 아마도 나의 어린 시절, 그리고 어른이란 영역으로 마뜩지 않게 들어와 버린 지금 이 시절의 중간 언저리에서 세상을 떠난 분의 자리인 듯하다.
홀로 산을 오르다 보면 약수터에서 멈추는 법이 없었다. 말벌 집을 맞닥뜨린 날이나 뇌우가 떨어질 수 있으니 감전에 조심하라던 일기예보가 있었던 날이 아니고서야. 항상 약수를 한 사발 들이키고 갈대밭까지 쉼 없이 올랐다. 작고 좁지만 사람의 왕래가 많은 산길이다 보니 봉분이나 묫자리, 혹은 비석이 그리 드문 광경은 아니었다. 주변에는 지역 명사였던 분들의 봉묘가 제법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갈대밭 왼편 길을 조금 오르다 보면 능선으로 이어지며 잠시간의 내리막이 등장하는데 바로 이 내리막길의 좌측 한편에 네모지고 편평한 돌로 만들어진 묫자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누군가의 안식처일 그곳이 계속 마음에 남은 이유는 그 자리의 주인이 아마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었다. 묫자리 앞에 놓인 돌 꽃병에는 늘 생화가 꽂혀 있었다. 매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흘에 한 차례는 누군가가 30분씩 산을 올라와 생화로 교체한다는 의미였다.
이따금 산에 오르던 내가 매일같이, 이틀에 한 번 꼴로 갈대밭 왼편 너머의 묫자리까지 오르기 시작한 것은 꽃병에 놓여 있던 생화가 연주황빛 라넌큘러스 다발이었던 어느 날부터였다. 피어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 내심 마음에 품고 있었다. 다만 그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기에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화려한 듯 빛은 단아한 그 꽃을 품고 산을 오르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긴 시간이 흘렀다. 떠나는 이, 새로이 당도하는 이들이 혼재하는 삶 속을 흘러왔다. 안녕!하고 인사하는 상대가 늘어난 반면 안녕,하고 작별한 사람도 있었다. 뒷산에 올라갈 수 없는 핑계는 늘어만 갔고 어느 새 약수터에는 최신식 수도꼭지가 달리기 시작했다.
성묘를 하는 날이었다. 이젠 세상을 내려다보고 계실 분께 앞으로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원하자는 제안을 했다. 잠시 묵념을 하던 그녀는 갑자기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왠지 들어주실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나는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물었다. "어째서?"
"바람이 뒷편에서 불어왔거든."
"그게 무슨 의미야?"
"순풍인 거야. Yes, 라는 의미의."
" 앞에서 불어왔다면 역풍이고?"
"더 노력하고 정진하라는 의미지."
묫자리 앞에 서 있을 때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아직 상실에 익숙해지지 못한, 남겨진 이들의 회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그녀의 상상에 깊은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 않음에 안도감을 느꼈다.
돌아온 것은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도착하기 직전 즈음,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오랜만에 뒷산에 다녀올까?"
"응."
"갑작스러워서 그 꽃이 없는데 괜찮겠어?"
"괜찮아. 준비해뒀으니."
그녀의 답에 놀란 나는 되물었다. "언제?"
"어제 성묘 준비하면서.
오늘은 왠지 그럴 것 같았어."
가끔씩 우리는 그렇게 뒷산에 오르곤 한다.
꽃다발을 한아름 품에 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