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Q] Saboteur 'Hyper-vigilant'
샤인 코치님이 리더를 맡아주신 덕분에, 다은 코치님께서 추천하셨던 Positive Intelligence(PQ)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적이 될 수 있는 나의 마음을 적이 아닌 친구로 만들기 위해 긍정지능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이다. 총 6주의 프로그램이 벌써 4주 차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첫 주에는 PQ의 개념을 이해하고, 2주 차와 3주 차에는 나의 사바투어를 인식하고 다루는 것을, 4주 차부터 6주 차까지는 내 안의 현자를 인식하고 기르는 것을 함께 수련한다. 오늘은 그중 프로그램의 초반에 다루었던 내 안의 방해꾼, 사바투어인 불안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브런치의 서랍을 살펴보다가 2017년에 알랭드보통의 <불안>을 읽고 쓰다만 아래의 글을 찾았다.
지난 7월, 난생처음 깁스라는 걸 하고는 침대에서 요양하며 '어느 별에서 왔니'라는 팟캐스트를 들었다. 지난 시즌부터 추천되었던 에니어그램을 다룬 책의 저자가 진행한 팟캐스트였다. 궁금했지만 통 들을 시간이 나지 않았는데, 다친 덕분에(?) 일주일의 강제 휴가가 주어졌고 누워있는 거 말고는 할 게 없었던 터라 쭉 듣게 되었다. 에니어그램에서 내 유형은 어떤 걸지 생각하면서 듣는데 판단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아직도 확신은 없으나, 다 들을 무렵 스스로를 6번 유형이라고 판단했는데, 이유는 '불안'이라는 키워드 때문이었다.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p.22)
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고 불안해하는 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내 그런 모습은 두드러졌는데 그걸 객관적으로 인식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아닌데, 나만 이런 걸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라는 고민도 가끔은 들었다. 트레바리 마음 클럽에서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좋았던 건, '나만 그런 것은 아니구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라는 안정감을 느끼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는데, 이 책 역시 내가 느끼는 불안의 원인을 설명해 주면서 많은 현대인들이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사실 기대했던 것만큼 불안이라는 '감정'에 초점을 둔 책은 아니어서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 철학, 경제, 정치, 예술, 종교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우리의 불안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 보면 알랭 드 보통은 역시나 대단한 작가이자 철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위로 인한 불안은 비통한 마음을 낳기 쉽다.
지위에 대한 갈망은 다른 모든 욕구와 마찬가지로 쓸모가 있다. ... 그러나 모든 욕구가 그렇듯이, 이 갈망도 지나치면 사람을 잡는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가장 유익한 방법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p.9-10)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이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p.247-9)
나를, 우리를,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만난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은 내 인생의 책이라 할만하다.
무려 6년 전의 글이지만, 역시 사람이 변하기는 어려운 것일까, 내 안에는 아직도 많은 불안이 있다. 그래서였는지 PQ의 사바투어 테스트에서도 이와 연결된 Hyper-vigilant가 나의 제1 사바투어로 나왔다.
Hyper-vigilant (<긍정지능> p.67)
-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위험을 끊임없이 심각하게 걱정하고, 어떤 일이 잘못될 가능성에 집착한다. 따라서 편히 쉬지 못한다.
- 위험 신호에 유별나게 민감하다, 끊임없이 사고나 위험을 예상한다.
사실 테스트에서 나온 그 밑의 순위들은 내가 인식하고 있는 나와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Hyper-vigilant는 명확했다. 많은 걱정과 불안이 내 안에 있음을 안다. <현존 수업>을 세 번째 읽으면서 나에게 왜 불안, 안전과 안정에 대한 민감도가 생겼는지 얼추 이해하고 있는 중이다. 7세 이전의 나의 어떤 경험들이, <현존 수업>에서 이야기하는 아동기의 감정적 각인으로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떠오르지는 않지만 엄마아빠와 이모부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면들이 아마도 그 각인을 만들었을 것이다.
조직에서 또다시 변화를 앞두고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왜인지 불안이 덜 하다. Hyper-vigilant가 나의 사바투어임은 여전히 틀림없지만, 지난 6년간 나의 경험들이 나를 단련시켜 준 것일까? 지난주부터 다루고 있는 Sage(현자)와 연결 지어 지금 나의 마음이 적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정리해 봐야겠다.
* 나의 사바투어를 알아보는 테스트는 아래에서 무료로 할 수 있다.
* 타이틀 사진: Unsplash의Mitchell Hart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