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장 산책

피프티피플 속 나를 들여다보기

<피프티 피플> by 정세랑

by 오소영

50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소설, 피프티 피플. 그리고 그들은 삶의 한 점에서 만나는데, 각각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며 읽다 보면 후루룩 읽힌다.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정세랑 작가의 말 마지막 문장이다.


한사람이라도 당신을 닮았기를, 당신의 목소리로 말하기를 바랍니다.
바로 옆자리의 퍼즐처럼 가까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p.394)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따뜻한 말이었다. 병원이라는 한 공간이 중심 된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그 안의 인물들은 제각각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지고 있고 연령도 다양했다. 그만큼 각각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문제, 행복의 이유도 다르기에 나는 그중 누구와 닮았고, 누가 나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지 찾아보는 일은 내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나의 두려움


첫 번째로 등장하는 '수정'은 나의 두려움을 떠오르게 했다. 작년 이맘때, 하루에 하나씩 강점노트의 질문에 답하는 100일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는데, 그중 이런 질문이 있었다.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실 걱정이라면 평소에도 걱정인형처럼 자잘한 걱정들을 달고 사는 나라서 쉽게 적을 수 있었을 텐데, 두려움이라니, 두려움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낯설었다. '끊이지 않는 걱정, 그것이 현실이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 죽음, 이별, 상실. 익숙함이 다신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이 되는 것' 내가 적은 답변이었다.

'수정'보다 더 열의를 담아 수정의 결혼식을 준비한 엄마, 이제는 손 쓸 수 없이 퍼진 엄마 몸속의 암세포들로 인해 '결혼식을 가장한 장례식'에서 수정은 생각했다.


엄마가 고전무용을 하듯이 한쪽 손을 멋들어지게 들고 그 자리에서 장난스럽게 한바퀴 돌았다.
사락사락.
아마도 그런 소리가 났을 것이다. 그때 자기도 모르게 수정을 울컥하고 울었다. 나중에 이날을 기억할 때 엄마가 도는 저 모습이 기억날 거란 걸 수정보다 수정의 눈물기관이 먼저 깨달은 것 같았다. (p.12)


어렸을 적부터 내 안에 있는 불안감, 사랑하는 누군가를, 특히 엄마 아빠를, 영원히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나마 나이를 먹으면서 나아진 것은 그 일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아직 마음으로는 아니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다는 점인 것 같다.


사람들은 일정 시점까지 일어나지 않은 일은 계속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고, 친구도 그랬음이 분명했다. (p.309)



나의 바람


나도 '우섭'처럼 소개팅에서 남편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별로 좋지 않았던 때에 선배가 소개팅을 제안했고, 한 번 거절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다시 이야기가 되어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3년 정도를 연애하고 결혼을 했다.


결혼은 그 나름대로의 노력이 계속 들어가지만, 매일 안도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마음을 다 맡길 수 있는 사람과 더이상 얕은 계산 없이 팀을 이루어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p.164)


<피프티 피플>에는 많은 커플이 등장하지만, 그중에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우남'과 '선미' 부부였다. 둘은 재혼으로 연이 닿은 부부였지만, 편안하게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서로의 상처와 고민, 부족한 점이나 FLEX에 대해서도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사이. 나도 그렇게 남편과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고 나이 들어서도 그렇게 지내고 싶다.


그러면서도 종종 주위에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의진'도 나와 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일찌감치 결혼해서 부모가 된 친구들의 아기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적어두는 것, 육아로 인해 그리고 조금씩 더 반경이 넓어져가는 친구들의 거주지로 인해 만남을 가지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 나도 삼십 대에 들어서면서 경험했던 것들이었다.

초등학교 때인가, 친구들과 광고에 나온 아파트 평면도를 따라 그리며 이 방은 내 방 저 방은 네 방 하면서 상상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각자의 가정이 있어 한 집에 살지는 못하겠지만, 친구들과 가까운 곳에 살면서 서로의 삶에 작으나마 즐거움과 편안함이 되는 시간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



나의 고민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9년 전쯤 들어온 두 번째 회사이다. 긴 시간이지만, 사실 3년 반 전에 지금의 일로 옮겨오지 않았다면 여기가 아닌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회사를 들어갈 때에는 이직이라는 건 내 인생사전에는 없었다. 당시에 입사하고 싶었던 1순위의 회사는 아니었지만,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나에게 기회를 준 것이 고마웠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직장은 평생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좀 더 많았고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처음 해보는 사회생활은 당연히 녹록하지 않았고, 그보다 더 어려웠던 건 '나'라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었다. 청소년기가 지나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 끝날 줄 알았던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내가 하고 싶은 건 뭐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그 고민은 비행기표를 끊고 첫 퇴사를 결심했을 때에도, 돌아와서 다음 진로를 선택할 때에도, 지금의 회사에서 9년간 일을 해오면서도 그 깊이와 결은 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연모'가 인상적이었다. 이제 스무 살 남짓의 연모는 내가 스무 살 일 때는 전혀 하지 못했던 생각을 이미 하고 있는 어른이었다.


요즘은 아무도 큰 회사에서 평생 일하지 못하니 처음부터 틈새를 찾는 게 나을 것이다. 아름다운 틈새, 연모를 위한 틈새가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작은 집을 짓고 싶어. 연모는 생각했다. (p.318)


"처음 좋아하게 된 걸 계속 좋아하지 않게 되어도, 다음 걸 또 찾으면 돼요." (p.321)


나를 위한 아름다운 틈새를 찾는 일, 그 일을 계속 좋아하지 않게 되더라도 다음 것을 또 찾으면 되는 것임을. 이제는 알면서도 실천은 어렵고, 길은 항상 멀게만 느껴진다.


서른은 사실 기꺼이 맞았다. 도무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20대가 너무 힘들어서 서른은 좋았다. 마흔은, 마흔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삶이 지나치게 고정되었다는 느낌, 좋은 수가 나오지 않게 조작된 주사위를 매일 던지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게 있다.(p.130)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길이 더 줄어든다거나 좁아지는 것 같은 느낌은 있다. 그래도 길은 있고, 틈새길도 있으니까. '희락'도 그것을 찾지 않았나.

나다운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던 몇 년 전보다 지금은 좋다. 나를 위한 아름다운 틈새를 찾아가며, 현재도 미래도 나답게 나로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 트레바리 나알기-팝콘 (2003-06시즌이 되지 못한) 2005-08시즌 첫 번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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