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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boran Oct 06. 2023

<sound and scent> 사의 찬미

음과 향이 데려온 그날의 나

음과 향이 데려온 그날의 나

음과 향이 데려오는 그날의 일


내년이 되면 사라질 호텔 마일리지를 쓰기 위해 급히 경주를 찾은 어느 주말이었다. 놀이동산이 보여 나쁘지 않았던 마운틴 뷰, 라운지에서 두 시간 동안 들이켰던 해피아워 칵테일, 유독 사람이 없어 전세 냈던 야외 수영장까지. 예정 없이 떠난 호캉스는 주말 내내 즐거운 기억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순간은 사실 호텔 체크아웃 후 두 시간 동안의 여정이다.


퇴실 전, 방 안에서 바라본 놀이동산 뷰의 한 편에는 '저게 뭐지' 싶은 건물이 하나 있었다. 2-3층 남짓 되어 보이는 자그마한 건물 외벽에 다소 우악스러운 대형 기타 조형물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지도를 켜서 검색해 보니 2015년도에 개관한 대중음악박물관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선을 끌기에 아주 완벽한 장식이다. 일정을 바꾸어 방문해 보기로 했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



이곳은 한국 대중음악이 걸어온 백 년의 역사를 살뜰하게 집약해 놓은 곳이었다. 내부는 기대 이상이었다. 대중음악의 출발과 성장을 세밀하게 정리해 둔 100년사관뿐만 아니라 소리예술과학 전시관, 오르골 전시관, 영화 OST전시관 등 음악의 역사를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여럿 조성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랜 시간 머물렀던 공간은 단연 청음 공간이었다.







전 세계에 단 10대뿐이라는 오래된 스피커에서 각자의 18번이 쩌렁쩌렁 넘쳐흐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지 않으며 가만히 앉아있기 힘든 현대인들이 이곳에서는 어쩐지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다 간다. 이런 곳이라면 어떤 이의 어떤 생각도 근사하게 정리될 것이다. 그러나 자리를 나설 때쯤 마음은 변한다. 쟁여간 생각을 근사하게 정리하는 곳이 아니라 그저 묵은 마음을 내보내고 새로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곳. 우리는 귀한 경험을 한다.


누군가 신청한 <사의 찬미>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을 때, 나는 별안간 음악의 역사가 한 개인의 인생과 많이 닮았음을 느꼈다. 사의 찬미는 '다뉴브강의 잔물결'의 번안곡이자 일본 '오사카 니토 레코드'에서 조선어로 녹음된 최초의 노래로 알려진다. 당시 녹음하기로 계약된 곡은 26곡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윤심덕이 한 곡을 더 녹음하자 제안했다고.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원곡에 심덕이 가사를 붙였고, 그의 동생 성덕이 피아노 반주를 해서 탄생한 곡이자 현장에서 추가로 녹음된 곡이 바로 '사의 찬미'다.


노랫말과 목소리의 주인공인 윤심덕은 여객선을 타고 귀국하던 중 애인이자 극작가인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다음날 언론에는 두 사람이 껴안고 바다에 뛰어내렸다 보도되었지만, 사실 실제로 그 모습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날의 실체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지만, 그러는 동안 백 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고… 여기 남은 것은 <사의 찬미> 속 심덕의 처연한 목소리뿐이다. 그날 처음 들은 심덕의 목소리와 노랫말은 아직도 내 귀에 생생히 남아있다. 100년 동안 수많은 가수가 이 노래를 불렀고 저마다의 해석 역시 훌륭하지만, 어쩐지 마지막엔 꼭 윤심덕의 사의 찬미로 감상을 마치는 가벼운 습관도 생겼다. 왠지 모를 일이다. 죽음을 찬미하는 그의 시선이 지옥 같았던 현실을 투영하는지, 아니면 지독한 심미주의였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거대하고, 거창하면서도 동시에 볼품없고 비루한 것. 그것이 역사이자 인생일까? 심덕의 노랫말이 묻는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우에 춤추는 자도다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에 것은 너의게 허무니 

너 죽은 후는 모두 다 없도다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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